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투자

지켜볼 주식 - KLA Corporation (Nasdaq: KLAC) (3)

 반도체를 만드는 공정을 매우 단순하게 묘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뉴스에서 가끔 보이는 동그란 거울처럼 생긴 얇은 실리콘 웨이퍼 위에 사진을 찍듯 회로의 형상을 세기는 노광공정과 세겨진 형상 위에 회로를 만들 물질을 입히는 증착공정, 원하는 회로나 막이 아닌 부분을 녹여내는 식각 공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 회로가 있는 칩을 여러 개 가진 웨이퍼가 만들어집니다. 여기까지를 '전공정'이라고 부릅니다. '후공정'은 이 웨이퍼에 있는 여러 칩들을 각각 떼어낸 후, 그 칩을 현실 세상에서 쓸 수 있도록 얇고 작은 인쇄회로기판에 붙이고, 그 칩을 보호하기 위해 검은색 몰딩을 입히면 우리가 아는 검은색 반도체 소자가 됩니다.

 

 이 회사는 주로 전공정에 쓰이는 장비를 만들어 돈을 버는데, 노광이나 증착, 식각공정과 같은 핵심공정이 아니라 회로를 세기기 전의 웨이퍼나 각 공정의 중간중간에 회로가 잘 세겨지고 있는지를 검사하는 장비를 만들고 있습니다. 제가 전공정의 핵심공정에 쓰이는 장비가 아닌 검사나 계측장비를 만드는 이 회사를 주목하는 이유는 신기술이나 신소재의 등장이 이 회사에게는 별로 두려워 보이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는 반도체를 만드는 공정을 매우 단순하게 묘사했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공정들이 연결되어 전체공정이 됩니다. 따라서, 어느 한 공정의 장비가 말썽을 일으키면 다른 공정들의 수십억 원씩 하는 장비들은 멀쩡히 자기 일을 잘하고 있음에도, 그 만들고 있는 반도체는 불량이 됩니다. 또, 이런 불량은 반도체 공정의 특성상 수십에서 수백 개의 칩을 가진 웨이퍼가 수십 장 이상 흐른 후에 발견되는 경우가 많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싼 장비의 가동을 정지하는 자체가 365일 24시간 내내 공장을 돌리는 반도체 제조사에게는 큰 손실이 됩니다. 따라서, 전 세계의 모든 반도체 제조사들은 남들도 잘 쓰고 있는 검증된 장비를 쓰려고 하는데, 특히 노광이나 증착, 식각 같은 핵심공정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이들 공정용 장비는 전 세계적으로 많아야 2~3개의 회사들이 파이를 나누어 먹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공정의 선두업체인 ASML이나 램리서치,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스 같은 회사들은 강력한 진입장벽을 가지고 있으니, 훌륭한 장기투자의 대상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분들이 많을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끊임없이 회로의 선폭을 줄이려고 하는 반도체 업계는 변화가 빠른 분야입니다. 기존의 기술이나 소재로 선폭을 더 이상 줄이기가 어렵다면 새로운 기술이나 소재를 도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때가 점유율이 미미했던 장비회사나 신생업체에게는 기회가 됩니다. 반도체 제조사 입장에서는 어차피 새로운 공정이므로, 기존의 과점업체가 만들던 장비로는 불가능하던 것을 다른 누군가 만든 장비가 해낸다면 그 장비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바로 '게임 체인저'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니콘과 캐논이 나누어 먹다 시피하던 노광 시장을 EUV라는 신기술로 평정한 ASML이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반면,  이 회사가 하는 계측/검사 분야는 얘기가 다릅니다. 새로운 기술이나 소재를 적용해서 만드는 회로라고 그 계측이나 검사의 근본적인 방법이 달라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른 공정분야의 장비회사들과는 달리 이 회사는 수십년 전부터 경쟁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린 상태에서 독점적인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음을 아래의 그림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독점적인 우위는 아래의 실적과 이익률의 장기추이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G/M: 매출총이익률 // O/M: 영업이익률

 그런데, 실적의 등락이 큰 장비업종이라는 점과 리먼사태의 영향을 감안하고 보아도 2009년의 영업이익 적자는 언뜻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만약 다음번의 불황이 훨씬 길다면 이 회사는 위태로워 질지도 모르므로, 그 이유를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익률의 그래프로 되돌아가서 푸른선의 매출 총이익률 추이를 자세히 보면 2009년에도 매출 총이익률은 40%를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률은 급전직하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매출 총이익은 매출에서 원가를 빼면 나오는 숫자이고, 영업이익은 거기에서 판매비와 관리비를 빼면 나오는 숫자입니다. 따라서, 이들 이익률의 추이는 비슷하게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해당 연도의 영업이익률 하락폭은 매출 총이익률 하락폭에 비하면 과도해 보입니다. 뭔가 곡절이 있을 것 같습니다.

 

 2009년의 재무제표를 보면 순이익의 계산에 포함되어야 할 항목이기는 하지만, 아래에 형광펜으로 표시한 큰 금액의 '영업권/유형자산 손상차손'이 보입니다. 영업권이나 유형자산의 손상차손이라는 말은 매년 그 자산의 가치를 다시 계산해서 평가액을 조정한다는 말인데, 실제로 그 돈을 썼다는 말이 아니라 장부상의 숫자를 고친다는 말입니다. 주석에는 금융위기가 1~2년 정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2008년과 2009년에 인수한 회사들의 자산을 보수적으로 다시 계산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장부상의 숫자를 꽤 지웠다는 말인데, 실제로 2008년과 2009년에 이 회사가 두 회사를 인수하는데 든 돈은 2008년의 영업이익보다 많습니다.

 

 즉, 2009년의 적자는 리먼사태의 영향도 있었지만, 두 회사를 인수하며 쓴 돈의 영향이 더 컸다는 말이 됩니다. 금융위기의 와중에 회사를 두 곳이나 인수했다는 점이 오히려 제 눈에는 자신감의 표현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아래에 있는 재무지표들의 추이를 보다 보면 2022년에 부채비율이 5배 가까이 급증했음을 볼 수 있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금리가 오르고 있는 이 와중에 돈을 그렇게나 많이 빌렸다는 점이 우려스럽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ROE: 순자산이익률 / BPS: 주당순자산 / FCS: 주당자유현금흐름

  부채비율은 부채를 순자산(자본)으로 나누어 구하므로, 오른쪽 그림의 푸른 선과 같이 순자산이 줄면 부채는 그대로여도 부채비율은 높아진다는 사실에 조금 안심은 됩니다. 하지만, 하필 요즘 같은 시기에 5배에 가까운 부채비율이라니요? 자세한 내막을 모르고 이 주식을 사거나 들고 있는 것은 회사 주인의 마인드가 아닙니다.

 

 아래에 있는 재무상태표를 보면 부채비율이 폭증하게된 주요한 원인은 34억 달러에서 14억 달러 정도로 감소한 자본 때문인데, 자본이 감소한 원인은 자본변동표를 보면 자사주를 49억 달러 어치나 샀기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년도의 자본보다 큰 액수의 자사주를 사서 태워 없앴다는 말입니다.

 

 장기부채가 2배 가까이 늘긴 했지만, 장기부채는 대부분 4~5%대의 고정금리 회사채로, 만기가 수십 년에 걸쳐서 분산되어 있고, 매년 돌아오는 갚아야 할 금액도 보유하고 있는 현금과 비교하면 걱정스럽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이 회사가 자기자본보다 큰 금액의 자사주를 사서 태워 없애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회사 사업보고서에는 자사주 매입의 목적이 임직원들의 주식 보상 때문에 새로 발행되는 주식에 의한 희석효과 방지와 잉여현금의 주주환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감동스럽지 않습니까?

 

 제가 감동을 받은 포인트는 '잉여현금의 주주환원'이 아닌 '희석효과의 방지'였습니다. '희석효과'란 술에 물을 타면 싱거워지듯이 새로 주식을 발행하면 기존의 주주들이 가지고 있던 주식은 가치가 희석되어 낮아진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런 표현을 어떤 국내 종목의 사업보고서에서도 보지 못했습니다. 자사주 매입을 하더라도 태워 없애지 않고, 몇 년 후에는 시장에 도로 내다 팔거나 임직원들에게 인센티브로 주어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는 말만 그럴듯 하는게 아니라 실제로도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소각 같은 주주환원을 꾸준히 늘리고 있으므로, 이 종목을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2022년 11월에, 동해에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