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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지켜볼 주식 - DB하이텍 (코스피: 000990)

 오랜만에 국내 주식입니다. 쉬는 날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주식을 분석하고 있음에도 이토록 좋은 국내 주식을 찾기가 어려운 이유는 제 기준이 높아서 이기도 하지만, 좁은 내수시장과 수출 위주의 산업구조 덕분에 한국시장에는 경기변동주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경기변동주가 무조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산업이나 업종의 주기가 길지 않고, 꾸준히 성장하는 회사의 주식이라면, 그 주기에 따라 출렁이는 주가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팔 기회를 자주 만들어 주게 됩니다. 

 

 반도체산업은 꾸준히 성장하는 산업이면서, 고점에서 저점까지가 보통 1~2년 정도의 짧은 주기를 가진 산업이므로, 이런 산업의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반도체 투자지출과 시장의 변동률

 

 반도체산업 중에서도 제가 좋아하는 분야는 아날로그 반도체인데, 큰 변화가 없는 분야라서 그렇습니다. 큰 변화가 없는 산업에서 꾸준히 성장하는 기업이라면, 지금까지의 성장 추세를 한 십 년쯤 후까지 연장해서 생각해도 큰 탈이 없으므로, 미래를 예측하기가 쉽습니다.

 

 반면, 로직회로를 다루는 메모리나 CPU같은 디지털 반도체는 1980년대 일본 메모리 업체들의 부상과 인텔의 메모리 사업 철수, 1990년대 한국과 대만 메모리 업체들의 부상으로 일본 업체들의 몰락, 2000년대 대만 메모리 업체들의 몰락, 2010년대 퀄컴과 ARM, 미디어텍 등의 부상, 그리고 최근 엔비디아와 AMD의 부상, 인텔의 몰락 징조 등, 10년이 멀다 하고 시장의 판도가 바뀔 만큼 변화가 빠른 분야입니다. 이렇게 변화가 빠른 분야는 장기투자자의 투자대상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토록 기술의 진보가 빠른 반도체산업에서 아날로그 반도체 업종은 지난 수십 년간 어떻게 그토록 평온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과연 미래에도 지금처럼 평온할 수 있을지?'를 예측해 보기 위함입니다.

 

 아날로그 반도체는 우리가 살고있는 자연계의 현상인 빛이나 소리, 압력, 파동 등을 전기적인 신호로 바꾸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즉, 자연과학에 전기공학이 접목된 분야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자연과학은 수십 년에 한 번 정도 중요한 발견이 이루어질 정도로 변화가 느린 분야입니다. 전기공학도 에디슨과 테슬라의 시대에 그려진 회로도와 오늘날의 회로도는 기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반면, 전기신호를 바탕으로 0과 1의 이진법으로 계산을 하는 디지털반도체는 더 많은 스위치를 만들수록 더 효율적으로 계산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더 좁은 공간에 더 많은 스위치를 만들기 위해 점점 더 좁은 회로선폭을 사용하는데, 이렇게 더 좁은 선폭을 만드는 기술은 일 년이 멀다 하고 진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디지털 반도체는 초미세공정을 구현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이 드니까 진입장벽이 높은 반면, 아날로그 반도체는 구닥다리 기술로도 잘 돌아가니 진입장벽이 낮은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분야의 진입장벽은 결코 낮지가 않습니다.

 

 아날로그 회로는 전기신호의 파동을 다루는데, 이는 디지털 회로가 키고 끄는 기능만을 가진 수많은 스위치로 만들어지는 것과 대비됩니다. 따라서, 아날로그 반도체는 설계가 어렵고, 그 설계를 실제로 반도체로 만들때도 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게 됩니다. 즉, 선폭의 미세화 정도가 아닌, 공정의 신뢰도가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파운드리에서 내 설계를 더 싸게 반도체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기존의 공정을 버리고 그 공정으로 옮기겠다는 것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말이 됩니다. 사실 대부분의 아날로그 반도체는 CPU나 메모리처럼 범용으로 쓰이지도 않기에 이런 식의 접근 자체가 의미도 없습니다.

 

 이렇게 산업 자체가 가지는 특성으로 인해서 생기는 진입장벽은 돈으로 쌓은 진입장벽보다 훨씬 높은 벽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으로 쌓은 진입장벽은 누군가 더 많은 돈을 투자해서 무너뜨릴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디지털 반도체 산업의 역사와 LCD 산업에서 이런 현상을 여러 번 봤습니다.

 

 'DB하이텍'은 아날로그반도체를 전문적으로 수탁생산해 주는 파운드리로, 이 기업의 역사를 보면 아날로그 반도체 분야에서 자리를 잡기가 얼마나 힘든지와, 일단 한번 자리를 잡으면 얼마나 수익성이 좋은 사업인지를 알게 됩니다. 이는 다음의 이 회사의 실적과 재무지표 추이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2010년 이전의 매출액이 최근보다 많았던 것은 당시 동부한농의 실적이 합산되었던 탓이고, 2014년 이전의 영업이익이 보이지 않는것은 1997년 설립이래 2013년까지 연속 적자였기 때문입니다. 또, 2014년 이후 실적과 모든 재무비율이 좋아진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그 이유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일시적으로 시장환경이 좋아서 나타난 결과가 아닐지를 의심해 보기 위함입니다. 

 

 적자가 지속되고 있었던 2011년과 실적이 좋아지기 시작한 2015년의 부문별 매출액을 비교한 다음의 표를 보면 명확해집니다.

 당시 디지털반도체인 Logic 부문의 비중이 상당히 컸음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천문학적인 시설투자 비용이 드는 디지털 반도체 분야에서 적자가 지속되던 당시의 동사는 경쟁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당시 로직 분야를 계속 고집했다면, 이 회사는 조용히 사라졌을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한편, 이 회사의 연혁을 살펴보면 아날로그 분야에서 자리를 잡는것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 수 있습니다. 2002년에는 공정기술의 습득을 위해 아남반도체를 인수했고, 2009년에는 빚을 갚기 위해 당시 김준기 회장이 사재 3천5백억 원을 털어 넣기도 했습니다. 반면, 의미 있는 아날로그 분야의 공정을 개발한 것은 2008~2014년 경부터였다는 데에서 앞에서 설명한 높은 진입장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신문기사에서 중국의 3대 정보기술기업인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가 모두 AI반도체 개발에 뛰어들었다는 내용을 보았는데, 이런 디지털 반도체 분야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DB하이텍은 지금의 점유율을 늘리지 않아도 성장하는 전자산업의 수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모든 전자기기에는 반드시 아날로그 반도체가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2021년 11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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