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갯속에 쌓여있어서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짙은 안갯속에서도 산의 능선이라던가, 숲, 언덕 등의 거대한 지형지물의 윤곽은 어느 정도 보이므로 우리는 이런 지형지물의 윤곽을 따라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내일 일도 모르면서 10년 앞을 내다보고 투자를 한다는 말이 허황된 얘기처럼 들리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래라는 짙은 안갯속에서도 큰 지형지물의 윤곽은 식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환경을 오염시키는 석유나 석탄의 수요는 점차 줄어들 것 이라던지, 사람들은 갈수록 건강과 편안함을 추구하며 더 오래 살게 될 것, 그리고 디지털 기술은 더 발전할 것이라는 등의 윤곽 말입니다.
내일이나 내년에 사람들이 석유를 더 쓸지 덜 쓸지를 맞히기는 어려워도 10년쯤 후에는 확실히 사람들이 석유를 오늘보다 덜 쓰고 있을 것이라는 점은 대단한 미래학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먼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고 내일이나 몇달 후의 주가의 방향을 맞히려고 하는 것은 칠흑 같은 밤중에 시골길을 걸을 때 보이지 않는 앞만 보고 걷는 것과 같습니다. 이럴 때는 달빛에 비친 산등성이나 숲, 언덕의 윤곽 등을 통해 자신의 위치와 방향을 가늠해야 합니다.
그런데, 미래를 보고 투자한답시고 2차전지와 같은 산업의 역사가 짧고 미래의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는 산업에 투자하려는 것은 확실치 않은 윤곽을 이정표로 삼아 달빛도 들지 않는 어두운 길로 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최근 사람들이 미래의 산업이라고 열광했던 인터넷플랫폼, 바이오, 2차 전지, 반도체 산업 중 저에게 윤곽이 확실히 보이는 산업은 반도체뿐입니다. 산업의 역사가 오래되어 과점화가 상당히 이루어졌고 (진공관 트랜지스터 시대부터 계산하면 백 년쯤 됩니다), 5G의 도입 > 사물인터넷의 확산 > 4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질 확실한 윤곽의 모든 단계에서 수혜를 입을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래의 반도체 매출액의 성장률 추이를 보면 진폭이 크고 길었던 과거와 달리 갈수록 진폭과 주기가 짧아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과거 컴퓨터 위주의 수요에서 최근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기기, 자동차 등 응용처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도체산업 중에서도 디지털 프로세서나 메모리 같은 디지털 반도체보다 아날로그 반도체 분야를 선호하는데, 디지털 프로세서 같은 분야는 고객사들이었던 애플이나 구글, 삼성도 최근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추세이고, 메모리는,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아무래도 중국의 부상이 꺼림직해서입니다.
반면 아날로그 반도체 분야는 백 년에 가까운 역사를 거치며 과점화 되어왔고, 최근 수십 년간 주목할만한 신규 진입자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매력적인 산업에서 이름에 조차 아날로그가 들어가는 동사를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동사는 1965년 MIT 졸업생 두 명이 창업한 이래 반도체 역사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제가 이 주식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동사의 제품들이 아날로그 반도체의 특성상 최소 2년 이상의 제품 주기를 가지며, 매출의 절반 이상은 출시된 지 10년 이상의 제품들에서 발생하는데, 이는 디지털 프로세서나 메모리 같은 분야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제품 주기가 길다는 말은 재고의 진부화 위험이 낮다는 말로, 이는 장기투자의 대상으로서 필히 갖추어야 할 안정성이라는 덕목을 가지게 됩니다.
또, 동사의 제품들은 진동칫솔에서 자율주행 시스템까지 응용분야가 매우 다양하여 무려 10만 이상의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쯤이면 동사의 미래 성장에 대한 의심의 여지는 사라졌을 것이므로 과거 실적의 추이를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과거의 실적을 점검하는 이유는 과거에 못했던 기업보다 과거에도 잘했던 기업이 미래에도 잘할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주가와 실적이 꾸준히 우상향 하는 이상적인 추이입니다. 최근 2년간 하락한 실적에도 주가는 올랐던 것을 보면 시장에서도 저의 생각에 동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래와 같이 ROE는 2011년 경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점이 개운치 않아 보입니다. 저의 글을 꾸준히 읽고 있는 분들이라면 제가 얼마나 ROE를 중요시하는가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른쪽의 이익률 추이는 감소의 경향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ROE, 그러니까 순자산 이익률은 순이익을 순자산으로 나누어 구하므로, 이익이 줄지 않았다면 순자산이 크게 늘었다는 말이 됩니다. '순이익률이 아닌 매출 총이익률(G/M)과 영업이익률(O/M)만 보고 어떻게 그렇게 쉽게 결론을 내리나?'라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1~2년이 아닌 장기의 추이에서는 결국 순이익률도 전반적인 이익률에 수렴하게 됩니다.
동사의 순자산 증가가 가팔랐던 것은 앞에서 얘기한 아날로그 반도체 업계의 과점화라는 경향에서 생각해보면 쉽습니다. 과점적인 구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경쟁자들이 망해서 사라지거나 인수/합병을 통해 경쟁자들의 수를 줄여야 하는데, 아날로그 반도체 업계의 경우는 주로 인수/합병을 통해 오늘날의 과점화가 이루어져 왔습니다. 실제로 동사의 재무상태표를 보면 주로 인수/합병의 결과로 생기는 영업권과 무형자산의 비중이 무려 74%에 이릅니다.
Goodwill, 그러니까 영업권은 인수/합병을 할 때 지불한 전체 대금에서 상대회사의 현금성 자산과 공장, 설비, 토지 같은 유형자산을 제외한 금액을 기록하는 항목으로, 인수된 회사의 연구/개발 역량이나 제품을 팔 수 있는 고객과의 관계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이 이 항목에 녹아있는 것입니다.
영업권과 무형자산은 회계의 규칙상 수년에 걸쳐 서서히 비용으로 상각 하게 됩니다. 즉, 우선 재무상태표에 숫자만 기록해 놓고 천천히 손익계산서에서 빼주는 셈인데, 이미 인수 시에 대금은 지급되었으므로, 실제로 비용이 나가지는 않습니다. 회계상의 숫자놀음일 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영업권과 무형자산은 상각이라는 과정을 통해 장부상에서는 사라지지만, 인수한 회사의 연구/개발 역량이나 고객관계 등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이익을 만들어줍니다.
인수/합병을 무리한 빚으로 완성했다면 영업권과 무형자산은 상각을 통해 줄어들더라도 빚과 이자는 두고두고 부담이 되겠지만, 감당할 수 있는 빚과 주식발행, 또는 보유한 현금으로 완성한 인수/합병이라면 상각을 통해 줄어들 순자산(영업권과 무형자산)과 인수/합병의 결과로 늘어날 순이익을 고려하면 ROE는 증가하게 됩니다.
동사는 물론 후자의 경우입니다.
2021년 3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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