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주간 '에스엠'의 경영권 싸움에 따른 주가상승을 지켜보다가 워크아웃 차익거래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워크아웃 차익거래란 인수나 합병, 분할과 같은 대주주의 지분구조 변동에서 생기는 매우 낮은, 혹은 무위험의 거래기회를 이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령, 어떤 회사가 상장된 다른 어떤 회사를 인수한다고 할 때, 현재 1만 원에 거래되고 있는 주식을 1만 4백 원에 공개매수한다고 발표했다면, 나는 그 주식을 1만 원에 사서 공개매수에 응함으로써 4%의 무위험 차익거래를 달성하게 됩니다.
'하루에도 2~3% 씩 주가가 널뛰는 종목은 널렸고 크게는 하루에 10~20% 이상도 주가가 오르는 종목들이 있는데, 단타를 치면 되지, 무슨 복잡하게 워크아웃 차익거래냐?' 라고 생각할 분들이 많겠지만, '무위험'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1만 원에 사서 1만 4백 원에 팔 권리를 확보했다면 주가지수가 반토막 나더라도 나는 4%의 수익을 무위험으로 먹게 됩니다. 4%의 수익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기회를 한 달에 한 번씩만 찾아 원금과 수익을 모두 재투자할 수 있다면 연 수익률은 60%가 됩니다 (1.04^12=1.6010). 두 달에 한 번씩만 찾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26%가 넘습니다 (1.04^6=1.2653). 또, '에스엠'처럼 공개매수 기한 이전에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면, 그냥 시가로 시장에서 팔아 수십 퍼센트의 차익을 무위험으로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단타에서는 하루에 10~20% 씩 주가가 오를수도 있지만, 반대로 10~20% 씩 빠질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무위험'이라는 말은 대단히 매력적으로 들립니다. 만약 인수나 합병이 취소되더라도 잃을 것이 없어 보이니 빚을 내서라도 이런 거래의 기회는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 간다면 좋겠지만, 이런 무위험처럼 보이는 차익거래에도 생각해봐야 할 점들이 많습니다. 워런 버핏은 워크아웃 차익거래의 기회를 평가할 때 생각해 봐야 할 사항들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질문으로 압축했습니다.
1. 그 거래는 어떤 기회를 갖고있는가?
2. 워크아웃이 종료되기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얼마인가?
3. 또 다른 인수합병자가 나타나 더 나은 제안을 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 되는가?
4. 거래가 무산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다음의 '에스엠'과 '계양전기'의 사례를 이 네 가지 질문으로 평가해 보고자 합니다.
<'하이브'의 '에스엠'주식 공개매수>
- 공시일: 2023년 2월 10일
- 매수예정 비율: 발행주식 총수의 25%
- 매수가격: 주당 12만 원
- 공개매수 기간: 2023년 2월 10일 ~ 2023년 3월 1일
<'해성산업'의 '계양전기' 투자사업부문 흡수 인적분할 합병>
- 분할합병 계약일(공시일): 2022년 10월 7일
- 주주확정 기준일: 2022년 10월 24일
- 분할합병 반대의사 통지 접수기간: 2022년 12월 1일 ~ 2022년 12월 15일
-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기간: 2022년 12월 16일 ~ 2023년 1월 5일
- 매수예정 가격: 주당 2,719원
1. 그 거래는 어떤 기회를 갖고 있는가?
우선 '에스엠'사례의 경우, 주식을 전부 사들이는 것이 아닌 일부만 사들이는 경우이므로, 이미 무위험의 차익거래는 아닙니다. 공시일 다음 영업일의 종가가 116천 원이었으므로, 만약 그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었다면 이후 주가가 올라 시세차익을 실현할 기회는 있었겠지만, 이는 '카카오'가 지분권 싸움에 뛰어들 것이라는 확실치 않은 소문이나 예측에 근거하므로 도박이 되어 버립니다.
한편, 제가 조사해 본 사례 중 가장 무위험에 근접했고, 분할합병에 반대만 하면 100% 주식매수 청구권이 주어졌던 '계양전기'의 경우, 공시일 종가가 2,585원이었으므로 5%에 가까운 차익을 무위험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공시시간을 확인해 보니 16시 56분이었습니다.
다행히 매수청구권을 가질 수 있었던 마지막 매수 가능일인 공시 다음 영업일의 주가는 2,645원에서 2,820원 사이에서 움직였습니다. 운 좋게 오전에 일찍 이 매수기회를 포착하여 2,680원에 매수할 수 있었다고 가정하면 1.5% 정도의 수익을 무위험으로 확보할 수 있었을 텐데, 수수료나 빚을 냈을 때 이자 등을 감안하면 1.5%의 수익은 좀 그렇습니다. 이후 주주확정 기준일까지 주가가 매수예정 가격 이상으로 오르지는 못한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두 달에 한번 1.5%의 거래기회가 온다고 가정해 연 9.3%라면, 주가지수 ETF를 사도 10년쯤 후면 비슷한 연 복리수익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일전에 쓴 합병 차익거래와 전환사채 (tistory.com)에서는 '미래테크놀로지'의 예를 꽤 실현 가능한 무위험 차익거래의 기회처럼 얘기했지만, 주식매수 청구권이 생기는 기준일을 주주확정 기준일로, 또, 합병공시일 근처의 주가를 현재의 수정주가로 계산한 제 무지의 소치였음을 고백하고자 합니다.
2. 워크아웃이 종료되기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얼마인가?
애당초 '에스엠'은 무위험 차익거래가 아니었으므로, 이 질문에는 '계양전기'의 사례만 설명하겠습니다.
워크아웃이 종료되는 기간은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만일 1~2개월 안에 종료될 4% 수익의 기회를 발견했는데, 그것이 연기되어 1년이 지난 후에야 4%의 수익금을 받을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다행히 '계양전기'의 경우는 합병을 하는 주체인 '해성산업'이 대주주였기에 이렇게 합병이 연기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렇게 보면, 공시일 다음 영업일에 '계양전기'의 주식을 사서 대략 네 달 후에는 1.5%의 수익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역시 좀 그렇습니다.
3. 또 다른 인수합병자가 나타나 더 나은 제안을 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 되는가?
만약 '카카오'가 전환사채 인수를 인정받고 인수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면 '에스엠' 주가는 두 배는 더 오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장담할 수 없는 가정일 뿐입니다. 제가 조사해 본 최근 9개월간의 사례들과 2021년의 사례들에서는 무위험처럼 보이는 이런 기회를 단 한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4. 거래가 무산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제가 보기에 워크아웃 차익거래에서 가장 큰 위험은 인수나 합병계약이 취소되는 경우입니다. 계약이 공시되기 며칠이나 몇 주 전부터 그 주식의 주가는 크게 올라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반해, 인수나 합병을 공시하는 사례들의 태반이 이후에 계약을 취소하기 때문입니다. 계약이 취소되면 주가는 그 공시일의 수준이 아닌, 인수나 합병의 소문이 돌기 전의 수준인, 꽤 큰 폭으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에서 안전하려면 제 생각에는 '계양전기'의 사례처럼 인수/합병 쌍방의 대주주가 동일하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기회가 너무나도 드물고, 그 무위험 기대수익률도 너무나도 미미하다는 데 있습니다. 제가 최근 1년간의 사례들을 조사해 보려다가 9개월에서 그치고 만 것도 사례가 거의 없어서 현타가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워런 버핏은 소문이나 예측이 아닌 신문에 난 공시를 기준으로 워크아웃 차익거래의 기회를 포착했다는 데에서 미국시장의 경우 주식매수 청구권의 행사기준이 한국과는 달리 공시일이 아닌 '주주확정 기준일'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럴 경우 버핏이 말한 연평균 15~20% 수익의 무위험 차익거래가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4%의 수익을 일 년에 네 번만 달성해도 연수익률은 17%가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시장의 경우 상장된 종목수가 많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국시장의 경우 지난 몇 년간의 사례들에서 저는 무위험에 가까운 의미 있는 차익거래를 단 한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 몇 주간 제 눈길을 사로잡았던 '에스엠'의 사례도 경영권 싸움이라는 테마에 편승한 투기의 판이었을 뿐이었습니다.
2023년 2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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