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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주식투자의 단계

 엊그제 TV에서 권상우가 나오는 드라마 '위기의 X'를 재미있게 봤습니다.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서 차장으로 근무하며 순탄한 인생을 살던 권상우가 회사를 잘리고 손댔던 주식마저 폭망 하는 얘기였는데, 많은 개미들이 공감했을 듯하고,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더 재미있게 봤던 것 같습니다.

 

 드라마에서 본 권상우의 주식폭망 스토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회사를 잘리고 백수로 지내던 권상우는 어느날 학창 시절 친구들 3명을 만나 술을 먹던 중 그 친구들 모두가 영끌을 해서 산 각자의 아파트 값이 올라 10억대의 자산가들이 된 것을 알게 됩니다. 정작 자신이 살고 있는 전세아파트를 사야 할지 망설였을 때는 인구감소니 뭐니 하며 말렸던 한 친구는 '그래도 너는 빚이 없으니 다른 어디에 투자는 했을 것 아니냐?'라고 묻습니다. '적금..'이라고 대답하자 비웃음과 함께 '주식에 투자했어야지'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알고 보니 3명의 친구 모두 주식투자에서도 꽤 큰 재미를 본 것이었습니다.

 

 자신보다 못나가던 친구들이 부동산과 주식으로 큰돈을 번 것에 자극받은 권상우는 아내 몰래 주식투자를 할 결심을 합니다. 다른 개미들보다 똑똑한 자신은 철저한 준비 후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생각으로 그날부터 대가들의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기 시작합니다.

 

 처음 선택한 방법이 유명한 피터 린치의 '일상에서의 종목발굴'이었는데, 수익률이 신통치 않자 PER이나 PBR 등의 일정한 계량적 지표를 충족하는 종목들만 매수/매도하는 퀀트투자를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세운 기준들의 조합으로 지난 20년간 투자했을 경우 수천 퍼센트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수익률을 얻을 수 있었음을 발견한 권상우는 투자금을 2억으로 늘려 본격적으로 판에 뛰어듭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지난 20년간 수천퍼센트의 수익률을 안겨주던 투자법이 자신이 판에 뛰어들자 손실이 나기 시작합니다. 거시경제의 침체에 주가하락의 원인이 있음을 깨닫고, 이번에는 하락장에서 수익이 나는 인버스 ETF를 사는데, 더 큰 손실을 봅니다.

 

 자신이 주식과는 맞지않다고 생각한 권상우가 투자의 종말을 맞는 곳은 코인판이었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개미들이 위의 드라마 속 권상우와 비슷한 단계를 밟으며 시장에서 사라져 가리라 생각됩니다.

 

 앞에서 얘기한, 주식시장에 뛰어들기 전 철저한 준비를 위해 권상우가 도서관에서 읽던 벤저민 그레이엄이나 워런 버핏, 제러미 시겔, 피터 린치의 책들은 대부분 저도 읽어 보았고, 심지어 제 '추천도서' 목록에도 같은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가치투자에 한때나마 관심이 있었을, 대부분의 개미들도 이 들 중 한두 권은 틀림없이 읽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같은 책을 읽은 개미들 중 극소수만이 주식투자에서 장기적으로 성공하는 것일까요?

 

 책을 읽으며 머리로는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뼛속에 박힐 만큼 깊은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 말 마저 추상적이라고 생각될 것입니다. 제가 깨달은 몇 가지를 구체적이고 세세히 옮기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투자의 시간지평

 앞에서 권상우가 발견한 지난 20년간 수천 퍼센트의 수익률을 안겨준 투자법에도 중간중간 1~2년씩 주가가 반토막 난 기간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주식이라도 주가는 자를 대고 일직선을 그은 것처럼 상승하지는 않습니다. 긴 시간의 지평에서 바라본 주가의 상승은 파도를 치며 상승하는 모습에 가깝습니다.

 

2. 인간의 마음은 돈을 잃게끔 되어있다

 책에서 읽은 싸지만 좋은 종목을 찾아냈더라도 최근 5년간의 주가차트에서 추이가 옆으로 기고 있거나 떨어지고 있다면 그 종목의 주가는 앞으로도 지지부진할 것만 같습니다. 반대로, 지난 몇 년간 주가가 우상향이었다면 앞으로도 최소한 몇 년간은 주가가 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경우 10~20년간의 차트를 로그축에서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3. 종목의 보유기간

 자신은 장기투자를 한다면서 한 종목의 최대 보유기간을 2~3년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주식시장에서 아무 이유 없이 주가가 2~3년간 지지부진한 것은 매우 흔한 현상입니다. 최대 보유기간을 2~3년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면 1년을 보유하기도 힘들 것입니다.

 

4. 가치투자의 함정

 책에서는 PER이나 PBR이 낮은, 한마디로 싼 주식을 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극단적으로 낮은 PER이나 PBR에 거래되는 종목들은 대개 사양산업에 속한 종목들입니다. 따라서, 싸다고 생각해 사서 2~3년만 참고 보유하면 큰 수익을 안겨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면, 왜 책에서는 싼 종목을 사라고 하는 것일까요?

 

 우선, 성장성이 없어 보이는 산업에 속한 종목이라도 없어질 산업이 아니고, 충분히 싸게 샀다면, 결과는 주가가 오르는 쪽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혹은, 그런 산업에 속한 기업이라도 뭔가 다른 기업들과는 차별적인 우위가 있다면 그 산업의 큰 파이는 그 회사의 차지가 되는데, 이는 앞으로 새로운 경쟁자들이 자꾸 모여들 성장산업에서 고른 종목보다 성공적일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벤저민 그레이엄은 그의 책 '증권분석'과 '현명한 투자자'에서 계량적인 가치투자 지표 몇 가지를 설명하면서 항상 단원의 말미에서는 '여러 업종에 속한 이런 종목 20개 정도를 매수한다면 그 투자자는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둘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20개의 종목이라면 오늘날의 퀀트투자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개미들은 많아야 3~4 종목 이상을 사지 않습니다.

 

5. 종목에 대한 확신

 그렇다고 제가 소수의 종목들로 꾸리는 포트폴리오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 역시 현재 국내와 미국시장에 있는 각각 4 종목만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수의 종목들만 보유하려면 그 종목들에 대한 매우 강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강한 확신은 자신만의 철저한 종목분석에서 나오게 됩니다. 남들이 쓴 글이나 증권사의 분석리포트를 읽은 후 확신이 생겼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은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면 어김없이 무너지게 되고, 손실을 보고 그 종목을 팔아버리는 일이 십중팔구가 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타임머신을 탈 기회가 있어서 10년 후로 가서 주가가 가장 많이 올라있을 한 종목을 보고 왔다면, 그 사람은 10년후 주가가 수십 배는 오를 그 한 종목만을 가지려고 할 것이고, 올해 주가가 반토막 나더라도 그 주식을 더 사서 모으려고 할 것입니다.

 

2023년 2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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