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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지켜볼 주식 - The Estee Lauder Companies Inc. (NYSE: EL)

 이 회사가 만드는 갈색병에 담긴 화장품은 해외여행이 흔치 않던 10~20여 년 전 해외출장을 자주 다니던 제게 주변의 여자들이 가장 많이 사다 달라고 부탁하던, 청탁 순위 1위의 품목이었습니다. 요즘도 그럴지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역시 그랬습니다.

2019년 기준

 

 이렇게 사람들이 꾸준히 선호하는 브랜드를 가진 회사의 주식은 훌륭한 투자의 대상이 되는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왜,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는 이렇게 장수하는 세계적인 생활용품 브랜드가 많은데, 한국에는 반짝 히트 후 사라지는 브랜드가 많은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데는 화장품과 같은 생활용품은 아무리 성분 인증 같은 시험을 통과하고 광고를 많이 하더라도, 결국 여러 사람들이 써보고 좋다는 평판을 얻어야 꾸준히 잘 팔리는 브랜드가 된다는 점이 열쇠가 됩니다. 그러니까, 실험실이 아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써보는 초기 판매 단계에서 미국이나 유럽과 같이 인구가 많고 소득 수준도 높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써볼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이 됩니다.

 

 몇 번 바르자마자 20대 때의 피부로 돌아가는 기적의 화장품 같은 것은 없습니다. 결국 최소한 몇 주에서 몇 달 정도 발라본 후 생기는 미묘한 차이로 그 제품을 또 살지 말지를 결정하는데, 초기 판매 단계에서 생기는 그 '좋다'는 느낌의 평판은 그 사용자가 많을수록 나에게도 '참'일 확률이 높습니다. 또, 한병에 10만원 가까이 하는 고가의 화장품이라면 그 나라의 소득수준이 높아야 초기판매 단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써보고 입소문을 내 줄수 있습니다.

 

 따라서, 소득수준이 높은 인구를 많이 가진 나라에서 초기판매 단계에서 생긴 '좋다'는 입소문과 평판은 유지될 확률이 높은 반면,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한국에서는 이 초기판매 단계의 검증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그 기간을 훨씬 길게 잡아야 비슷한 사용량에서 얻은 데이터가 축적됩니다. 이것이 한국에서는 '피부에 착착 감긴다'는 좋은 입소문으로 초기판매 단계에서는 히트하지만 1~2통을 다 써본 후에는 이 전에 쓰던 브랜드만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입니다.

 

 초기판매 단계에서 충분히 많은 사용자들로부터 '좋다'는 평판을 얻어 그 나라를 석권한 브랜드는 다른 나라에서도 먹힐 확률이 높습니다. 화장품을 예로 들면, 개나 뱀의 피부가 나라마다 다르지 않은 것처럼 인간의 피부 구조도 나라나 인종이 다르다고 차이가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종목을 좋아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과점적인 사업자가 누릴 수 있는 규모의 경제, 그러니까, 버는 돈에서 광고나 마케팅, 연구개발, 유통 등에 비슷한 비율의 돈을 쓰더라도 그 절대적인 금액에서 이 회사를 앞설 경쟁자가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아래에 있는 업계 내에서의 순위에서 샴푸나 바디로션 같은 것들을 많이 만드는 '유니레버'나 'P&G'가 이 회사의 경쟁자처럼 보이지는 않으므로, 제가 지금 말하고 있는 화장품 업계 내에서 이 회사의 위치는 '로레알'에 이어 2위입니다.

 또, 50개가 넘는 브랜드를 가진 '로레알'에 비해 이 회사가 가진 브랜드는 그 수가 그렇게 많지 않으므로, 오히려 영양가라는 측면에서는 이 회사가 더 낫다는 생각입니다.

The Estee Lauder Companies의 보유 브랜드

 

 한편, 아래에 있는 지난 15년간 이 회사 실적과 이익률의 추이를 보면, 매출은 큰 등락 없이 꾸준히 증가해 온데 반해, 영업이익은 2009년과 2020년에 반토막에 가깝게 급락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G/M: 매출총이익률 // O/M: 영업이익률

 

 2009년은 리먼사태, 2020년은 코로나 창궐이 있었던 해이므로 '그 정도는 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나?' 하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매출 하락폭에 비해 영업이익의 하락폭이 지나치게 과도해 보입니다. 제가 이렇게 과거의 부진했던 실적의 원인을 알아보는 이유는 거기에 미래에도 반복될 수 있는 요소가 있을지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2009년과 2020년에 영업이익이 반토막 났던 것은 이 회사가 직접 운영하는 매장들에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은 갑자기 줄이기가 힘들다는 점과 경제위기 상황에서 이 회사 물건을 대량으로 사주던 유통사들이 재고를 줄이기 위해서 주문을 덜 했다는 점도 있지만, 아래와 같이 해당 연도에는 '손상차손(Impairment)'이 많이 보인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손상차손'이라는 말은 실제로 그 돈을 썼다는 말이 아니라 자산의 가치를 다시 평가해서 장부상의 가격을 낮췄다는 말입니다. 2009년과 2020년에 유독 손상차손이 급증한 것은 경제상황이 위태로워 보이므로 매우 보수적으로 자산의 가치를 재평가했다는 말이 됩니다.

 

 하지만, 해당 연도에 매출액의 하락폭은 미미했다는 점에서 경기가 어렵다고 여자들이 예쁘게 보이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알고 있는 것은 주식투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번의 경제위기에서 주가가 급락하면 막연한 감이 아니라 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그 주식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주가가 더 떨어지거나 생각보다 지지부진한 주가가 오래 이어지더라도 확신을 가지고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 종목을 주목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이 종목이 선진국의 고령화와 중국의 중산층 증가, 웰빙이라는 초 장기적인 트렌드에 부합한다는 점입니다. 여자들은 대개 나이가 들면 피부관리에 더 많은 돈을 쓰게 됩니다. 또, 중국의 1인당 평균 화장품 소비액은 2021년을 기준으로 62달러 정도로, 한국의 270달러나 미국의 279달러와 비교하면 아직 화장품 소비 증가의 초기 국면입니다.

 

 '그렇지만, 요즘 좋지 않은 미국과 중국의 사이를 감안하면 이 회사가 중국의 불매운동 대상이 될 수 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면 훌륭한 투자자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불매운동에는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불매운동이라는 것이 자유로운 시민사회에서 시민들이 주도해서 일어나는 운동인데 반해, 중국의 불매운동에는 그 배후에 정부의 선동과 여론조작이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제가 겪어본 중국인들도 공산주의 식 교육 덕분인지, 주도적으로 뭘 나서서 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먼저 나서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제 말은 그 정도가 심각해 보였다는 말입니다.

 

 정부가 배후에서 조작하는 불매운동은 센카쿠 열도 문제나 싸드 사태처럼 상대방이 만만해 보일 때만 성립합니다. 그러니까, 수출액이 수입액보다 훨씬 많은 미국과 같은 상대방을 상대로는 무역 단절과 같은 전시상황이 아니라면 자국에 득이 될 것이 없습니다.

 

 '신장 면화 이슈 때에는 나이키와 아디다스에 대한 불매운동이 있지 않았나?'라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 그 불매운동의 배후에는 중국 정부가 있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실효도 없었고 오래가지도 않았던 한때의 소란일 뿐이었습니다.

 

 이런 점들을 알고 있다면, 다음번에는 이 종목에 닥칠 기회를 잘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재벌집 막내아들'을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타임머신이나 환생 같은 특별한 능력이 있다면 저도 좋겠지만, 그런 비현실적인 능력이 없더라도 충분한 상식과 깊은 사고를 통한 통찰만 있다면 훌륭한 투자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2년 12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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