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투자

투자는 베팅이 아니다

 HTS나 MTS를 쓰지 않고 증권사에 전화를 걸어 주식을 사고파는 제게는 해당 지점에서 정해준 담당자가 있습니다. 저를 꽤 오래 담당해 와서 제 투자성향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종목추천 같은 것은 하지를 않습니다. 최근에 통화를 할 일이 있었는데, 말미에 제가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 10년물 ETF에 대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길래 무슨 얘기인가 하고 들어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국채에 투자한다는 것은 금리에 대한 베팅이고, 금리가 내릴때 만기가 길수록 채권 가격은 더 많이 오르지 않습니까? 어차피 미국 국채에 투자할 것이라면 가지고 계신 10년물 대신 20~30년물 ETF를 보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미국 국채 20~30년물 ETF의 가격 변동폭이 대개 10년물의 2배쯤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견 그럴듯한 말로 들립니다. 만약 실제로 조만간 미국 금리가 내려 10년물 채권 가격이 10% 정도 오른다면, 20~30년물은 20% 가까이 오를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에는 몇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미국 금리가 조만간 내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작년에는 미국 기준금리의 인하 시점을 올해 전반기로 예상하는 분위기였는데, 최근에는 하반기로 예측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올해 내로 내리지 못할 수도 있고, 내년에도 그때가 되어봐야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올해 하반기 쯤에도 미국 기준금리가 내려가지 않는다면 이미 하반기의 금리인하를 상정해서 형성된 채권가격은 다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환율의 영향입니다. 한국 채권이 아닌 미국 채권, 그러니까 조만간 미국 금리가 내릴 것으로 예상해서 달러로 미국 채권을 산다면, 실제로 미국 금리가 내려서 채권의  시세차익이 생겨도 환율의 영향으로 원화로 환산한 시세차익은 거의 없거나 심지어 손해를 볼 수 도 있습니다. 참고로, 어느 나라의 금리가 내리는 것은 그 나라 화폐의 평가절하 요인 중 하나입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미국 국채가격의 전망이 아닙니다. 사실 저는 미국 금리의 방향을 정확히 예측할 자신도 없고, 맞추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미국 국채를 사는 것이 당연히 미국 금리가 조만간 내릴 것이라는 방향에 대한 베팅이라고 생각하는 그 증권사 담당자의 태도에 대해서입니다. 아니, 그 증권사 담당자뿐만 아니라 아마도 주식을 하는 100명 중 99명은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투자를 한다는 것이 곧 가격의 방향을 맞히려는 베팅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투자는 가격의 방향을 맞히려는 베팅이다'는 결과적으로 만 보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결국 돈을 벌기 위해 주식을 사는 것이니, 가격이 오르지 않을 주식이라면 뭐 하러 사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가격의 방향을 맞춰 시세차익을 챙기려는 베팅에도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아무리 우량한 기업의 주가도 지난 10년 이상의 주가 추이를 보면 자를 데고 그은 것처럼 주가가 오르는 예는 없습니다. 대개 몇 달에서 길어야 1년 정도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고 나면 2~3년에서 길게는 5년 이상도 주가가 내려가거나 지지부진한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심지어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는 짧은 기간 동안에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주가는 오릅니다.

 

 그렇다면, 10년 정도 후의 주가 방향을 예측해서 베팅을 할 수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오늘 산 주가가 5년 정도 계속 떨어져서 반토막이 나더라도 베팅을 철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그쯤 되면 100명 중 99명은 이미 베팅을 철회했거나, 이미 늦었다는 심정으로 원금회복만을 바라며 포기하는 심정으로 물려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기대수익률을 낮춰 짧은 기간만 주식을 보유하면 어떨까요? 또, 그러려면 어느 정도의 목표 수익률로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주식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요? 30%? 20%? 10%? 5%?, 보유기간은 6달? 2~3달? 2~3주? 하루?

 

 점점 불가능한 도박의 늪으로 빠져 드는 것 같습니다. 한두 번 운 좋게 딸 수는 있겠지만, 결국 도박장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도박장 주인 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분이라면 젊은 시절에 내게 호감이 있어 보이는 여자를 쫓다가 오히려 멀어지거나, 큰돈을 벌 기회를 쫓다가 오히려 돈이 멀어진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여자는 이미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니 내 생활에 충실하다 보면 언젠가 그 여자와 가까워질 기회가 생겼을 것이고, 돈도 내가 하는 일에 충실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왔을 것인데 말입니다.

 

 주식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세차익만 좇다 보면 돈은 점점 더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주가는 그 기업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나무에 햇볕이 어느 방향에서 비치는지에 따라 그림자는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지만, 나무가 자라면 결국 그림자도 커지게 되어 있습니다.

 

2024년 2월에, 동해에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