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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10년을 보유할 주식 - 오리온 (코스피: 271560) (2)

 살이 찔까 봐서 예전처럼 과자를 자주 먹지는 않지만, 국가대표 축구경기라도 있는 날에는 꼭 사야 하는 과자가 있습니다. 바로, 파란 봉지에 담긴 '포카칩'입니다. 과자를 만드는 거의 모든 회사들이 감자칩 한두 종은 반드시 팔고 있는 것 같은데, 제 입에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포카칩'만 한 것이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 제게 '포카칩' 한 봉지와 '프링글스' 한 통을 내밀며 어떤 걸 먹겠냐고 묻는다면, 제 답은 '프링글스 따위는 개나 줘버려!'입니다.

 

 세월이 지나고 트렌드가 바뀐다고 사람들이 이런 간식거리를 안 먹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먼 옛날부터 어느 나라나 문화에도 간식거리는 있어왔기 때문입니다. 다이어트 약을 먹더라도 사람들은 군것질을 끊지는 못할 것이며,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제과회사들은 당이나 나트륨을 줄이거나 대체한 성분의 군것질 거리들을 출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군것질 거리들을 만드는 이 회사의 안정성과 성장성은 밝아 보입니다. 초코파이나 포카칩같은 과자류에는 나라나 인종, 문화에 따른 호불호가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더라도 회사가 보여준 실적이나 숫자들을 통해서 이런 안정성과 성장성이 읽히는지는 반드시 점검해 봐야 합니다. 숫자들을 통해서 안정성과 성장성이 읽히지 않는다면 제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르고, 유망한 업종이라고 해서 그 업종의 모든 회사들이 돈을 잘 벌고 유망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다음은 지난 15년간 이 회사 실적과 이익률의 추이입니다. 2017년의 추이가 보이지 않는 것은 당시에 회사가 지주회사인 '오리온홀딩스'와 제과업을 하는 이 회사로 분할되어서, 그 해의 숫자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왜곡의 소지가 크다고 생각해 지워버렸기 때문입니다.

 

G/M: 매출총이익률 / O/M: 영업이익률

 

 붉은 선의 영업이익이나 영업이익률이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는데서 내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는 확신을 얻게 되지만, 2012년 이후부터 2016년까지 꽤 길게 매출액의 추이가 정체되어 있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이익은 증가하고 있었고, 이미 지난 일인데,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나?' 하실지 모르겠지만, 매출액에서 비용을 제하고 남는 것이 이익이니, 매출이 증가하지 않는다면, 몇 해 정도는 몰라도, 언젠가는 이익도 줄게 되어 있습니다. 또, 경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이 회사의 특성을 생각할 때, 장기간의 매출 정체는 경쟁력이 떨어지거나 수요가 다른 대체재로 옮겨가며 이미 시작된 구조적인 침체의 징조일 수 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최근 몇 년간의 호실적은 오래가지 못할 일시적인 수요의 급증, 예를 들어 코로나 창궐로 딱히 다른 할 일이 없어진 사람들이 과자를 많이 먹었다거나, '꼬북칩'같은 것의 일시적인 히트로 얻어진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당시 매출정체의 이유를 파헤쳐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분할 이전의 실적에는 지금은 이 회사가 하지 않는 영화투자나 건설, 스포츠 토토 같은 사업들의 실적이 합해져 있으므로, 제과업 만의 매출추이가 어땠는지 보고 싶습니다.

 

 

 꽤 매출비중이 컸던 붉은 선의 '스포츠 토토' 사업은 연결매출의 증감과는 상관없이 거의 일정한 매출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스포츠 토토 수탁사업은 한때 제과부문 보다 많은 이익을 내는 사업이었지만 사행성 논란에 따른 당국의 규제강화로 이익률이 하락하자 2015년에 수탁사업을 종료했습니다.

 

 해당 기간, 그러니까 2012년 이후 분할 전까지 검은선의 제과부문 매출성장이 이전보다 완만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우선 안도가 됩니다. 하지만, 연결매출의 증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 도 제과부문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래의 제과부문과 그 외 부문들이 연결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제과부문의 매출은 2012년 이후에도 증가하고 있었지만, 그 성장이 둔화되면서 제과 외 부문들의 실적이 합해져서 연결매출의 정체라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제과업의 매출 성장은 2012년 이후 둔화되었던 것일까요?

 

 다음과 같이 매출비중이 큰 국내의 '(주)오리온'과 중국의 'Orion Food Co., Ltd.', 러시아 'Orion Int'l Euro LLC.', 베트남 법인의 매출액 추이를 그려봤습니다. 다른 법인들 중에는 포장이나 제조만 하는 법인들이 많아 보였고, 내부거래의 영향을 세세히 파악하기도 어려워서 이 네 개의 법인들만 보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범인은 붉은 선의 국내법인임이 명백해졌습니다. 중국법인의 매출성장도 2012년 이후 다소 둔화되기는 했지만, 국내법인처럼 줄어들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왜, 국내법인의 매출은 줄어들기 시작했을까요?

 

 아래는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서 찾은 수입 곡물가격의 연도별 추이입니다.

 

 

 이 그림을 아까 본 국내법인의 매출추이에 대입해 보면, 곡물가가 오르는 추세였던 2012년 경 까지는 매출도 성장하고 있었고, 곡물가가 떨어지는 추세였던 2017년 까지는 매출도 하락, 이후 곡물가가 오르자 매출도 다시 오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익률은 곡물가 상승기에는 큰 변동이 없다가 곡물가 하락기에 상승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원가를 소비자에게 전가하기 쉬운 업종의 특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곡물가가 오르면 과자가격을 올리지만, 곡물가가 내렸다고 바로 과자가격도 다시 내리는 일은 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한 가지는 '왜, 이런 현상이 유독 국내법인에서만 뚜렷이 보이느냐?'입니다. 답은 아래에 보이는 '인구 피라미드'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과자류는 아무래도 어린 사람들이 많이 먹으니, 5~29세를 주요 소비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법인의 매출이 줄어들기 시작한 2013년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10년쯤 전이니, 당시 주 소비층인 5~29세는 형광펜으로 표시한 지금의 15~39세에 해당되는데, 이전의 세대들에 비해 확연히 인구가 줄어든 것이 보입니다. 이보다 앞선 5년의 주 소비층, 그러니까 지금의 20~44세 인구와 2013년의 주 소비층 인구 변화를 주요 법인이 있는 나라별로 계산해 봤습니다.

 

 . 한국: 10.2% 감소

 . 중국: 1.3% 감소

 . 러시아: 2.5% 감소

 . 베트남: 0.6% 감소

 

 한마디로 국내법인은 주요 소비층 인구감소라는 거대한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시장자체가 더 이상 커지지 않으니 원가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변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최근 몇 년간 증가하고 있는 국내법인 매출은 조만간 다시 떨어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만약 이 회사가 다른 국내 제과회사들처럼 좁은 국내시장에 안주하며 수십 년 전부터 해외 진출을 하지 않았다면, 이 회사 역시 구조적인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을 것이라는 점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부분은 해결된 듯 하니 이익률의 그래프로 돌아가 보면, 분할 후 매출총이익률은 떨어지고 있는 반면, 영업이익률은 높아지고 있는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외주액이 늘어난 영향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작년에 썼던 글에서 바뀐 생각이 없으므로, 작년의 제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지금 제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의 관심사는 아마도 이런 것들이 아닐 것 같습니다. 아마 '최근에 이 회사가 한 바이오 회사 투자가 잘한 짓이었는가?'가 최대의 관심사일 것입니다. 다음의 그래프를 보며 설명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ROE: 순자산이익률 / BPS: 주당순자산 / FCS: 주당자유현금흐름

 

 분할 후 푸른 선의 유동비율과 주당순자산이 치솟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초록선의 순자산이익률은 영업이익률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분할 전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순자산이익률은 순이익을 순자산으로 나누어 구하고, 순이익은 영업이익에서 세금이나 잡다한 비용을 빼서 구하므로, 영업이익률이 높아지면 순이익률과 순자산이익률도 높아지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그럼에도 순자산이익률이 정체상태라는 말은 분자인 이익이 아닌, 분모인 순자산의 증가가 가팔라서 이익이 늘어남에도 그 이익률이 높아지는 것을 막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순자산 중 어떤 항목의 증가가 많았을까를 파악하기 위해서 분할 전이었던 2016년에 비해 2023년에는 어떤 자산의 항목이 크게 증가했는가를 알아봤습니다. 

 

 . 유형자산: 1.8조 원 -> 1.7조 원

 . 비유동금융자산: 1천억 원 -> 0.2천억 원

 . 재고자산: 1.9천억 원 -> 2.6천억 원

 . 매출채권: 1.9천억 원 -> 1.9천억원

 . 현금성자산: 3천억 원 -> 1.1조 원

 

 바로, 벌어들인 현금이 곳간에 너무 많이 쌓여서 순자산이익률을 떨어트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회사가 미래에 대한 투자를 등한시해서 이렇게 많은 현금이 쌓였던 것 도 아니었습니다. 최근 인도와 러시아에는 새로 공장을 지어 증설을 하고 있고, 미국에도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따라서, 이 회사로서는 남아도는 현금을 쓸 곳을 찾기는 했어야 합니다. 배당액을 대폭 늘린다던지, 자사주를 사서 태워 없애는 등의 방법들 말입니다.

 

 '왜, 그런 방법들을 놔두고 투기꾼들이나 하는 바이오 주식에 투자했는지?'에는 지주회사에 계신 회장님의 입김이 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배당은 세금문제 때문에 회장님들이 좋아할 방법이 아니고, 자사주 매입/소각은 주당가치라는 개념이 거의 없는 국내환경에서 역시 회장님들이 좋아할 만한 방법이 아닙니다. 회사주식을 회사돈으로 사서 태워 없애다니요?

 

 바이오사업은 이 회사가 아닌, 지주회사 차원에서 하던 사업이었는데, 그 이력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산동루캉바이오개발

 - 2020년 10월, 중국 국영 '산동루캉의약'과 합자계약

 - 2021년 3월, '산동루캉바이오개발' 설립 -> 국내 바이오 기술의 중국 내 임상/인허가/생산/판매 목적

 - 2021년 5월, '지노믹트리'의 대장암 체외진단 기술 도입 -> 11월 중국 실험실/생산시설 구축

 - 2022년 2월, '큐라티스'와 결핵백신 공동개발 계약 -> 산둥성 지닝시와 협력계약 백신공장 준공 중

 

2) 오리온바이오로직스

 - 2022년 11월, 치과질환치료제 개발사 '하이센스바이오'와 합자 투자계약 -> 중국/동남아 시장 向 제품개발 및 임상인허가 추진 예정

 

 그러니까, 많은 투자가 필요한 신약이나 바이오 기술의 개발이 목적이 아닌, 이미 국내에서 다른 회사가 개발한 약을 주로 중국에 파는 것이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연장선에서 볼 때 '레고켐바이오' 지분 25.7%를 산 것 역시 신약개발이라는 거창한 비전이 있었다기보다 단순한 지분투자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왜, 지주회사가 아닌 제과회사 돈으로 투자를 했을까?'라는 질문에는 지주회사는 그만한 돈이 없었던 반면, 제과회사는 넘치게 많은 현금의 사용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이번 인수가 이 회사 이익의 안정성을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오리온'이라는 그룹 차원에서도 제과업 외의 사업들은 부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보여서입니다. '바이더웨이'라는 편의점도 그랬고, '베니건스'라는 외식업도 부업처럼 잠깐 하다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앞에서 얘기한 '스포츠 토토'는 한때 본업보다 더 많은 돈을 벌던 사업이었는데도 사회적 인식이 안 좋아지자 미련 없이 접은 것을 볼 때 그렇습니다.

 

2024년 4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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