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선견지명이나 예리한 통찰력이 없더라도 십 년쯤 후 지구상에는 지금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더 부유하게 살고 있을 것이고, 사람들이 해외여행도 더 많이 다니리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구가 많은 중국이나 동남아, 인도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여가시간도 늘었다면 해외여행의 수요는 자연히 증가할 것입니다.
또, 대부분의 선진국 인구의 구성이 십 년쯤 후에는 지금보다 훨씬 고령화되어 있을것이라는데 반론을 제기할 사람도 많지는 않을것 입니다. 언론을 통해 듣고있는 익숙한 사실이기에 그렇습니다. 한국을 예로들면, 지금부터 출산율이 극적으로 늘거나 이민자가 엄청나게 몰려든다고 하더라도 십년쯤 후에도 고령인구가 더 많을 것입니다. 한, 20~30년쯤 후라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이 종목은 이런 거대하고 장기적이며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에서 큰 수혜를 입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이 회사가 팔고 있는 유명한 '마법의 갈색병'은 돈이 좀 있어야 꾸준히 사서 쓸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실 분들의 쉬운 이해를 위해서 인터넷에서 같은 용도와 같은 용량의 국산 중저가 제품 가격과 마법의 갈색병 가격을 찾아 예시로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저 같은 아재가 화장품을 알 턱이 없습니다. 그냥 주변의 여성에게 물어보기 바랍니다.
요즘 국산 중저가 화장품이 미국 아마존에서 잘 팔리는 것을 두고, 지금 한국산 화장품을 사는 10~20대 여자애들이 나이가 들어도 한국산 화장품의 수요층이 될 테고, 나중에는 자신의 딸들에게도 권하게 될 테니 장기적인 호재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그냥 그 애들이 돈이 없으니 저렴한 가격에 쓸만한 화장품을 찾았을 뿐이고, 사실 10~20대 때는 뭘 발라도 예쁩니다. 나이가 들어 쓸 수 있는 돈이 많아지면 언젠가는 '마법의 갈색병'을 써 보고는 '이래서 마법이라고 하는구나!'할 것입니다. 아마도 자신의 피부에 한달에 수십만원쯤 투자하는 것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이라면 계속 쓰게될 것입니다.
이 종목이 선진국 인구 고령화의 수혜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가처분 소득, 그러니까 자신이 자유롭게 쓸수있는 돈은 대개 50~60대 까지는 연령에 비례해서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여자의 40~50대는 피부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름이 진해지기 시작하니 말입니다. 그 나이쯤 되면 자신이 쓰던 화장품을 잘 바꾸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딸이 중저가 화장품을 쓰는 것을 보면 소중한 피부에 그렇게 아무거나 바르는 거 아니라며 타이르고 있을 듯합니다.
또, 도시화와 일하는 여성의 증가도 이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을 뒷받침해 줄 요소입니다. 어린 시절 저나 제 친구들의 어머니들 중 일을 하는 어머니는 매우 드물었지만, 요즘 애들에게는 그렇게 희귀한 존재는 아닐 것입니다. 밖으로 나가 여러 사람을 만난다면 아무래도 더 자주 화장을 할 것입니다. 지금 도시화가 가장 활발히 진행 중인 나라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과 인도, 동남아의 나라들입니다.
이렇게 성장성을 갖췄으면서도 매일 발라서 없어지는 화장품이라는 제품을 만들어 팔고 있으니, 이 종목은 이익의 안정성까지 갖춘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그렇더라도, 역시 실적이라는 숫자를 통해 이 안정성과 성장성이 읽히는지 검증해 봐야 합니다. 숫자를 통한 검증을 하지 않는다면 경쟁력이 떨어져서 부실한 숫자들을 보여주는 화장품 회사들까지 모두 투자대상이 될 것이니 말입니다.
아래는 지난 15년간 이 회사의 실적과 이익률 추이입니다. 회계결산일이 6월 말임은 감안해야 합니다.
왼편 푸른 선의 매출액 추이를 보면 제가 얘기한 안정성에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붉은 선의 영업이익 추이는 고개가 갸우뚱 해 집니다. 2021년 12월의 전고점에 비해 반의 반토막난 지금 주가를 생각하면, 주가는 매출이 아닌 이익에 수렴한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왜, 이 회사는 매출이 조금만 줄어도 영업이익이 급전직하하는 것일까요? 오른쪽 푸른 선의 매출총이익률은 그렇게 까지 떨어지지는 않는데 말입니다. 파헤쳐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의문이 드는 찜찜한 부분을 파헤쳐 보는게 종목분석의 거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2022~2024년의 손익계산서 중 일부입니다.
2024년에는 구조조정 비용과 영업권/무형자산 손상차손을 합한 비용이 무려 593백만 불로, 영업이익 970백만 불과 비교하면 이런 비용들이 영업이익을 급락시킨 주범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업권은 다른 회사를 인수나 합병할 때 든 돈 중에서 그 회사 순자산 가치를 넘는 돈을 의미하고, 무형자산은 브랜드 가치와 같은, 눈에 보이지 않아 추상적으로 값을 매길 수밖에 없는 자산을 말합니다. 손상차손은 그 자산의 가치를 다시 평가해서 그 값을 낮추었다는 말이므로, 2024년에는 실제로 돈을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장부에서 꽤 큰 금액을 지워 없앤 게 영업이익이 급감한 이유라는 말이 됩니다.
한편, 2023년의 경우는 이런 비용들보다 매출총이익이 줄어든 게 영업이익을 떨어트린 주범입니다. 매출은 10% 정도 줄어든 반면, 매출총이익은 16%나 줄었으니 말입니다.
2020년의 경우는 아래와 같습니다.
역시 구조조정이나 무형자산 상각에 들어간 돈이 영업이익을 급락시킨 주범입니다. 영업권이나 무형자산 상각비는 실제로 돈을 쓴 게 아닌, 장부에서 숫자만 지워 없앴다는 말이니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지만, 2023년의 매출총이익 하락은 이유를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래는 사업보고서의 경영진단에서 찾은 전년도 대비 2023년 매출총이익률 변동을 설명하는 표입니다. 단위가 BP(Basis Point)이므로, 100BP는 1%의 변동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가가 계속 2023년과 같은 수준으로 오르지는 않을 것이므로 제조원가는 무시하고 보면, 형광펜으로 표시한 항목들이 매출총이익률을 떨어트린 주범들입니다. 'Mix of business'는 이 회사의 경우 '브랜드 재편', 그러니까 안 팔리는 매장은 철수하거나 하면서 거기서 나오는 재고를 할인판매한 비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Obsolences charges'는 재고의 폐기비용, 그러니까 화장품은 유통기한이 있기에 유통기한을 넘어도 안팔리는 제품을 폐기한 비용이라는 말입니다. 왜, 유독 2023년에만 이런 비용들이 급증해서 매출총이익률을 떨어트렸을까요? 또, 왜, 2020년과 2024년에는 구조조정이나 상각비가 급증해 영업이익률을 떨어트렸을까요?
제가 생각해 얻은 결론은 화장품은 유통기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황이 닥쳤을 때 안 팔리는 매장은 철수하거나 잘 안팔리는 브랜드의 제품 종류를 줄이고 재고는 할인판매를 통해 줄이지 않으면, 화장품은 유통기한이 있기에 그 다음 해에는 대규모의 할인판매나 재고폐기를 해야 합니다. 그런 기간이 길어지면 이 업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브랜드 가치의 훼손, 그러니까 할인 가판대나 인터넷 리셀러에게서 떨이가격으로 살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지면 아무도 정가를 주고 그 화장품을 사지 않으려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 회사는 그걸 막으려고 불황이 올 때마다 일시적인 이익률 하락을 감수하고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023년의 경우는 조기에 구조조정을 하지 않아 이 회사가 그토록 피하고 싶어 하는 매출총이익률의 하락이 발생한 좋은 예시로 보입니다.
2023년의 실적악화는 중국의 코로나 재창궐 때문이었습니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1~2022년에도 이 회사 실적은 상당히 좋았으므로 중국의 코로나 재창궐이 크게 대수롭지 않아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2021~2022년의 실적은 왜 좋았는지는 작년에 이 종목에 대해 썼던 제 글에서 중국 하이난 면세점 덕분이라고 말했었는데, 이 회사뿐만 아니라 유럽의 명품백을 만드는 회사들의 최근 실적을 보면 제 생각이 틀리지는 않았던 듯 합니다.
2024년의 실적악화 원인은 중국의 부동산발 경기침체이므로, 이 회사 실적이 언제 반등하느냐는 중국의 경기에 달려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면, 중국의 경기는 언제쯤 다시 좋아질까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누구는 정부의 경기부양책으로 조만간 반등이 시작될 것이라고 하고, 누구는 90년대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경제전문가라는 사람들 사이에도 의견이 갈리는데, 제가 노력한다고 그걸 정확히 예측할 자신이 없고, 그런 노력을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행히도 가치투자는 이런 어려운 예측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변상황이 어떻든 자신이 고른 회사가 어려운 상황이라도 잘 헤쳐 나가리라는 믿음을 전제로 하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에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자신이 고른 회사가 망하지 않을, 좋은 회사라는 확신 말입니다.
아래의 오른편 붉은 선의 등락은 있지만 장기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자유현금흐름의 추이는 이런 확신을 가지게 하는데, 어째 최근 몇 년간 부채비율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부채비율은 재무상태표에서 보이는 모든 부채의 합을 자본(순자산)으로 나누어 구하는데, 제 경우는 아직 주지 않은 원료대금이나 임금 같은 것들은 제외하고, 원금과 이자를 갚기로 약속하고 빌린 돈만 계산합니다. 따라서, 그래프에서 보이는 1.5배의 비율은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전적인 방식으로 계산하면 이 회사 부채는 자본보다 무려 3배나 많습니다.
가뜩이나 이익도 급락했는데, 이 많은 부채가 괜찮을지 들여다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래의 재무상태표를 들여다보면 이 회사가 빌린 돈은 주로 장기부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장기부채는 거의 전부 회사채인데, 그 만기가 무려 2053년까지 분산돼 있습니다. 앞으로 5년 내에 갚아야 할 돈도 2,202백만 불 정도로 당장 가지고 있는 현금 3,395백만 불과 비교하면 걱정이 없습니다.
미국종목들 중에는 이렇게 장기 회사채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남는 현금은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에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채권시장이 발달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표에서 보이는 5~6%대의 높은 이자로 발행한 회사채는 나중에 금리가 낮아지면 싼 이자의 회사채를 발행해 갚아버리면 그만입니다. 이 정도 회사가 발행하는 회사채가 안 팔릴 리도 없습니다. 주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 국내 시장환경과 비교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괜히 나온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은행은 상황이 좋을 때는 친절하게 돈을 빌려주지만, 조금만 상황이 나빠져도 서둘러 돈을 뺐어가려 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는 이 회사 실적이나 주가의 회복이 중국경기에 달린 것 처럼 말했지만, 사실 꼭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요즘 동남아나 유럽에서 온 관광객이 많이 보여서 그렇습니다.
2024년 10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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