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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합병 차익거래와 전환사채

 제 글을 꾸준히 읽거나, 제 포트폴리오를 추종하는 분들 중에도 올해 내내 지지부진한 주가 때문에 고리타분한 장기투자 대신 테마주나 카카오, 네이버 같은 급등주에 유혹을 느끼는 경우가 꽤 많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올해들어 오늘까지 제가 생각하는 비교지수인 MSCI ACWI는 17% 정도의 근사한 수익률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 제 포트의 수익률은 10% 정도의 상대적으로 저조한 수익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올해는 제 수익률이 비교지수를 앞서기는 힘들 것 같아 보입니다. 사실, 최근 몇 년간의 제 수익률이 비교지수를 크게 앞섰으므로, 올해나 내년쯤에는 비교지수에 뒤쳐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당황스럽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습니다 만, 저 역시 최근의 상황이 답답하고 지루한 것은 사실입니다.

 

 가끔 급등주로 단기간에 꽤 재미를 본 친구가 '너도 소액이라도 한도를 정해놓고 단기투자를 해보지 그러느냐?'하는 충고를 듣습니다. 제 연간 수익률을 넘는 수익률을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달성한 친구에게 그 상황에서 뭐라고 말을 해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게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거야'하고 마는데, 몇 달쯤 후, '요즘은 주식투자 상황이 어떻냐?'라고 물어보면, 시무룩한 어조로 '주식투자를 그만두었다'라고 하는 대답을 듣곤 합니다.

 

 제가 소액으로라도 투기를 하지않는 이유는 그것이 지속 가능한 방법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좋은 주식을 낮은 가격에 샀더라도 지지부진한 주가에 지루하고 답답한 기간이 대부분인 와중에 소액으로 결행한 투기에서 짜릿한 수익을 올린다면, 아마도 저는 필시 그 투기에 점점 더 많은 비중의 금액을 할당할 테고, 이것이 개미들이 주식투자에서 망하는 전형적인 공식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장기투자 이외의 투자를 전혀 생각치도 않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꽤 자주 단기 투기에 대해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면, '금리가 오를 것 같으니 조선이나 철강업종, 혹은 금 같은 것에 투기를 해보면 어떨까? 와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마음을 접게 되는데, 제 이전 글인 '조선주를 사야 하나?'나 '원자재 랠리와 가치주'를 읽어보면, 제가 이런 종류의 투자를 무조건 기계적으로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최근의 지루한 주가에 답답함을 느끼던 중, '워런 버핏의 주주서한 - 워런 버핏 지음'에서 읽은, 버핏이 보유한 현금 중 일부로 상장된 회사간의 합병을 이용한 차익거래를 한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네이버 금융'의 '기업 전자공시'를 검색하던 중, 아래와 같은 근사한 합병 차익거래의 기회를 발견했습니다.

 

 - 개요: 한국정보인증(코스닥 상장)이 미래테크놀로지(코스닥 상장)를 흡수합병

 - 공시일: 2021년 6월 28일

 - 주주확정 기준일: 2021년 7월 19일

 -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기간: 2021년 8월 13일 ~ 2021년 9월 2일

 - 매수 예정가격: 13,070원

 

 주주확정 기준일인 7월 19일 이틀 전까지 (주식이 계좌에 입고되려면 2 영업일이 필요하므로) '미래테크놀로지' 주식을 사서 합병에 반대하면, 한 달쯤 후 한 주당 13,070원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인데, 아래와 같이 합병 발표 후 13,070원 이하에 살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합병발표 후 최저점이었던 7월 9일 종가 12,450원에 산다면 4.98%, 보수적으로 12,600원에 산다고 가정해도 3.73%의 수익이 납니다.

 

 하루에도 2~3%는 쉽게 가격이 널뛰는 주식시장에서 한달에 3.73%의 수익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비슷한 합병건을 매달 한건씩만 발견해 수익금을 원금과 함께 재투자할 수 있다면, 연 수익률은 50%가 넘습니다(1.0373^12=1.5519). 합병의 당사자인 한국정보인증과 미래테크놀로지가 우량한 재무의 '다우키움 그룹'에 속해있어서 매수 가격이 낮아진다거나 합병이 취소될 가능성도 거의 없어 보였으므로, 무위험의 차익거래처럼 보였습니다.

 

 그야말로 '머선 일이고?'입니다. 일 년에 50%면, 5년 후에는 7배가 넘습니다. 그것도, 거의 위험이 없는 거래를 통해서 말입니다. 일주일 정도는 눈이 뒤집혀서, 지난 일 년간 비슷한 합병건의 사례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렇게 완벽한 차익거래의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제 기억에는 지난 일년간 동건 외에 한건 정도의 기회가 있었는데, 그 마저도 동건처럼 완벽한 사례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는, 워런 버핏과 저는 사정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버핏의 경우 그의 회사 버크셔 헤서웨이가 막대한 금액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일 년에 2~3%의 차익거래를 3~4차례만 성공해도 거의 이자가 없는 미국 단기국채를 보유하는 것보다는 의미 있는 일이 됩니다. 또, 미국 시장에는 상장기업의 수가 훨씬 많으므로, 이런 기회도 분명히 더 많을 것입니다. 

 

 반면, 저의 경우는 현금비중 만큼을 미국 장기국채 ETF로 보유하고 있는데, 이렇게 하는 이유는 작년 3월의 코로나 폭락장이나 리먼사태와 같은 상황에서 환율과 미국채 가격이 급등하므로, 이것을 팔아 떨어진 주식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럴 때 현금비중의 금액이 많게는 두배까지 오를 수 있는 미국채가 아닌, 2~3% 수익을 목표로 한 주식에 물려있다면, 아무리 좋은 주식이 헐값에 거래되고 있어도 그 주식을 살 수 있는 돈이 없게 됩니다.

 

 즉, 버핏에게는 의미 있는 합병 차익거래가 저에게는 별 의미도 없고, 오히려 해서는 안 될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한번 뒤집힌 눈이 쉽게 돌아오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단기투기의 기회가 없을까를 생각하던 와중에 아침마다 틀어놓는 증권방송에서 전환사채를 이용한 거래의 기회에 대한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환사채란 발행 당시에는 채권의 형태로 발행이 되지만, 대게 일 년쯤 후에는 '전환가액'이라는 정해진 가격에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증권을 말합니다. 대게 부실기업들이 돈이 없어서 발행하는데, 간혹 사정이 어렵지 않은 기업이 특수관계인에게 주식을 증여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발행하고, 이 경우, 전환기일이 다가오면 주가가 급등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역시, 지난 일 년간의 비슷한 사례를 조사해 보았지만 거래기회가 매우 드물었습니다. 대신, 전환사채 발행 사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실기업들의 경우 전환사채 발행이 꾼들의 시세조작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를 역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실기업들의 경우 전환사채 발행 이후 전환기일이 채 다가오기도 전에 주식이 거래 정지되는 경우가 태반이었습니다. (절반의 확률이라면, 이미 동전 던지기 수준의 투기가 되어버립니다.) 또, 다행히 거래정지를 면했더라도 제가 조사한 최근의 사례들에서는 대부분 전환기일이 다가오기 한참 전에 주가가 전환가액을 훨씬 웃도는 수준으로 올라버려서, 이를 이용할 기회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아는 정도의 정보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이 시세조작과 사기가 판치는 부실잡주의 영역까지 와서 무얼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했습니다. 지루함과 답답함을 이겨내면 장기적으로는 확실하고 만족할만한 수익을 안겨줄 건전한 투자의 세계를 놔두고, 잠시 가까이 와서는 안 될 곳까지 왔던 것입니다. 

 

 상황이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질 때, 기본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보면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식투자의 기본적인 본질은 무엇일까요? 바로, 그 기업의 성장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때, 낮은 가격에 그 주식을 산다면 성장에 대한 과실은 물론, 주가가 그 기업의 실력을 알아챌 때 생기는 큰 시세차익까지 챙길 수 있습니다. 반면, 시세차익만을 목적으로 무엇인가를 사는 행위는 투기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실패한 투자보다는 성공한 투기가 낮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면, 제 이전 글 개미가 돈을 잃는 이유 (tistory.com)  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2021년 7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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