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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주가의 정배열

 저는 차트나 수급분석에 관심도 없고, 공부를 해 본 적도 없습니다. 아침마다 보는 증권 방송에서 요즘 '주가가 정배열에 들어왔다'라는 말이 자주 들려서 인터넷에서 찾아본 '정배열'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매경시사용어사전의 정의입니다.)

 

 주가가 정배열로 전환됐다는 것은 장기 이동평균선(120일)이 제일 밑에 위치하고 중기 이동평균선(60일)이 중앙에, 단기 이동평균선(20일)이 제일 위에 위치한 상태를 말한다. 또한, 상승 추세가 자리를 잡은 것으로 그 관성의 작용에 따라 추가 상승 확률이 높다고 한다.

 

 주식투자가 물리학도 아니고, 관성이라는 용어가 왜 등장하는지 모르겠지만, 국내 유수의 경제지에서 내린 정의이고, 또, 일견 그럴듯하게 들리므로 호기심이 생겨서 과거 주가 차트를 통해 검증해 보기로 했습니다.

 

 매수/매도의 조건은 위의 정의와 동일하게 했습니다. 즉, 일봉이 20일선위에, 20일선은 60일선 위에, 그리고 60일선은 120일선 위에 위치한 날의 종가에 사서, 정배열이 흐트러지는 날의 종가에 파는 것으로 했습니다. 아래의 그림이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흑색선: 120일선 / 청색선: 60일선 / 적색선: 20일선)

 우선, 작년에 제가 보유했던 종목중 하나인 '유나이티드제약'의 2020년 초 이후 일봉 차트를 통한 검증입니다. 보유기간과 수익률은 아래와 같습니다.

 

 - '20년 6월5일 매수@19,750원 -> '20년 7월 16일 매도@24,550원 (수익률: +24.3%)

 - '20년 8월13일 매수@27,650원 -> '20년 9월 22일 매도@79,500원 (수익률: +187.5%)

 - '20년 12월28일 매수@67,600원 -> '21년 1월 11일 매도@56,400원 (수익률: -16.6%)

 - 총수익률: +198.2%

 

 총수익률은 20년 6월의 첫 투자에서 얻은 수익을 모두 나머지 두 번에 재투자한다고 가정하여 얻은 수익률입니다. 414일간의 해당 기간 중 95일간 주식을 보유하여 3배에 가까운 수익을 얻었는데, 연 수익률로 환산하면 무려 8배가 넘습니다. 즉, 해당 기간 중 동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기간 동안 다른 주식을 사서 비슷한 수익을 얻었다면, 한해에 무려 8배가 넘게 벌었다는 말이 됩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투자를 10년 넘게 해왔는데, 이렇게 쉽고 짜릿한 투자법이 있다니.. 심장이 뛰지만 다른 종목에서도 검증을 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다음은 '하이록코리아'의 2016년 4월 이후 일봉 차트를 통한 검증입니다. 

 

 - '17년 5월 2일 매수@22,450원 -> '17년 5월 29일 매도@24,100원 (수익률: +7.4%)

 - '18년 1월 29일 매수@25,700원 -> '18년 2월 6일 매도@25,700원 (수익률: 0%)

 - '18년 5월 15일 매수@32,900원 -> '18년 5월 24일 매도@28,750원 (수익률: -12.6%)

 - '18년 6월 13일 매수@30,600원 -> '18년 6월 14일 매도@30,100원 (수익률: -1.6%)

 - '19년 4월 17일 매수@20,200원 -> '19년 4월 25일 매도@20,300원 (수익률: +0.5%)

 - '19년 11월 13일 매수@18,000원 -> '19년 11월 19일 매도@17,600원 (수익률: -2.2%)

 - '20년 1월 2일 매수@18,250원 -> '20년 1월 3일 매도@17,550원 (수익률: -3.8%)

 - '21년 1월 22일 매수@13,950원 -> '21년 1월 29일 매도@14,100원 (수익률: +1.1%)

 - '21년 2월 2일 매수@14,700원 -> 현재 15,650원 (수익률: +6.5%)

 - 총 수익률: -6.2%

 

 자, 어떤 느낌이 드는지요? 다른 종목을 좀 더 검증해 보면 '유나이티드제약'과 비슷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던 종목을 찾을수 있을것 같은지요? 저는 완전히 흥미를 잃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유나이티드제약'의 경우 작년 연초에 매수해서 지금까지 쭉 보유했어도 이 매매법과 비슷한 수익률을 얻을수 있었습니다. 즉, 이 매매법이 작년에 '유나이티드제약'에 먹힌 이유는 그냥 동 주식의 주가가 작년 대부분의 기간에 오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저의 경우는 이 주식을 작년에 제가 생각하는 내재가치의 아래에서 매수하여 내재가치 상단을 초과하는 가격에 매도함으로써 5배에 가까운 수익을 얻을수 있었습니다.

 

 차트와 수급을 보며 단타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동평균선만을 지표로 삼고 있지는 않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볼린저밴드니 오실레이터니, 심지어 그래프의 형상까지 분석하는데, 제 눈에는 동전 던지기를 해서 만든 차트(이를테면, 앞면이면 양봉, 뒷면이면 음봉, 앞면이 연속 두 번이면 장대양봉..)를 분석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런 비과학적인 방법을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추종할까?'를 생각해 보면, 우선 쉽고, 나타나는 현상만을 보고 매매를 하기에 깊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 일 것입니다. 에디슨이 말했듯,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가가 오르는 시기에만 주식을 사려고 하기에, 그때는 이런 매매법이 잘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주가가 오르는 시기에는 확률상 들어맞는 경우가 많을 뿐입니다. 상승장에서 원숭이가 고른 종목들이 펀드매니저를 앞섰다는 얘기를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차트분석에 대한 제 생각은 길게 얘기했으니, 수급분석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거래량은 거래가 많아지면 증가하는 것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으면 주가는 오르고, 파는 사람들이 많으면 주가는 떨어집니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으며, 수급을 분석해 주가의 향방을 예측하는 것은 내일은 사는 사람들이 많을지 혹은 파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를 예측한다는 말인데, 이는 곧 내일은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를 예측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됩니다.

 

 만약 내일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를 정확히 맞추는 사람이 있다면 워런 버핏이나 피터 린치보다 높은 수익을 올렸을 것이 분명하므로 제가 들어보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사람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간혹 오래 보유할 우량주 계좌와는 별도로 잃어도 될 소액으로 계좌를 따로 만들어 단타를 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우량주 계좌까지 헐어 단타를 하다가 몽땅 털릴 확률이 높아 보여서입니다.

 

 잃어도 될 돈은 결국 잃게 되어 있습니다.

 

2021년 2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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