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2010년대의 주식시장은 항해하기 좋은 잔잔한 파도만 치는 바다였습니다. 아래에 보이는 지난 25년 간의 미국시장의 추이에서 붉은 선의 단기금리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0%에 가까운 수준을 유지했고, 2015년 말쯤부터 오르기 시작한 기준금리도 매우 천천히 올랐으며, 2018년 말쯤의 최고금리도 2.5% 정도였으니, 돈을 꾸어주고 갚는, 한마디로 현찰이 거래되는 시장인 채권시장의 금리가 전반적으로 매우 낮게 유지되었던 것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금리가 낮은 환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는 성장주를 따라 사기만 해도 근사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성장주의 주가를 평가할때 분자로 사용하는 미래의 이익에 비해 분모로 사용하는 현재의 금리가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분자가 같더라도 분모가 작아지면, 그 나누어 나오는 값은 커지게 됩니다. 또, 싼 이자 덕분에 레버리지, 그러니까, 빚을 내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것들을 사기도 유리한 환경이었습니다.
이는 아래에 보이는 국내시장의 추이에서도 마찬가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S&P 500 지수에 비해 코스피 지수가 2010년대에 많이 오르지 못한것은 국내에는 성장주보다 경기순환주나 가치주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입니다. 경기순환주는 경기가 요동쳐야 큰 수익을 얻을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2010년대에 성장주를 들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매우 좋은 투자성과를 얻었을 것입니다. 아래에 보이는 '네이버'의 장기 주가추이를 보면 더욱 그랬으리라 확신합니다.
이렇게 평온했던 금리가 2020년대 들어 요동치고 있습니다. 큰 폭으로 떨어졌던 금리가 최근 1~2년간은 전례없이 빠른 속도로 치솟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최근 몇 달간은 주가폭락의 전조라고 하는 장단기 금리역전까지 뚜렷이 보입니다. 앞의 미국과 국내시장 추이 그래프에서 음영으로 표시한 영역은 미국시장에서 붉은 선의 단기금리가 푸른 선의 장기금리를 추월하는 금리역전 현상이 뚜렷이 보이는 시점부터 주가지수의 저점까지를 표시한 시기들입니다.
그래프를 자세히 보면, 이 장단기 금리역전 현상은 우리에게 IMF 환란으로 알려진 1998년의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2000년의 IT버블붕괴,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심지어 2020년의 코로나발 급락장까지, 지난 25년간의 주가폭락을 어느 정도 시차를 두고 모두 정확히 예언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외환위기 때는 주가급락과 금리역전이 동시에 일어났으니, 예언에는 실패했다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IMF 환란을 직접 겪은 국내시장에서는 이미 1996년부터 큰 폭의 금리역전이 뚜렷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금리역전이 명확히 보이기 시작한 지금은 주식을 모두 팔고 금리가 다시 잠잠해질 때까지 시장을 떠나 있어야겠군' 하고 생각할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특정 시기를 선택해서 그 시기에만 주식을 가지고 있으려는 마켓타이밍은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십중 팔구는 의심을 거듭하다가 뒤늦게 뛰어들어 고점에 물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번의 금리역전이 주가폭락의 전조가 아닐 것이라는 반론을 펼칠 수도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입니다.
우선, 이번의 주기가 과거의 주기들과 다른 점 한 가지는 과거의 주기들에서는 금리역전이 생기고 최소한 몇 달에서 몇 년 후부터 주가가 빠지기 시작했는데, 이 번의 주기에서는 금리역전이 발생하기 전부터 주가가 빠지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이 국내나 미국 모두 기준금리 인상 시점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작년의 주가하락은 경제의 둔화보다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을 우려한 면이 더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경우, 현재 보이는 금리역전은 이미 주가에 반영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 우리가 보는 어떤 주기나 패턴은 다른 어떤 원인에 의해 나타나는 결과일 뿐이지, 주기나 패턴이 원인이 되어 주가폭락과 같은 결과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금리나 주가는 모두 실물경제를 앞서 반영하므로, 실물경제가 어떤지를 알기 위해 미국의 실업수당 청구건수와 한국의 상품수출액의 추이를 보겠습니다. 미국의 실업자 수를 보는 이유는 미국은 내수가 경제의 중심이고, 내수를 떠 받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월급을 받고 있는가?' 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경우 수출이 경제의 중심이므로 수출액의 추이를 보는 것입니다.
그래프를 보면, 붉은 선의 한국 수출액과 검은선의 미국 실업자수는 거의 역의 관계로 움직이고, 한국 수출액이 미국 실업자 수에 다소 후행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유는 당연히 미국경제가 안 좋아지면 한국의 수출도 줄기 때문입니다.
작년 11월에 미국 실업자 수가 급증하긴 했는데, 여전히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고, 지난달에는 증가폭도 둔화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빅테크 기업들이 대량 해고를 하고 있다지만, 제조나 서비스업에서는 사람을 못 구하고 있다는 신문기사들을 보면 앞으로 과거의 폭락장들 때처럼 계속 실업률이 치솟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환율과 구리가격의 추이를 통해서도 반론을 펼칠 수 있습니다.
음영으로 표시된 과거의 폭락장 주기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은 환율의 급등과 구리가격의 폭락이었습니다. 미국달러는 경제가 불안할 때 가치가 오르는 대표적인 안전자산이고, 구리는 산업용 원자재의 대표주자이기에 가격이 떨어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보이는 두 지표의 방향은 정 반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반론을 펼치자면, 경제가 불안할 때 높아지는 미국 국채와 투기등급 회사채의 금리차이가 아래와 같이 하향 안정화되는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좀 안심이 되는지요?
그런데, 저 역시 올해의 주식시장이 좋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주식시장은 경제를 선반영하는 곳이고, 경제는 이런 데이터들을 통해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어서입니다. 경제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개입되기 때문입니다. '경제는 심리다'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해 보이는 것은 앞으로 최소한 몇 년간의 주식시장은 2010년대와 같이 잔잔한 파도만 치는 바다가 아닐 것이라는 점입니다. 전례없이 많은 돈이 풀렸기 때문입니다. 밀턴 프리드먼이 말했듯이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를 많이 발생해서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미국 통화유통액 추이가 장기 이동추세선에 복귀하자면 금리는 더 오르거나 현재의 높은 금리를 상당기간 유지해야 할 것 같아서 입니다. 하지만, 아래위로 크게 움직이는 시장은 단타를 노리는 투기꾼들에게는 무덤이 되겠지만, 장기투자자들에게는 주식을 사 모으기 좋은 환경이 됩니다.
그러니까, 일정한 현금비중을 유지한다면 그 현금으로, 배당주 투자자라면 배당금으로, 적립식 투자자라면 매달 일정액만큼 주식을 싸게 사서 주식수를 늘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다면 큰 폭의 반등장이 왔을 때 투자성과는 단순히 같은 수의 주식을 가지고만 있었던 사람을 크게 앞서게 됩니다.
유럽의 유명한 투자대가였던 앙드레 코스톨라니가 자주 인용했던 헝가리 속담 하나로 이번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밀값이 떨어질 때 밀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사람은 밀값이 오를 때도 밀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
2023년 1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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