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신문을 매일 읽는 제 눈길을 요 몇 주 동안 사로잡고 있는 주제가 있습니다. '레고랜드 사태'입니다. 레고랜드 사태가 제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이유는 이 사태가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도 있을 것 같아 보여서입니다. 레고랜드 발 금융위기가 현실화된다면 이는 경제위기로 이어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주식시장에는 대 폭락장이 펼쳐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식투자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채권시장이나 금리는 금융기관들이나 다루는 남의 얘기로 생각하지만, 채권시장을 대변하는 지표인 금리는 현재나 미래의 경제상황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또, 주식시장이 경기를 6개월에서 1년 정도 앞서서 반영하는 반면, 채권시장은 1~2년 정도 앞서 반영하므로 많은 대가들이 주식시장을 알려면 채권시장을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자유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의 세상은 모든 것이 주식과 채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돈(자기 자본=주식)과 빌리거나 빌려준 돈(부채=채권/채무)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입니다.
예금이나 적금은 내 돈을 빌려줘서 원금과 이자를 받는 것이므로 채권이고, 채권이나 어음을 발행하는 것은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원금과 이자를 갚기로 약속하는 것입니다. 부동산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돈으로만 부동산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므로, 일부는 내 돈(자기 자본=주식)과 은행에서 빌린 돈(채무=상대방 입장에서는 채권)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내 돈과 빌린 돈으로 이루어져 있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원금과 이자를 갚기로 한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인 신용도는 대학 졸업장이나 자격증보다 훨씬 중요한 현실 세상에서의 등급이 됩니다. 우리가 카드값이나 대출을 제때 갚지 못하면 신용등급이 떨어져서 다음번에는 훨씬 비싼 이자를 주고 돈을 빌려야 하는데, 이는 기업이나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레고랜드를 만들기 위해 돈을 마련한 방법은 강원도가 자기돈을 들여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나 ABCP(Asset-Backed Commercial Paper) 모두 미래의 수익을 담보로 돈을 빌린 것이었으니, 빌린 돈으로 추진되었던 사업이라는 얘기입니다.
'미래의 수익이 담보가 된다.' 뭔가 이치에 맞지 않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담보라고 하면 부동산과 같이 당장이라도 팔아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벌지 잃을지 모를 미래의 수익이라니 말입니다. 돈을 빌려주는 상대방 입장에서는 담보가 확실치 않으니 상당히 비싼 이자를 부를 것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이자를 낮출 획기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강원도가 일이 잘못될 경우에 원금과 이자를 대신 갚아주겠다고 보증을 서 주는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돈을 빌리는 회사는 강원도가 레고랜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만든 회사였으니, 그게 그거인 셈입니다. 반면, 돈을 빌려주는 입장에서는 그 회사가 망해버리면 돈을 잃게 되지만, 강원도라는 지방정부가 보증을 서 주는 것은 다른 얘기가 됩니다.
설사 일이 잘못되어 강원도가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대한민국 정부가 설마 '이제부터 거기는 우리나라가 아니다' 라며 모른 척 하기야 하겠습니까? 따라서, 레고랜드가 돈을 빌린 어음은 한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와 비슷한 신용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주 전 갑자기 강원도가 레고랜드에 서 준 보증을 취소해 버린 것입니다. 하필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서 세계경제가 뒤숭숭한 이 와중에 말입니다.
회사가 돈을 빌리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과 어음의 금리, 그리고 우리가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내는 이자는 모두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의 이자(금리)를 기준에 두고 정해집니다. 따라서, 국채와 마찬가지인 정부가 보증을 서 준 어음이 부도가 나면 '도대체 지금 상황이 어떻길래 정부가 부도를 내나?'라는 생각이 퍼지게 되고, 채권시장은 아비규환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실제로, 아래의 그림에서 푸른 선으로 나타낸 기업들이 단기간에 쓸 돈을 빌리기 위해 발행하는 어음의 금리를 보면, 기준금리가 오르고 있었으므로 어음의 금리 역시 오르는 중이었다고는 하지만, 최근 몇 주간의 어음 금리 상승폭은 재작년 코로나 팬데믹 초기의 아비규환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경기침체의 전조라고 하는 금리 역전현상, 그러니까, 푸른 선의 3개월 물 어음 금리가 검은선의 10년 물 국채금리보다 비싸지는 현상마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이 이쯤 되자 정부에서는 50조를 들여서, 그러니까, 기업들이 발행한 어음을 50조 원어치 만큼 사들여서 이 사태의 파장을 막겠다고 하는데, 일각에서는 50조로는 부족할 것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과연 50조로 이 사태의 파장을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영국의 국채금리를 급등시켰던 영국 총리는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며 총리직을 사임했고, 그러자 일단 영국 국채시장은 진정되었습니다. 그런데, 레고랜드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인 강원도지사라는 작자는 이 와중에 해외에서 뭘 하다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엊그제 귀국해서 인터뷰 도중 한 말이 '이 사태에 대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였습니다.
뻔뻔함의 극치가 아닙니까? 자유시장경제의 기초도 모르는 자가 북한이나 중국도 아닌 한국의 도지사라는 사실도 믿기지 않는데, 사퇴나 탄핵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더욱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 정치인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을 넘지는 못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2022년 10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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