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장 상황을 관찰하다가 2000년대 원자재 랠리가 본격화되었던 2004년 4월 경과 비슷하게 구리 가격이 저점 대비 두배 가량 상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아래의 추이를 보면 당시와 비슷하게 미국의 장단기 금리차가 크게 확대되어있는 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축의 눈금이 로그값이 아닌 지수값으로 되어있어서 당시의 장단기 금리차에 비해 지금의 차이가 작아 보일지 모르겠으나, 당시 10년 물 국채금리가 3개월 리보금리 대비 4배 정도 높았던데 비해 지금은 거의 8배가 높습니다.
금리가 오르고 원자재 랠리가 있었던 2004년에서 2007년 경의 기간은 광산주, 철강주, 건설주, 조선주, 해운주 등의 '중후장대 산업'의 주식들이 성장주 대비 주가 상승폭이 컸는데, 특히 한국시장의 성과가 매우 좋았습니다. 이유는 이런 경기 변동주들이 한국시장에는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당시 이들 '중후장대주'들의 성과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2004년 4월에서 2007년 11월까지의 주가 상승폭을 제 관심종목들 중 당시 주가의 추적이 가능한 종목들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국내시장: 2004/4월~2007/11월 주가상승 폭>
- 관심종목: LG생활건강 2.7배, 오뚜기 3.7배, 오리온 3.8배, 에스에프에이 4배, 한솔케미칼 2.2배, 리노공업 1.4배
-> 평균: 3.3배 / 연복리 수익률: 40%
- 중후장대주: 한국조선해양 17.3배, 현대미포조선 17.5배, 대우조선해양 3.8배, 삼성중공업 8.1배, 대한해운 10.7배, HMM 6.2배, 포스코 4.1배, 현대제철 6.8배, 고려아연 6.7배, LG화학 2.1배, 에스오일 1.8배
-> 평균: 7.7배 / 연복리 수익률: 77%
3년반 정도의 기간 동안 관심종목들도 평균 3배 정도 주가가 올랐지만 중후장대주들의 8배에 가까운 상승에는 비할바가 아닙니다. 그러면 미국 시장도 비슷했을지 봐야겠습니다.
<미국시장: 2004/4월~2007/11월 주가상승 폭>
- 관심종목: ACN 1.5배, ROST 0.9배, TXN 1.3배, NKE 1.8배, SBUX 1.2배, LVMH 1.4배, HRMS 1.6배, TSM 1.3배, ADI 0.7배, KLAC 1.2배, CNI 2.6배, ODFL 1.4배, AOS 1.2배, CCF 2.6배, HXL 3배
-> 평균: 1.6배 / 연복리 수익률: 13.7%
- 중후장대주: 리오틴토 5.2배, BHP 4.6배, 프리포트맥모란 3.2배, 보잉 2.2배, 엑슨모빌 1.9배, 캐터필러 1.8배
-> 평균: 3.2배 / 연복리 수익률: 38.4%
전반적인 상승폭이 국내시장보다 낮기는 했지만, 역시 중후장대주들의 수익률이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앞으로 수년간 펼쳐질 경우, 특히 미국 주식을 절반에 가까운 비중만큼 보유하고 있는 저로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성과에 만족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근 테슬라나 엔비디아 같은 성장주들의 주가 하락과 원자재 가격의 상승, 조선사들의 수주 소식, 그리고 포스코나 HMM 같은 중후장대주들의 강세를 보면 '무언가 큰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뭔가 시장상황에 쫓기는 기분이지만 중후장대주를 살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식들에는 문제가 좀 있습니다. 원자재 랠리가 있기 직전까지 대부분의 중후장대주들은 수년간 적자를 지속했거나 실적이 지지부진해서 제 평가기준으로는 매수는커녕 관심종목에도 들어갈 수 없는 종목들이 대부분인 것인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그나마 2004년 이전까지 실적이 양호했던 LG화학, 에스오일, 대우조선해양의 해당 기간 수익률은 관심종목들의 수익률보다 나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턴어라운드 주식은 어떻게 발굴해야 할까요? 며칠간 고심을 하다가 다음과 같은 조건과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1) 이런 중후장대 기업들은 제품의 차별이 없거나 미미하기에 실적은 오로지 시장 상황에 좌우된다.
2) 따라서, 기업의 분석은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적자를 지속하다가 경기반등시점에 막 흑자 전환한 기업들의 주가 상승률이 높았다. (한국조선, 현대미포, 대한해운 등)
3) 2004년 4월과 비슷한 구리가격의 상승과 미국 장단기 금리차가 보이는 현재가 매수의 적기로 보이며, 2007년 11월과 같이 미국 장기금리의 큰 하락이 보일 때가 매도의 적기로 보인다.
4) 이런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업종의 경기예측이다.
시장상황에 쫓겨서 제가 기피하는 미래 상황에 대한 예측을 바탕으로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 내키지는 않지만, 어떻습니까? 17배를 벌수만 있다면야.
위는 '네이버 금융'에서 찾은 HMM의 최근 실적으로, 제가 세운 조건에 아주 잘 부합되므로 이제 해운업의 경기만 잘 예측하면 17배를 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최근 동사와 해운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기사를 많이 보았으므로 희망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조사를 하다가 다음과 같은 도표를 봐 버렸습니다.
전 세계 컨테이너선들의 유휴 캐파, 그러니까 멀쩡하지만 쉬고있는 배들의 선적능력입니다. 노란색의 예측치는 제외하고 코로나 사태 발발 직전의, 아니, 2010년대의 전반적인 유휴캐파가 2004년 경과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높은것을 알수 있습니다. 물론 국제해사기구의 환경규제로 운항을 하지 않고있는 배도 많을것이나 운송료가 계속오른다면, 제가 선주라면 스크러버를 설치해 돈을 벌게 할것 같습니다.
문제는 해운업뿐이 아닙니다. 아래는 전세계 조강생산 가동률(빨간색)입니다.
생각해보면 2000년대 후반의 원자재 랠리는 중국발 수요의 급증 때문이었습니다. 전 세계 GDP 중 중국의 비중은 2000년 2.4%에서 2010년 9.2%로 확대되었고, GDP 규모는 무려 5배가 넘게 증가했습니다. 현재 인도와 동남아의 비중을 합하면 2006년의 중국 비중을 상회하므로 앞으로 남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이 당시 중국만큼의 수요를 창출하지 않을까를 생각해보아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성장률이 좀 많이 낮아 보입니다.
또, 중국은 공업 중심 성장노선을 택했던 하나의 국가였던데 반해, 남아시아의 나라들 중에는 공업 중심의 경제구조가 아닌 나라들이 많은 점을 생각하면 당시와 비슷한 원자재 랠리를 기대하기는 좀 많이 어려워 보입니다. 즉, 지금과 같은 큰 폭의 원자재 가격 상승이 앞으로도 수년간 지속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과거의 어떤 패턴은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였을 뿐, 비슷한 지표들이 보인다고 미래에도 그 결과가 반복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그런 지표들이 가리키는 방향성만을 추종하는 것은 투기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어쨌든 몇 주 전만 해도 2차전지를 부르짖던 시장이 요즘 갑자기 가치주를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가치주는 경기의 주기가 긴 중후장대주 중에도 있지만, 사전적인 정의는 기업이 버는 이익에 비해 주가가 낮은, 즉, PER가 낮은 주식을 의미합니다. 금리가 오르면 기관투자자들이 주도하는 주식시장 (외국인도 기관투자자들입니다)에서는 성장주의 가치를 낮출 수밖에 없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기관투자자들은 성장주의 적정주가를 계산할 때 10~20년 정도 후의 미래가치를 현재의 금리로 할인해 적정주가를 구합니다. 그런데, 금리가 2% 오른다고 가정해, 오른 폭만큼인 2%를 10년간 할인하면 주가는 20%가 떨어져야 합니다. '금리가 겨우 영점 몇 퍼센트 올랐는데 2%나 할인을 할까?' 싶지만, 금리가 오르는 시기에는 금리가 오를 때마다 목표주가를 자주 수정하는 대신 그렇게 큰 폭의 여유를 가지고 목표주가를 정하는 편이 났습니다.
금리가 계속 상승한다면 지금과 비교해 3~4%의 폭으로도 할인을 할 텐데, 4%로 10년을 할인하면 주가는 반토막이 됩니다. 이것이 아무리 미래가 찬란해 보이는 주식이라도 비싼 가격에 따라 사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반대로, 꾸준히 이익을 챙기고 있었지만 성장성이 낮다고 취급받아 현재의 가치로만 주가가 매겨지던 기업들은 이런 시기에는 주가가 오르게되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경기가 좋아 금리가 오르는 것이니 호경기에 이익이 늘고, 둘째, 떨어지는 성장주를 팔고 가치주를 사면서 이런 주식의 수요가 증가해서 입니다.
꾸준히 수익을 내는 기업의 주식을 낮은 가격에 샀다면, 지금의 소동과 앞으로의 큰 판의 변화를 재미있게 관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원자재 랠리 당시 제 관심종목들의 수익률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2021년 3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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