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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10년을 보유할 주식 - Texas Instruments Incorporated (Nasdaq: TXN) (5)

 국내 반도체 산업이 메모리에 편중되어 있는 탓에 국내 언론들은 반도체를 메모리와 메모리가 아닌 비메모리로 분류하고 있지만, 이것은 잘못된 분류입니다. 반도체는 크게 아날로그 반도체와 디지털 반도체로 분류할 수 있는데,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이 메모리이고, 그 데이터를 연산하는 것이 CPU나 GPU, AP 같은 프로세서입니다.

 

 한편, 디지털의 세상이 아닌 현실의 세상에서 발생하는 빛이나 소리, 온도, 압력, 전자기와 같은 파동을 메모리나 프로세서가 처리할 수 있도록 디지털 신호로 바꾸어 주거나, 반대로 디지털 신호를 사람이 보고 듣거나 이용할 수 있도록 다시 자연계의 신호로 바꾸어 주는 것이 아날로그 반도체의 역할입니다. 센서나 전력반도체같은 것들이 이 아날로그 반도체에 포함됩니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제가 '엔비디아'나 '하이닉스'같은 '핫'한 종목들을 놔두고 아날로그 반도체를 주업으로 하는 이 종목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는 제가 레트로한 감성의 소유자여서가 아닙니다. 인공지능의 연산과 같은 것에 사용되는 디지털 반도체는 변화가 빠르고, 언제든 혁신적인 게임체인저가 나타나 기존의 수위권 업체들을 몰락시키고 그 산업을 장악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런 사례들이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로 넘어가던 시기나 라디오에서 TV, 혹은 컴퓨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던 격변기에 많이 발생했고, 지금이 인공지능 도입의 초기임을 생각하면 지금은 인공지능의 세상을 장악할 것처럼 보이는 '엔비디아'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에는 회의적입니다. 

 

 주식투자가 그때 그때 핫한 기술의 업종 대표주만 사서 성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돈을 잃는 개미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요?

 

 반면, 아날로그 반도체의 세계는 이런 기술이나 기기의 변화에도 크게 변한 것이 없었고, 듣도 보도 못한 게임체인저가 등장한 사례도 없었습니다. 자연계의 신호가 시간이 흐른다고 바뀔 것이 없고, 인간이 디지털 신호를 사용하는 방법도 보거나 듣고, 말하고, 만지거나 느끼는 것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의 경우 1930년에 설립되어 1950년대 최초의 실리콘 트랜지스터를 생산한 회사였으니, 진공관의 시대부터 스마트폰의 시대까지 전자산업의 발전과 함께해 온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앞으로의 인공지능 세상에서도 인공지능 서버나 인공지능으로 움직일 수 많은 기기들은 더 많은 전력반도체나 센서들을 필요로 할 테니, 이 사실들 만으로도 이 종목은 이익의 안정성과 사업의 성장성을 모두 갖춘 종목이 되는 셈입니다.

 

 이런 제 생각과 논리에 헛점이 있지는 않을지 숫자들을 좀 들여다봐야겠습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래는 이 회사 실적과 이익률의 지난 15년간 추이입니다.

 

G/M: 매출총이익률 / O/M: 영업이익률

 

 등락은 있지만 실적과 이익률의 장기추이가 우상향하고 있다는 점에 안심은 되지만, 2011~2013년 경의 영업이익 하락폭이 심상치 않았던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익률이 이렇게 까지 심하게 요동친다면 다음번 불황에는 생사를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반도체 시장주기를 기록한 그래프를 보면, 2012년 경은 주기의 저점이었고 당시 이 회사 매출총이익률은 크게 하락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시 영업이익의 급락은 외부요인이 아닌 내부요인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매출총이익은 매출액에서 원가를 빼서 구하고, 영업이익은 거기서 판관비나 내부적인 비용을 빼서 구하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부진이 경쟁력이 떨어져서 판가를 낮추는 것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이 아닌, 내부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는 알아봐야 합니다. 혹시 내부의 불합리한 요소가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어서 다음번의 불황기에는 회사가 위기에 빠질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내부적인 비용들이 매출총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정리한 표입니다.

 

 

 문제의 2012년 경에 특히 '기타'비용의 비율이 급증했음을 볼 수 있는데, '기타'는 인수와 매각, 구조조정에 들어간 비용들을 합한 항목입니다. 이때, 분석하고자 하는 회사의 연혁을 먼저 정리해 보면 굳이 당시의 사업보고서들을 열심히 들춰보지 않아도 2011년의 'National Semiconductor' 인수와 무선사업부의 구조조정 영향이 컸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부문별 영업이익을 정리한 표를 보면 구조조정을 완료한 붉은색의 '무선'부문과 인수나 구조조정 비용이 포함된 푸른색의 '기타'부문을 제외하고, 현재의 주력사업인 검은색의 아날로그 반도체와 회색의 내장 프로세서 만을 더한 막대 길이의 추이를 자세히 보면 2011~2013년 경의 영업이익 하락폭은 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당시 영업이익의 급락은 반도체 산업의 침체기에 대규모 인수와 무선사업부 구조조정 영향이 합쳐져서 나타난 결과로, 걱정을 해야 할 사안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실적과 이익률이 빠르게 회복된 데서 오히려 성공적인 인수와 구조조정이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자, 그럼 이 문제는 해결되었으니 다른 숫자들도 보겠습니다.

 

ROE: 순자산이익률 / BPS: 주당순자산 / FCS: 주당자유현금흐름

 

 아직 주지않은 원료대금이나 임금 같은 것들은 제외하고, 원금과 이자를 갚기로 약속하고 빌린 순수한 빚만 계산했는데도 부채비율이 꽤 높다는 점과 자유현금흐름이 작년에 급락한 점이 눈에 띕니다.

 

재무상태표의 부채와 자본

 

 이 회사의 부채는 거의 대부분 장기회사채인데 112억 달러의 빚은 순자산 169억 달러와 비교해도 꽤 큰 금액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회사채들은 만기가 무려 2063년까지 잘 분산되어 있고, 현금성 자산도 무려 86억 달러나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회사가 빚을 못 갚아서 어려움에 처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작년에 원금과 이자를 갚는데 쓴 돈이 영업이익의 4.8% 밖에 안 되는 반면, 순자산이익률은 38%가 넘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TXN의 회사채 만기와 금액

 

 우량한 미국 종목들 중에는 이 회사처럼 언제 돈을 돌려달라고 할지 모를 은행빚 때문에 엄청난 잉여현금을 가지고 있는 대신 필요한 자금은 장기회사채를 발행해서 조달하고, 잉여현금은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회사들이 많습니다. 회사채 시장이 발달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한편, 아래에 있는 주주환원액과 붉은선의 투자비 지출액 추이를 보면 작년에 주당자유현금흐름이 급락한 이유는 자사주 매입은 줄인 반면, 투자지출은 크게 늘렸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투자비가 급증한 이유는 2022년에 완공한 300mm 팹 두 곳에 장비들을 채워 넣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하필 반도체 경기가 좋지 않았던 작년에 그렇게 투자를 많이 했을까?' 싶을지 모르겠지만, 이 회사는 앞에서 얘기한 2011~2013년의 불황기에도 대규모 인수와 구조조정이라는 투자를 통해서 이후의 호황기에 아날로그 업계의 선두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 종목을 샀던 몇년 전 보다 반도체 경기가 최악일 때 큰 투자를 하는 시점이 이 종목의 최적 매수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다시 이 종목을 샀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좀 더 참았다가 지금쯤 이 종목을 사고 싶습니다.

 

2024년 2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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