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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주식의 내재가치 추정

 제 글들을 통해 종종 제가 내재가치를 어떻게 계산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지만, '가치투자에 대해 따로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 중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싶은 때가 있습니다. 이해하기 쉽고 편하게 설명을 하려면 글이 너무 길어진다는 점 때문에 정성껏 설명을 안 해서이기도 하지만, '내재가치'라는 말 자체가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느 주식이 시장에서 매겨지는 가격을 우리는 '주가'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주가는 누가 매기는 것일까요? 바로, 사고 파는 사람들이 매기는 것입니다. '이 가격이면 팔겠다'와 '이 가격이면 사겠다'가 만나는 지점에서 형성되는 가격이 주가입니다.  그런데, 이 주가는 그 기업이 하는 사업에 큰 변화가 없었는데도 몇 달 만에 두 배쯤 오른다거나, 반대로 몇 달 만에 반토막이 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두 배나 반토막 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달에 수십 퍼센트씩 오르거나 내리는 일은 거의 모든 종목에서 흔히 일어납니다. 심지어 며칠 만에도 그럽니다.

 

 그렇다면, 이 '주가'가 한 기업의 지분인 주식의 가치를 잘 매기고 있는 것 일까요? 그렇지 않아 보이는 이유는 주식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한 달 전 까지는 그 주식의 주가가 두 배쯤 될 때까지는 팔지 않으리라고 마음먹고 있던 사람도 한 달쯤 업황이나 시장에 비관적인 뉴스만 계속 듣다 보면 그 기업에 아무 일이 없었는데도 '반토막이 나기 전에 빨리 팔아 치워야겠군'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재가치'는 이 사람들의 심리적인 요인을 배제한, 기업의 실적 등과 같은 숫자로 계산할 수 있는 주식의 가치를 말합니다. 어차피 주가는 시장에서 매겨지는데, 그걸 계산해서 뭘 하냐고요? 돈을 법니다. '미스터 마켓'이 싸게 팔 때는 사고, 비싸게 사겠다고 할 때는 팔아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내재가치의 계산은 같은 숫자나 데이터를 보더라도 계산하는 사람마다 그 결과가 다르게 나옵니다. 거기에도 계산하는 사람의 심리가 반영되기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이 계산에서는 자신의 심리적인 요인을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제가 주식의 내재가치를 추정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이 주식 한 주당 최소한 이 정도의 가치는 있겠다 싶은 기준점이 있어야 합니다. EPS(주당순이익)나 BPS(주당순자산) 같은 것들 말입니다. 순이익은 매년 혹은 매분기 크게 바뀔 수 있으므로, 저는 주당순자산을 사용합니다. 재무상태표에서 보이는 '부채와 자본의 총계', 그러니까 총자산에서 부채를 뺀 것이 순자산(자본)이고, 그걸 발행된 모든 주식의 수로 나누면 주당순자산이 됩니다. 그러니까, 회사를 당장 팔겠다고 했을 때 최소한 이 정도는 받을 수 있겠다 싶은 돈이 내 주식 한주에는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가 주당순자산인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사양산업에 속한 회사와 같이 순자산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팔리는 회사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내 주식 한주에는 최소한 얼마가 들어있다고 가정해야 할까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 주식은 사지 않으면 됩니다. 따라서, 저는 사양산업이나 한계산업, 턴어라운드 종목 같은 것 들에는 투자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순자산이 없는 바이오나 신기술 종목 같은 것에도 투자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종목은 널렸는데, 굳이 최소한 얼마 정도는 받을 수 있을지 계산도 안 되는 종목을 살 필요가 있겠습니까?

 

 순자산도 매년 혹은 매 분기마다 조금씩 변합니다. 이익을 낸 경우 그 이익이 원래의 순자산에 쌓여 커지고, 적자를 낼 경우 빠지기 때문입니다. 또, 주당순자산 혹은 그 이하의 주가로 거래되는 주식들에는 사양산업이나 한계산업이 아니더라도 대개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익이 쌓이기 어렵거나 줄게 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당순자산 만을 기준으로 해서 주식을 사는 것은 내키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순자산이익률, 그러니까 ROE를 주당순자산에 곱해줍니다. 순자산이익률은 순이익을 순자산으로 나누어 나오는 값이므로 순자산의 성장률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순이익은 매년 혹은 매분기 크게 요동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기업의 최근 5년이나 10년의 평균 순자산이익률 중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낮은 값을 성장률로 사용합니다. 이때, 성장률이 10%를 넘지 않는 종목은 관심을 끊습니다. 몇 달 혹은 몇 년 안에 주가가 내재가치에 수렴하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므로, 10년을 보유한다고 가정하고 주당순자산에 성장률을 10년간 할증, 그러니까 열 번을 곱해줍니다. 그렇게 나오는 값이 그 종목의 10년 후 최소한의 내재가치가 됩니다. 개념은 대략 아래의 그림과 같습니다.

 

 

 10년 후의 최소한의 가치라고 하더라도 그 돈을 전부 주고 지금 그 주식을 살 수는 없습니다. 10년 동안 물가도 오를 테고, 기회비용의 포기, 그러니까 원금과 이자가 보장되는 회사가 발행하는 채권 같은 것을 포기하는 대신 원금과 이자가 보장되지 않는 주식을 사는데 대한 보상도 감안해야 합니다. 따라서, 물가상승과 기회비용을 합한 만큼의 할인률로 10년 후의 내재가치를 10년간 다시 힐인, 그러니까 열 번을 나누어 주어야 하는데, 저는 이 할인률로 10년물 국채 금리에 국내 종목은 BBB- 등급 회사채 금리를, 미국 종목은 'ICE BofA BBB US Corporate Index Effective Yield'를 합한 숫자를 사용합니다. 이렇게 해서 나오는 값이 그 주식의 내재가치 하단 부근, 그러니까 그 주식을 사야 할지를 적극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가격이 됩니다.

 

 그러면, 그 주식을 팔아야 할 순간은 주가가 내재가치의 상단에 근접했을 때일 것입니다. 그런데, 내재가치의 최상단을 계산하는 것은 틀릴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낙관적인 가정을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틀림없이 자신의 낙관적인 심리가 개입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경기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종목의 경우 내재가치 하단의 3배를, 경기나 산업의 주기에 영향을 받는 종목의 경우 내재가치 하단의 2배 부근을 내재가치의 상단, 그러니까 팔아야 할 가격으로 설정합니다.

 

 2~3배라는 숫자가 나온 근거는 제 나름대로의 연구에 의한 결과입니다. 그 이상 주가가 오르기도 하지만, 대개는 조만간 내재가치의 범위 안으로 주가는 수렴하게 된다는 것이 제 연구의 결론이었습니다.

 

 이것으로 제가 내재가치를 계산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은 끝났습니다. 그런데, 주식투자에서 정작 어려운 부분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주식을 산 이후 할증률로 사용한 ROE가 높아질지 떨어질지는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째, 찬물을 끼얹는 것 같은 말이지요?

 

 다행히 희망적인 소식이 있습니다. 한계산업이나 사양산업에 속한 종목, 미래에 대한 기대만으로 주가가 형성된 종목, 혹은 지난 5~10년간 이례적으로 좋았던 산업환경의 영향으로 ROE가 높아진 종목이 아니라면, 앞으로 몇 년 정도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대개 미래의 ROE도 지난 10년 정도의 ROE에 수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질적인 분석을 통해 그 성공확률을 더 높일 수도 있습니다.

 

 이쯤이면 이렇게 복잡하게 계산하고 고민해서 주식을 살 때 수익이 어느 정도 될지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미천하지만, 제 경험으로 얘기하자면, 종목분석에 큰 실수가 없었다면, 보통 5년 정도 보유해서 3~5배 정도 주가가 올랐을 때 매도하게 됩니다. 10년 정도는 보유할 작정으로 주식을 사지만, 그전에 주가가 제가 정한 내재가치의 상단 부근에 도달하는 경우가 많아서입니다.

 

 계산이 빠른 분이라면 'ROE가 15%라도 5년 후면 2배 정도가 되는데, 이 놈은 ROE가 20~30%는 되는 종목만 산다는 말인가?'라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높은 성장률이 장기간 지속되는 종목은 거의 없습니다. 성장률인 ROE보다 큰 시세차익이 나는 비결은 사람들의 심리이자 시장의 평가인 PER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ROE 15%인 종목을 PER 10배에 샀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매년 15%의 성장이 5년간 지속되면 2배의 성장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쯤 되면 시장에서는 그 종목을 PER 10배가 아닌, 20배 혹은 그 이상으로 가치를 매깁니다. 그러면 거기서 또 두 배, 즉, 성장률 두 배에 시장의 달라진 시선 두 배가 곱해져서 네 배의 시세차익이 생기게 됩니다.

 

2024년 4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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