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의 작년 영업실적은 직전년과 비교해 매출은 5.3%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2.8% 감소했습니다. 간혹 가치투자를 한다면서 매년 혹은 매분기마다 실적 둔화의 원인을 분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기업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거나 투자의 기간을 너무 짧게 생각하는데서 비롯된 조바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의 경우는 그 기업에 그 해 큰 변화가 있었거나 15년 정도의 장기추이에서 실적이나 이익률의 추세적인 하락이 보이지 않으면, 실적이 다소 둔화되었더라도 굳이 그 이유를 분석하지 않고, 그 기업을 믿는 편입니다. 기업을 믿지 못한다면 처음부터 투자를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주식의 장점과 성장성에 대한 '10년을 보유할 주식 - KCI'에 썼던 제 생각은 변함이 없고, 아래의 동사 실적과 이익률의 추이에서 추세적인 하락은 감지되지 않았으므로 몇주전까지 올해는 이 주식에 대해 뭔가 분석할 것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가끔 '네이버 증권'에서 제가 보유한, 혹은 관심있는 종목들의 주가를 확인하는데, 몇 주 전에야 이 주식의 '종목 토론방'이 동사 노조의 파업 문제로 시끄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올라와있는 글들 대부분이 주가 부진의 이유로 파업을 탓하고 있는데,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파업이 본격화된 작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주가는 채 10%도 빠지지 않았고, 10~20%의 주가등락은 아무 이유 없이도 나타나는 주식시장의 흔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중소형주의 소외는 짧으면 2~3년에서 길면 5년 정도도 이어질 수 있는것 또한 시장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현상입니다. 대신, 그 소외주가 수년간 꾸준히 우상향 하는 실적을 보여주면 시장은 뒤늦게 그 주식이 높은 수익률을 안겨주는 종목임을 깨닫고 비슷한 이익률이 보이는 다른 종목들의 PER만큼 평가기준을 높이게 되므로, 그 주식을 사서 참고 인내했던 투자자는 자신의 인내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됩니다.
제가 동사에서 발생한 파업을 걱정하는 이유는 당장의 주가 때문이 아니라 '장기적인 성장성이 훼손되지 않을까?'여서입니다. 동사의 파업은 자동차회사나 철강회사에서 발생한 파업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사려는 차가 파업으로 출고가 늦어진다고 하면 소비자는 다른 차를 사거나 급하지 않다면 기다릴 수 있습니다. 또, 철강회사 한 곳이 파업했다고 올라가던 빌딩 공사가 멈추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파업만 끝난다면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차를 다시 살 것이고, 철강의 품질과 가격만 좋다면 과거에 파업을 했던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반면, 동사가 공급하는 샴푸나 화장품의 원료는 얘기가 다릅니다.
산업의 특성상 완전히 동일한 원료를 다른 회사에서 만들 수 없으므로, 존슨앤존슨이나 로레알같은 고객들은 재고로 버티어야 하는데, 파업이 길어져 원료 수급에 차질이 생긴다면 다른 회사에서 구한 비슷한 원료로 다시 성분인증을 받거나 '바세린 로션'을 '뉴 바세린 로션'으로 재출시해야 하는데, 이는 모두 추가로 비용이 발생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파업이 길어지거나 자주 파업이 발생한다면 고객들은 그 기업을 믿지 못하고 다른 믿을만한 공급자를 찾게 될 것입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해본 분들이라면 한번 떠난 고객을 다시 붙잡기가 새로 고객을 발굴하기보다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 파업의 심각성을 깨달았으니, 먼저 이 파업의 경과를 2021년 1월 6일 자 '오마이 뉴스' 기사의 내용으로 요약해 보겠습니다.
- 2020년 6월,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KCI지회 출범 > 교섭을 진행하였으나 사측의 불성실한 태도로 10월 6일에 조정신청
- 2020년 10월, 81명 재적 전원 찬성으로 파업 가결 > 조합 사무실, 지회장 전임 조건으로 교섭 재개
- 2020년 12월, 교섭 결렬로 특근당직 거부 > 12월 17/23/24일 경고파업
- 2021년 1월 4일, 무기한 파업 돌입
기사 내용으로만 보면 노조는 교섭을 원하는데, 사측은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튜브에서 찾아본 노조대표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 수년간 임금인상이 없어서 동종업계의 기업들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있고, 사측에서 제시한 터무니없이 낮은 폭의 임금인상이 교섭 결렬의 주요 원인이었다고 하니, 동사 직원들의 급여에 대한 불만이 파업의 주요인으로 보입니다.
아래는 동사의 사업보고서에서 찾은 작년의 급여내역입니다.
네이버 증권 토론방에서는 '연봉 5천5백이 적냐?'라며 동사 노조를 귀족노조나 강성노조로 취급하며 분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사업보고서에 있는 연간 급여총액은 직원들이 받는 급여명세서의 총액과는 다릅니다. 사측에서 지급하는 금액에는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퇴직연금, 고용보험 등의 회사 부담분은 물론, 간접적인 직원들의 복지비용도 포함이 됩니다. 또, 상법에서는 '미등기임원'도 직원으로 간주하고 있어서, 이들의 급여까지 직원의 연간 급여총액에 포함됩니다. 동사의 '미등기임원 보수 현황'이 텅텅 비어있는것은 미등기임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공시할 의무가 없어서 입니다. (공시했더라도 어차피 직원의 연간급여총액에 포함됩니다.)
실제로 동사의 등기임원 현황을 보면 아래와 같이 매일 출근하는 이사는 대표이사 한 명뿐인데, 직원이 170명인 회사에 매일 출근하는 이사가 한 명뿐일 리는 없습니다.
또, 직장생활을 오래 해 본 분이라면 부장 3~4호봉부터는 연봉이 이전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것인데, 이렇게 생각하면 동사의 직원 중 연봉 4천만 원 이상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이라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동사 노조가 최소한 귀족노조는 아님이 명백해졌으니, 이제 동종업계 대비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래는 동사와 비슷한 화학업종의 기업들 중 꾸준히 흑자를 내는 몇몇 기업들의 사업보고서에서 찾은 급여를 정리한 표입니다.
동성화학이나 NPC, 대유처럼 평균급여가 높지는 않지만 평균근속연수에 비하면 동사의 급여가 그렇게 낮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1인당 순이익을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면 노조가 주장하는 모기업인 삼양사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고있는지도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평균급여가 더 높기는 한데, 2배 가까이 더 긴 평균 근속연수를 생각하면 크게 차별을 받고 있다고 보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사실 처음 노조대표의 인터뷰를 보았을 때만 해도 '내 기업의 직원들이 이토록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었다니, 노조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글을 써보자'해서 이런 조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숫자로 드러난 사실들은 노조의 주장들과는 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가 동사의 근로자는 아니기에 근무환경을 체감할 수 없고, 소액이지만 주주이기에 직원들과는 상반되게 회사의 이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면도 있을 테지만, '꼭 파업까지 갔어야 했을까?'라는 질문에는 많은 의문이 듭니다.
실제로 파업이 장기화되어 고객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징후가 보인다면 저는 이 기업에 대한 제 투자를 철회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당장 투자를 철회하지 않는 이유는 동사가 1985년에 건창화학으로 창립해 꽤 오랜 업력을 가진 회사라는 점과 모기업인 삼양사가 100년에 가까운 업력을 가진 회사라는 점에서 입니다. 100년의 역사라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겠습니까? 100년의 노하우를 가진 임원들이라면 이번 사건도 충분히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사의 파업을 보며 저는 두 가지를 새삼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분산투자의 중요성입니다. 아무리 확신하는 주식이었다고 하더라도 이 종목에 몰빵을 했거나, 투자의 비중이 매우 컸다면 저는 지금처럼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분석을 못하고 불안한 마음에 이 주식을 팔아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주 사고팔아서는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을 달성하기가 힘듭니다. 반면, 저는 여러 종목에 분산투자하고 있기에, 설령 이 회사가 망한다고 해도 크게 두렵지는 않습니다.
둘째는 주가가 쌀 때 주식을 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주식이 저평가 상태가 아니었다면 이번 파업으로 주가는 10%가 아닌 20~30%에서 많게는 반토막까지 떨어졌을 텐데, 그랬다면 제가 지금처럼 멘탈을 잡고 있을 수 있을지에는 회의적입니다.
주식시장에서 장기적으로 성공하는 길은 좋은 주식이 저평가되어있을 때 사서 오래 가지고 있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노조가 파업 한번 했다고 주식을 팔아서는 큰 수익을 거두기가 힘들 것입니다.
2021년 3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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