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흔들리지 않을 자신만의 투자관과 투자법을 정립했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현실세상에서 실제로 큰돈을 들여 투자를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기준을 낮추려는 유혹과도 싸워야 하고, 차트분석이나 테마주 같은 급등주의 유혹도 견뎌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유혹에 넘어가 가치투자를 버리게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치투자가 지루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교적 긴 기간 동안 인내하며 끈질기게 그 주식을 보유해야 만족할만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 가치투자인데 반해, TV나 신문, 유튜브, 주변의 소문 등 세상 모두가 2~3달 안에 수십 퍼센트는 오른 종목과 그런 종목을 찾을 수 있는 방법들만 떠들어 댑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가치투자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세운 투자관과 투자법, 종목의 분석에 확신이 부족하다면 그런 유혹에 넘어가기가 일쑤일 것입니다.
제 경우는 투자관과 투자법, 종목분석에 확신이 있음에도 아직도 꽤 자주 그런 유혹들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내 종목들의 주가가 지지부진한 시기에 아침마다 잠결에 틀어놓는 증권방송에서 2차 전지나 방산주 같은 것들이 한두 달 만에 수십 퍼센트씩 올랐다고 하면, 그런 테마주 사냥이 지속가능한 투자법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마음이 잠깐이라도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거의 작년 내내 저의 평정심을 어지럽힌 테마가 있었는데, 바로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종목들이었습니다. 작년 초에 발생한 '에스엠'의 경영권 분쟁은 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주식하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을 것입니다. 아침마다 읽는 '한국경제'의 기사에서 '에스엠'에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보고 '이거 주가가 꽤 오를지도 모르겠는데?'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인지했던 시점에는 이미 주가가 꽤 오른 상태였는데도 그 시점부터 한 달 만에 주가가 거의 60%는 더 올랐던 것입니다.
작년 말 경에는 '남양유업'과 사모펀드 간의 주식 양도소송 3심 판결일이 확정됐다는 기사를 보고 '이것도 오르나 한번 보자'하고 남양유업 주가 추이를 지켜봤습니다. 이 소송전은 남양유업 회장 측에서 53%의 지분을 사모펀드에 파는 계약을 체결했다가 몇 달 만에 마음이 바뀌어 계약해지 통보를 하면서 발생했는데, 이미 1,2심에서 사모펀드 측이 승소했고 3심 판결이 바뀔 가능성은 희박했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3심 판결일 확정 기사를 읽은 시점에는 이미 어느 정도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른 후였으니, 더 이상 주가가 오를 이유는 없어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며칠간 주가가 10% 정도 더 오르는 것을 보고, 경영권 분쟁 종목을 한번 진지하게 연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위 내부정보나 낚시성 찌라시 같은 것들에 속지 않고도 짧은 기간에 소폭의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일전에 합병 차익거래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종목수가 많지 않은 국내시장에는 그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 제 결론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업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고, 2세 승계가 많은 국내시장의 특성상 경영권 분쟁은 꽤 자주 발생하는 일종의 차익거래 같아 보였습니다. 지분확보 경쟁이 붙는다면 주가는 오르면 올랐지, 떨어질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 더욱 그래 보였습니다.
제가 아침마다 읽는 '한국경제'의 최초 보도시점을 기준으로 오전에 보도된 종목은 당일종가를, 오후에 보도된 종목은 다음날 종가를 매수가격으로 가정했습니다. 매도가격은 소박하게 일일 종가를 기준으로 5% 수익이 나면 다음날 종가에 매도하는 것으로 가정했는데, 만약 2주 내에 5% 이상의 주가상승이 없으면 2주 마지막 날에는 무조건 매도하는 것으로 가정했습니다. 이렇게 사업의 근본적인 요소가 아닌, 수급에 의해서만 주가가 움직이는 경우는 그 이벤트가 끝나거나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지면 빠르게 그 이전 수준으로 주가가 다시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 최대 보유기간을 짧게 잡은 이유입니다. 또, 마지막까지 다 짜 먹으려다가 다 토해내는 것보다 맛만 본다는 심정으로 소박한 수익률을 상정해도 기회만 많다면 연 수익률은 근사할 것이라는 게 소박한 목표 수익률을 상정한 이유였습니다.
자, 그럼 더 이상 긴말하지 않고 제 연구결과를 공개하겠습니다. 같은 종목이 여러 번 등장하는 경우는 우군을 확보하는 등으로 해서 경영권 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투자원금의 0.4891배라면 -51%, 그러니까 반토막이 난다는 말인데, 작년 내내 제 평정심을 흔들었던 투자법이라기에는 참담한 결과입니다. 뭔가 가정을 좀 다르게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경영권을 지키려는 측과 공격하려는 편의 지분차이가 많이 나서 실제로는 지분매입 경쟁이 심화될 것 같지 않은 종목들이나, 소액주주 연대 등의 단순 경영영향 의도 등은 제외했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지분매입 경쟁이 벌어졌거나 임박한 것처럼 보이는 종목들만 추렸다는 말입니다. 다른 가정들은 앞의 경우와 같습니다.
투자원금의 0.8813배, 즉, -11.87%입니다. 사후편향, 그러니까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상황에서 수익률을 끌어올릴 목적으로 다시 간추린 종목들의 결과이긴 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이와 동일하게 거래를 할 수 있었다고 해도 작년에 +18%가 넘었던 코스피 지수 수익률이나 +27%를 넘는 코스닥 수익률과 비교하면 참담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제가 이런 검토도 해보지 않고 작년에 '에스엠'의 경영권 분쟁 기사를 보고 그 주식을 샀다면 좋은 결과에 고무돼 상당한 비중의 금액을 이 투기에 할애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랬다면 제 작년 수익률 역시 참담했을 것입니다.
허위정보에 현혹되지 않으면서 남들보다 먼저 주가가 급등하기 전에 이런 종목들을 살 수 있으리라는 가정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또, 3~4% 정도로 목표수익률을 낮추는 등, 조건을 바꾸어 다시 시뮬레이션을 해 보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설사 근사한 수익률이 나오더라도 제 결론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작년에 이 투기법의 수익률이 높았다면 올해는 반토막이 날 것입니다.
이런 단기투기가 실패하는 이유는 짧은 기간에 급등할 종목을 맞힐 수 있는 어떤 기법이 알려지면 많은 사람들이 그 기법을 따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작 자신이 인지하고 매수할 수 있는 시점은 십중 팔구는 고점 부근일 확률이 높아서입니다.
유명한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말처럼 좋은 주식이 싸게 거래될 때 사놓고, 수면제를 먹은 후 10년간 푹 자다 깨어나는 것보다 좋은 투자법을 저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2024년 1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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