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를 다녀와 보지 않은 이상은 10년 후의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를 정확히 맞히기는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나 블록체인, 친환경에너지, 전기차 같은 것들이 실행활에서 훨씬 더 많이 쓰이고 있으리라는 것쯤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일상에서 쉽게 쓰이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반도체가 필요할 것이므로, 반도체 산업이 이 시대의 유망산업이라는 데에 이견이 있는 사람 또한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반도체 업종에 속한 모든 종목들이 유망한 투자처라는 말은 아닙니다. 누구나 아는 유망한 산업이라면 새로운 진입자나 경쟁자들이 모여들게 되어있고, 지금은 어떤 분야에서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더라도 그 분야에 더 싸거나 효율적인 대체재가 등장해서 수요가 그쪽으로 옮겨갈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산업은 이런 변화가 빠른 산업에 속합니다.
또, 누구나 유망산업이라고 생각하는 업종의 종목들은 주가가 비싼 경우가 많습니다. '미래에 실적이 더 좋아질 테니 주가가 비싼 게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이런 종목들의 지금 주가에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10년이나 20년 후의 실적까지 반영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실적이 증가하더라도 그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주가는 떨어지는 길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 분야에서 종목을 찾을 때도 안정적으로 이익을 잘 내면서도, 앞으로 그 업종에 큰 변화가 없을 것 같고, 싸게 살 수 있는 종목을 찾는 것이 제 포인트입니다. 그런 종목이 있냐고요? 제 생각에는 바로 이 종목이 그렇습니다.
이 회사는 반도체를 만드는 공정에 쓰이는 장비에서 발생하는 폐가스를 정화하는 장치인 '스크러버'와 공정장비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혀주는 '칠러', 그리고 자신들이 판 그 설비들의 유지보수를 통해 돈을 버는데, 세 부문의 매출액이 거의 비슷합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 종목을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고 느끼셨다면, 훌륭한 투자자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유지보수'의 매출 비중이 크다는 말은 자신들이 만든 설비를 전 보다 많이 팔지 못하더라도 수익이 늘어날 안정적인 수익처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기에 그렇습니다.
이런 제 생각이 맞는지를 검증하기 위해서 지난 15년간의 실적과 재무지표 몇 가지를 보겠습니다. 과거의 숫자들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사격을 할 때 총열을 과녁에 일치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지 않고 앞만 보며 총을 쏠경우, 아무리 많이 쏴도 좀처럼 과녁에 명중시키기는 힘듭니다.
아래는 지난 15년간 이 회사 실적과 이익률의 추이입니다.
우선, 왼쪽 그림을 통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보입니다. 로그축에 그린 그래프여서 두선의 기울기가 같아 보이면 실제로도 비슷한 퍼센티지만큼 변동이 있었다는 말이므로,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매출액이 늘어나는데 비례해서 증가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눈을 오른편 그림으로 돌려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최근 2~3년간 이익률이 급락하고 있는 점입니다. 2021년에는 매출총이익률이 급전직하했음에도 영업이익률은 유지되었던 이유는 판관비에 반영하던 비용들 중 일부를 원가에 반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매출총이익은 매출액에서 원가를 빼서 구하고, 영업이익은 거기서 판관비를 빼서 구하므로, 영업이익에서 빼던 비용을 원가로 옮겨 매출액에서 뺀다고 영업이익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최근 2년간 급락하고 있는 영업이익률은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치 2016년 까지는 한 자릿수의 영업이익률을 보여 주던 별 볼일 없던 회사가 때를 잘 만나서 2017~2021년의 5년간 15%에 가까운 준수한 이익률을 보여줬지만, 그때가 저물어서, 그러니까 우호적이었던 산업환경이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어서 이익률 역시 원래의 별 볼일 없던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그런지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 아래에 있는 전 세계 반도체 투자액 추이를 보면, 푸른 막대의 윗단에 점을 찍어 선으로 연결하면 이 회사 매출액의 추이와 거의 일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회사 이익률이 높았던 2017~2021년의 5년간 위에 보이는 반도체 투자액 성장률을 평균 내보면 18.8%가 나오는데, 이익률이 낮았던 직전 5년간의 반도체투자 성장률 평균이 1%였다는 점과 앞에서 이 회사 영업이익은 매출액에 비례해서 증가했다는 점을 함께 생각하면, 이익률이 높았던 시기와 낮았던 시기에 대한 의문은 풀립니다. 매출과 이익이 반도체 투자액에 연동되는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스크러버와 칠러가 다른 장비들이 깔릴 때 함께 깔리는 설비라는 점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그렇다면, 이 회사는 그 해 농사를 하늘만 바라봐야 하는, 그러니까 이익률이 높아지려면 반도체 투자액 증가만 기다려야 하는 구조의 사업을 하고 있다는 말인데, '2017~2021년은 반도체 투자액 증가가 이례적으로 높았던 시기가 아닐까? 그래서, 최근 몇 년간 원래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어서 이익률도 떨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아래와 같이 시간의 지평을 넓혀보면 다행히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익률이 낮았던 2012~2016년이 이례적으로 반도체 투자 증가가 더뎠던 기간으로 보입니다.
또 한 가지는, 반도체 투자 증가폭이 컸던 2010~2011년 대비 2017~2021년에는 영업이익률이 훨씬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인데, 반도체 회로 미세화의 진전, 그러니까 EUV의 도입 때문입니다. EUV와 이 회사가 만드는 설비들이 무슨 관계가 있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EUV의 도입으로 반도체 회로가 훨씬 더 가늘어지자 이온주입이나 증착 같은 공정에서만 쓰이던 이 회사 장비들이 식각이나 세정에서도 쓰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 회사 장비들은 화학용액을 사용해서 폐가스나 열이 발생하지 않는 공정에서는 필요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EUV로 회로를 훨씬 미세하게 만들 수 있게 되자 화학용액으로는 그렇게 까지 미세한 식각을 하는데 한계가 생겼고, 플라스마 챔버 내에 가스를 주입해서 식각이나 세정을 하는 공정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플라스마를 사용하는 공정은 열도 많이 발생합니다.
그러면, 과거의 실적과 이익률 변동에 대한 의문들은 거의 다 풀린듯한데, 최근 2년의 이익률 급락은 여전히 떨떠름하게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 봤던 반도체 투자액 추이의 막대그래프에 나오는 2022~2023년 숫자는 예측치였으므로 정확한 숫자들은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다행히, 아래와 같이 어렵지 않게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형광펜으로 표시한 메모리 업계의 투자증감률을 보면 감이 잡힙니다. 아직까지 이 회사 매출은 대부분 메모리 제조사들에게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영업이익률이 두 자릿수를 넘은 2017년 이전에는 영업이익률이 4~8%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었지만, 2022년에는 11.5%, 2023년은 7.5%였고, 매출은 주로 메모리 제조사들이 라인에 새장비를 깔기 시작할 때 많이 발생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번 반도체 주기의 저점으로 생각되는 2023년에도 과거의 최상단과 비슷한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는 사실은 오히려 고무적으로 보입니다.
확신에 확신을 더하기 위해서 다른 숫자들을 좀 더 보겠습니다.
낮은 부채비율, 그러니까 돈을 거의 빌리지 않으면서도 높은 유동비율을 보여주는 것으로 봐서 벌어서 남기는 게 많은 사업을 한다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편, 오른편 그림의 붉은 선인 주당자유현금흐름 추이가 보이지 않는 해가 많은 것은 로그축에 그린 그래프여서 마이너스 값은 표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구체적인 수치는 아래와 같습니다.
자유현금흐름은 회계상의 숫자일 뿐인 순이익에서 실제로는 쓰지 않았거나 쓴 돈을 더하고 빼서 구하는 '영업활동 현금흐름'에서 '투자활동 현금흐름' 중 '유형자산 취득액'을 빼서 구합니다. 유형자산 취득액을 빼는 이유는 투자활동 현금흐름 중에는 미래를 위한 투자도 있지만 현상유지를 위한, 어쩔 수 없는 투자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유형자산 취득액을 현상유지를 위해 쓴 돈으로 간주하고 빼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현금흐름은 실제로 벌어서 남기는 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회사의 경우 이익률이 높아지기 전에는 돈을 남기지 못해서 빌리는 해가 많았지만, 이익률이 높아진 이후에는 남기는 돈도 점차 많아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래에 보이는 현금흐름표를 자세히 보면 작년에 큰 액수의 마이너스 현금흐름이 생긴 원인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이 회사의 자유현금흐름을 좌우하는 것은 영업활동 현금흐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더 많은 제품을 만들어 팔기 위해 더 많은 시설이나 설비, 그러니까 유형자산 투자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 사업을 하는 덕분입니다. 투자활동 현금흐름을 좌우하는 것도 '유형자산의 취득' 보다는 '단기금융상품의 증감'입니다. 단기금융상품은 CMA나 MMF, RP같이 예금이자보다 조금 더 많은 이자를 받는 상품이므로, 그냥 현금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따라서, 이 회사가 하는 투자는 주로 현금을 쌓는 저축이고, 돈이 필요할 때는 거기서 찾아서 쓰는 정도입니다. 작년에 유형자산의 취득액이 꽤 컸던 이유는 본사를 증축하고 C/S 센터 한 곳을 새로 지었기 때문인데, 그 마저도 '단기금융상품의 감소', 그러니까 저축을 찾아 쓴 금액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작년에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마이너스였던 이유는 주로 '영업활동으로 인한 자산/부채의 변동'이라는 항목 때문이었는데, 이것도 주로 '매출채권의 증가', 그러니까 받아야 할 돈이 늘었다는 말이었습니다.
이쯤이면 저는 이 주식을 한 10년 정도는 편하게 가지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24년 5월에, 동해에서..
'투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켜볼 주식 - 해성디에스 (코스피: 195870) (2) (6) | 2024.06.04 |
---|---|
지켜볼 주식 - 프로텍 (코스닥: 053610) (13) | 2024.05.27 |
매도[賣渡] - 이엔에프테크놀로지 (코스닥: 102710) (72) | 2024.05.02 |
주식의 내재가치 추정 (37) | 2024.04.20 |
10년을 보유할 주식 - 유나이티드제약 (코스피: 033270) (2) (40) | 2024.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