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증권 방송을 보다가 전문가라는 누군가가 몇 가지 지표를 제시하며, '주가가 고점 부근인데, 굳이 지금 성장주를 사야 할까요?'라고 하는 말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그 전문가라는 사람이 제시하는 지표들만 따라가다 보니, 저도 순간적으로 '지금 주가가 고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해외에서도 현재 주가의 고점 논쟁은 있으므로, 이 주제에 대해 제 생각도 애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래는 '주가 고점론자'들이 가장 많이 근거로 제시하는 '쉴러 PER'입니다. 일반적인 PER은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누어 구하므로, 그해의 이익 변동으로 왜곡될 수 있는데 비해, 쉴러 PER은 순이익에 물가를 반영한 10년간의 평균값을 사용하므로, 이러한 왜곡으로 인한 착시를 제거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시장의 고점 논쟁이 불거질 때마다 자주 인용되는 지표입니다.
38.58배라는 현재의 비율은 2000년 IT버블때 보다는 낮은 값이지만, 2008년 리먼사태 직전이나, 심지어 1930년대 경제대공황 직전의 고점보다 높은 수준입니다. 쉴러 PER까지 가지 않더라도 아래의 그래프에서 검은선으로 보이는 S&P 500 지수는 현재 2007년의 고점 대비 세배 가까이 올라있습니다.
마치 미국의 주가지수가 붕괴직전의 고점에 근접한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 미국 시장이 폭락한다면 한국에는 그보다 큰 폭락장이 도래할 것이고, 시장의 폭락에서 자유로울 종목은 없다는 것쯤은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임박한 것처럼 보이는 폭락장이 올 때까지 주식투자를 쉬어야 할까요? 아니면, 주식을 팔아 하락장에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인버스나 곱버스 같은 상품을 사야 할까요?
그런데, 앞의 그래프로 돌아가서 파란색 선의 미국 장기금리 추이를 자세히 보면, 리먼사태 전에는 3.5~7% 정도에서 움직이던 장기금리가 리먼사태 이후에는 1.5~3.5% 정도에서 움직였고, 최근 1~2년간은 0.5%에서 2%가 안 되는 범위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금리가 낮아진다는 말은 돈이 많이 풀려서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말이고, 이 경우, 상대적으로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주식이나 부동산, 구리 같은 원자재의 가격은 오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심지어 요즘은 라면이나 달걀값도 오르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근의 높은 주가는 '역사적으로 낮은 금리 수준을 감안하면, 그렇게 까지 높은 수준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그래프에서 보이는 푸른색의 장기금리와 붉은색의 단기금리 사이의 간격, 그러니까, '장단기 금리차'가 크게 벌어진 이후로는 다시 좁혀지거나 역전현상이 보이기 전 까지는 주가가 오르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코로나 발 급락장 이후 장단기 금리차가 커진 현재를 생각하면 당분간 주가가 더 오를 것 같기도 합니다.
'장단기 금리 역전현상'이라고 알려진,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보다 높아지는 현상은 주식시장의 붕괴를 예견하는 신묘한 지표로 알려져있습니다. 실제로 위의 미국시장 그래프로 돌아가서 붉은선이 푸른선 보다 위에 위치한 시점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 장단기금리 역전현상은 시차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IMF 사태로 알려진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0년의 IT 버블 붕괴, 2008년의 리먼사태는 물론이고 이번의 코로나 발 급락장 까지 모두 정확히 예언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금리라는 것이 돈을 빌려줄 때 받는 이자를 말하므로 돈을 발행하는 중앙은행이 이 금리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는데, 특히 3년 이하의 단기금리가 그렇습니다. 실제로 위의 그래프에서 붉은색으로 표시된 3개월 리보금리는 노란색의 미국 기준금리와 거의 비슷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장기금리는 중앙은행의 조작보다는 사람들이 예상하는 미래의 이자율에 영향을 받게 되는데, 장기채권을 살 경우(즉, 장기로 돈을 빌려줄 경우)에는 10~20년의 장기간 이자를 받기 때문입니다. 즉, 장기금리야 말로 시장금리라고 말할 수 있는데, 주택담보대출이나 회사채, 국채 등이 대게 5년 이상의 만기를 가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의 경우 회사채도 주로 5~20년의 만기로 발행됩니다.)
단기금리라고 말해도 무방한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은 1970년대의 중동전쟁으로 인한 유가발 인플레이션과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경제가 좋다는 얘기입니다. '경제가 좋으면 그냥 놔두면 되지 굳이 금리를 올려야 하나?'라고 생각이 들지 모르겠지만, 경기가 좋을 때는 빚을 내 사업을 확장하거나 가격이 오르는 자산을 빚으로 따라 사려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그런데, 거품이 터질 경우, 이 빚낸 사람들만 다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내 던지는 자산을 사줄 사람이 없어서 폭락하는 자산가격이 산업이나 경제 전반을 공황에 빠뜨릴 수 있고, 이미 거품의 단계에 도달한 이후에는 중앙은행이 개입하더라도 늦기에, 좋아지는 경기에 보조를 맞추어 금리를 올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때 중앙은행이 단기금리를 시장금리인 장기금리보다 높게 올리는 것은 '경제가 거품이니 돈을 빌릴 생각을 하지 말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데,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로 거품이 터지면 빚을 내 자산을 샀던 사람들은 그 자산을 차압당하지 않기 위해서 더 높은 단기이자를 기꺼이 감당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장기대출은 고사하고 현재의 단기금리로도 돈을 빌려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받아줄 사람이 없는 자산을 담보로 누가 돈을 빌려 주겠습니까?). 따라서, 이 아비규환의 상황에서는 단기금리가 시장의 패닉을 보여주는 시장금리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이나 한국의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올릴지 논의할 시점을 고민 중이다'(금리를 올릴 시점이 아닌 '논의할 시점'이라고 했습니다)라고 얘기하는 지금은 경제나 주식시장의 고점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미국 연준이나 한국은행, 또는 정부의 당국자가 '지금 주식시장이 과열되어있다'라고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시장의 고점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이는 과열의 징조가 보이니 약간의 초를 치자는 심산으로, 이를 '구두개입'이라고 합니다.
앞에서 얘기했던 쉴러 PER의 경우도 문제는 현재의 역사적인 저금리 환경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생각해 보면 2010년대는 저물가의 시대였습니다. 부동산이나 원자재 등을 제외하면 물가는 거의 제자리였고, 급여나 식품 등의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이렇게 보면, 쉴러 PER을 구할 때 분모가 되는 '물가를 반영한 10년 평균 주당순이익'은 값이 비쌌던 부동산이나 원자재의 영향으로 저평가되기가 쉬웠을 것이고, 여기에 낮아진 금리만큼 상승한 주가가 결부되어 높은 PER 값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할 때, 현재의 주가 수준은 고점 부근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래도 제 얘기를 믿지 못하겠다면, 아래에 있는 1971년 닉슨의 금태환 중단 선언 이후 미국 시장의 역사가 담긴 차트를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푸른선은 미국 주식시장을 대변하는 윌셔 5000 지수를 로그 축에 나타낸 것으로, 코스피와 코스피 200 지수가 큰 차이가 없듯이, S&P 500 지수와 추이에서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한편, 붉은선은 장기금리인 미국채 10년물 금리에서 단기금리인 2년물 금리를 뺀 차이로, 0% 아래의 위치는 장단기 금리 역전이 벌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50년간의 시장 역사를 보며 다음의 몇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 2000년대는 내내 미국 주식시장의 침체기였다.
- 2010년대의 푸른선 기울기가 2000년대를 제외한 전반적인 푸른선 기울기보다 가파르게 상승하지는 않았다.
- 코로나 발 급락장 이후 최근까지 푸른 선의 기울기가 다소 가팔라진 것은 사실이나, 장기적으로 그렇게 부담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2021년 8월에, 동해에서..
'투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켜볼 주식 - Nike Inc. (NYSE: NKE) (2) (2) | 2021.09.09 |
---|---|
10년을 보유할 주식 - Chase Corporation (NYSE: CCF) (5) | 2021.09.03 |
지켜볼 주식 - Monolithic Power Systems Inc. (Nasdaq: MPWR) (2) | 2021.08.19 |
안전자산의 편입 (6) | 2021.08.14 |
합병 차익거래와 전환사채 (2) | 2021.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