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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인플레이션에 대비하라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최근 주식시장이 부진한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직 해소되지 않고 있는 세계적인 물류대란이나 최근 중국의 전력난에 대한 우려 역시 결국 인플레이션으로 귀결되는 문제들입니다.

 

 지난 10년 이상 인플레이션이 아닌 디플레이션이 걱정인 세상에서 살아온 우리에게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이나 걱정해야 하는 일인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이 기준금리를 10~20% 수준까지 올려야 했을 정도로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있었던 196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의 주식시장 상황을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집니다.

왼쪽: 미국 기준금리 / 오른쪽: S&P500 지수

 

 '완만한 인플레이션은 경제나 주가에 좋다'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인플레이션, 그러니까 물가상승은 사려는 사람이 물건보다 많은 경우와 사려는 사람의 수는 평소와 비슷한데, 물건이 부족해져서 값이 오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서 사려는 사람이 물건보다 많은 경우, 물건을 만드는 자는 그 물건을 더 만들어도 모두 팔리리라는 것을 알기에, 더 많이 만들기 위해 서둘러 기계를 사거나 재료를 더 구입함으로써 다른 이들의 소득까지 증가시키게 되고, 이것이 연쇄적으로 경제의 성장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기에 수요발 인플레이션은 경제나 주가에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물건이 부족해져서 생기는 공급발 인플레이션은 왜 생기게 될까요? 사려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면 상품을 만드는 기업이나 농장주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그 상품을 빠르게 더 많이 생산하기에, 몇 주에서 몇 달 안에는 공급 부족이 해결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70년대 유가발 인플레이션 처럼 장기간 공급부족이 지속되는 것은 뭔가 공급을 늘릴 수 없는 불가항력이 있었다는 말로, 당시에는 중동전쟁에 따른 정치적인 목적으로 중동 산유국들이 유가를 담합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경기가 좋아진다는 얘기인 수요발 인플레이션 때문에 주가가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므로, 지금 시장이 걱정하는 것은 공급발 인플레이션이 틀림없습니다. 전례없이 많이 풀린 미국달러는 그 자체로도 물가상승의 요인이 되는데, 거기에 더해 동남아의 델타 변이 확산과 중국의 전력난으로 공장들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것은 공급발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처럼 보입니다. 또, 지금 인류가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보이지 않는 적과 전쟁 중 임을 생각하면, 70년대 중동전쟁이 야기한 공급발 인플레이션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중동전쟁처럼 10년이나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아래의 국가별 백신접종률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잘 사는 나라들은 이미 거의 다 백신을 맞았고, 동남아 국가들도 내년 이맘때쯤이면 거의 접종을 마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될지는 알 수 없어도, 최소한 공장이나 항만의 가동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또, 중국의 전력난은 애초에 오래 지속될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저는 공급발 인플레이션이 일 년 이상 지속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경제에 좋다는 수요발 인플레이션이 향후 몇 년간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최근 세계적으로 임금이 오르는 경향이 보여서 그렇습니다. 임금은 한번 오르면 다시 낮춰지지는 않는 경향이 있고, 다른 산업이나 회사의 임금이 오르기 시작하면 내 임금도 시차를 두고 오르는 경향이 있어서 인데, 주인의 입장에서는 일꾼들이 떠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임금이 오르면, 일부는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을 사기도 하고 저축도 하겠지만, 역시 최소한 일정부분은 소비증가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저라도 월급이 오르면 '우선 쇠고기 파티라도 하거나 스마트폰을 최신 기종으로 바꾸고, 저축은 다음달 부터 해야지' 하고 생각은 하겠지만, 정작 저축을 많이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미국의 평균임금

 

 2010년대는 저가의 중국 제품이 전 세계에 수출되며 물가가 상승하지 못한 저금리의 시대였고, 이에 맞춰 임금의 상승도 거의 없었습니다.

 시중은행은 기본적으로 단기로 돈을 싼 이자에 빌려서 장기로 그 돈을 더 비싼 이자에 빌려줌으로써 돈을 버는 곳 입니다. 그런데, 단기금리가 낮아져 더 싸게 중앙은행으로 부터 돈을 빌릴수 있었던 시중은행들은 그 돈을 대출해 줄 곳이 없었습니다. 중국산 저가제품이 넘쳐나니 대부분의 산업이 생산을 늘릴 동기가 부족해서 그 돈을 빌려 쓰려는 수요가 없었기 때문으로, 이에 시중은행들은 담보가 있는 자산가들에게 부동산 담보대출과 같은 명목으로 그 돈을 빌려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부동산이나 중국발 디플레의 영향이 없었던 성장주 같은 자산의 가격만 오르고, 그 돈이 산업에 투입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르지 않는 임금은 다시 사람들의 소비를 제한하고..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이 지배했던 10년이었습니다. 

 

 이랬던 기류가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돈을 푸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각국 정부들이 최근에는 인프라투자와 같은 재정투자를 확대하려고 합니다. 공무원들이 하는 일은 그 비효율성에서 악명이 높지만, 설사 그 일이 멀쩡한 보도블록을 다시 까는 일이라도 그 돈은 용역업체나 근로자들에게 흘러가서 실물경제에서 돌게 됩니다. 하물며, 그 일이 도로나 교량, 5G 인프라 같은 것을 까는 일이라면 산업과 경제에 흘러가 돌게 되는 돈은 훨씬 많을 것입니다.

 

 미국 바이든 정부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법안 통과가 이런 기류 변화의 도화선이 될 것인데, 그 규모가 어느 나라보다 크고, 미국은 많은 것을 수입하는 나라이기에 세계경제에도 그 돈이 흘러가 돌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금 미국과 중국의 좋지 않은 사이를 감안할 때, 특히 한국의 수혜가 예상됩니다.

 

 또 하나는, 지난 10년간 중국도 임금이 많이 올라서, 앞으로 10년도 지난 10년과 같이 디플레이션 수출국의 역할을 하기에는 힘들어 보여서입니다. 최근 국내 조선사들이 잃었던 점유율을 회복한 것을 두고 언론들은 기술력의 차이만 부각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중국 조선사들도 예전처럼 싸게 배를 만들기는 힘들어진 면도 클 것 같습니다.

 

 '그래도,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는 아직 인건비가 낮으니, 앞으로 10년은 그들이 중국의 역할을 대신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중국과 같이 거대한 시장을 가진 나라와 작은 나라가 수입하는 원자재와 같은 단위 비용에는 차이가 있을 것 이기에, 그 파급력에서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들 나라들은 중국만큼 수출경합도에서 많은 품목이 한국과 겹치지도 않습니다.

 

 2010년대의 한국 주식시장을 한 단어로 정의하는 말은 '박스피'였습니다. 주가지수가 추세적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2010년대 내내 횡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경제예측은 저명한 학자나 전문가들도 틀리기가 일쑤인 영역이기에, 제 생각을 100% 확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 생각이 맞다면 우리는 앞으로 펼쳐질 수년간의 상승장 초입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래의 미국 기준금리(푸른 선)와 한국 주가지수(붉은 선)의 35년간 추이를 보여주는 차트에서 미국 금리가 오르는 시기에는 대부분 한국 주가지수가 큰 폭으로 상승했음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만약 제 생각이 맞는다면, 앞으로 펼쳐질 수년간의 장세는 작년 말에서 올해 초와 비슷하게 가치주와 한국시장의 성과가 월등하게 좋을 것 같습니다.

 

2021년 10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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