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원에스씨'는 제가 4년 정도 보유하여 처음 그 주식을 샀을 때 기대했던 5배 정도의 수익을 달성하고 매도했던 좋은 추억을 안겨준 주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원에스씨의 모태가 되는 회사인 이 종목을 분석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미원에스씨뿐만 아니라 미원화학 등의 모든 미원그룹의 계열사들의 모태가 되는 기업이 이 회사입니다.
회사이름에 '상사'가 들어가므로 '뭔가 원자재 같은 것을 수입하고 수출하는 회사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회사는 LG생활건강이나 동진쎄미켐같은 회사들이 만드는 제품의 원료인 중간재를 만드는 정밀화학 기업입니다. 중간재라는 말은 자연에서 채굴한 원자재를 정제하여 화학원료를 만드는 회사들에게서 그 원료를 받아서 최종적인 화학제품(그러니까, 화장품이나 반도체 공정액 등)을 만드는데 필요한 중간 단계의 소재를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사이름에 '상사'가 들어가는 이유는 선대 회장이 한국전쟁 직후 화공약품의 도매업을 하다가 물량이 증가하자 그 늘어난 물량에 대응하기 위해 직접 수입을 하기 위해서 이 회사를 설립했기 때문입니다. 동사가 제조업을 하게 된 것은 1963년에 외화가 부족했던 정부가 수입규제조치를 내린 것이 계기로, 황산공장을 당시의 자체 인력만으로 준공했다고 합니다.
제가 이런 중간재를 만드는 정밀화학기업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화장품이나 반도체같은 산업의 전망이 좋아져서 너도 나도 화장품이나 반도체 공정액 같은 것을 만들겠다고 뛰어들더라도 이런 중간재를 하는 회사들은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술이나 노하우가 없으면 쓸만한 중간재를 만들 수 없고, 장치산업이기에 대규모의 자본투자도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럼, 앞으로 10~20년 이상 이 회사가 성장할수 있을지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 지난 15년 정도의 영업실적을 보겠습니다. 과거의 실적을 되돌아보는 이유는 과거에 못했던 회사보다 과거에도 잘했던 회사가 앞으로도 잘할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제가 장기투자를 한다고 하면, '앞으로 10년 후에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를 너는 아느냐?'라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런데, 저도 역시 타임머신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제가 하려는 것은 앞으로 10년 후의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를 예측해서 거기서 성장할 산업이나 미래의 1등 기업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크게 바뀌지 않을것 같은, 그러니까,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무언가를 만들고, 과거에 꾸준히 성장해온 이 회사와 같은 기업이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화학분야에서 생각되는 앞으로의 변화는 친환경적인 원료를 사용한다던가, 배출되는 화학물질을 무해하도록 정제하는 기술의 발전 정도이지, 사람들이 화학을 버리고 철이나 나무, 혹은 돌로 만든 물건만 사용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동사의 실적으로 되돌아 가겠습니다.
최근 3~4년의 이익이 급속히 늘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매출과 이익이 거의 정체상태였습니다. 또, 이익률은 2017년 경까지 꾸준히 하락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장기간 지지부진한 실적을 보이다가 최근 몇 년간 실적이 좋아진 회사들은 대부분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일시적으로 시장환경이 좋아진 결과일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주식을 분석해본 이유는 이 회사가 화장품이나 샴푸 등에 쓰이는 계면활성제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산업에 사용되는 전자재료라는, 수요가 안정적이고 경쟁도 치열해 보이지 않는 분야에서 대부분의 돈을 벌고 있어서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회사의 과거 저조했던 실적에는 뭔가 곡절이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이 회사의 매출과 이익이 장기간 정체상태였던 이유는 2009년의 미원에스씨, 2011년의 미원화학과 미원이오디, 2012년의 동남합성 등 많은 사업부가 분할되어 별도의 회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래에 보이는 이 회사에서 분할된 회사들의 실적을 모두 합한 매출은 장기간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실적에 대한 의문은 풀렸는데, 장기간 하락했던 이익률이 아무래도 꺼림칙합니다. '수익성이 좋았던 사업들은 분사되어 나가고 이익률이 낮은 사업만 남은 와중에, 최근 몇 년간 원료 가격이 떨어지거나 해서 일시적으로 이익률이 좋아진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들게 합니다.
답은 아래에 보이는 코코넛 오일 가격의 추이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근래의 화장품이나 생활용품에 쓰이는 계면활성제는 천연성분으로 만들어진 것이 선호되는데, 주로 코코넛오일을 많이들 사용합니다. 이익률이 높았던 2009년과 2012년 경에는 코코넛오일 가격이 낮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이익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했던 2013년에서 2017년까지는 코코넛오일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었음도 볼수 있습니다.
즉, 에너지경화수지나 황산 같은 사업들이 분사되어 나가면서 동사는 계면활성제 위주의 회사가 되었고, 때문에 주원료인 코코넛오일 가격의 등락에 이익률이 크게 영향을 받는 구조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코코넛오일 가격이 오르고 있는 최근 몇 년간 동사의 이익률이 좋아진 것은 또 무슨 이유일까요? 바로, 전자재료의 매출 비중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17년에는 18%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전자재료의 비중이 최근에는 계면활성제를 위주로 하는 생활화학보다 커졌습니다. 그렇다면 '높아진 이익률을 앞으로도 유지하거나 더 높일 수 있느냐?'는 동사 전자재료의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수 있느냐에 달린 것처럼 보입니다. 제 생각은 '그렇다'입니다.
이 회사가 만드는 전자재료는 주로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혹은 인쇄회로기판 등을 만들 때 하는 노광공정에 쓰이는 포토레지스트 등의 공정액의 원료로 쓰입니다. 그런데, 갈수록 반도체의 회로선폭이 미세해지고, 적층수가 많아지면서 노광공정을 반복하는 횟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 전에는 잘 사용하지 않던 국산 포토레지스트의 사용량이 1~2년 전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디스플레이의 경우는 한국업체가 만들던, 중국 업체가 만들던, 전체적인 출하 면적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꼭 전자재료가 아니더라도 이 회사는 뭔가 또 새로운 것을 만들어 현재의 이익률을 유지하거나 더 높일수 있을것 같습니다.
몇 주 전에 동진쎄미켐을 분석하다가 포토레지스트라는 고 부가가치의 제품을 생산함에도 이익률이 낮은 것이 의아했는데, 이 주식을 분석하며 의문이 풀렸습니다. 실속은 이 회사가 차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은 제가 생각하는 이 회사가 높은 이익률을 보여주는 이유입니다.
1. 사업 초기에는 원료를 대량으로 수입하여 이익률을 확보
2. 이후, 해당 원료로 정제품을 자체 기술로 생산하여 이익률을 더 높임
3. 그 정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 중간재를 자체 개발/생산하여 이익률을 더 높임
즉, 2번과 3번의 단계를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체적으로 진행해 왔기에 원료와 정제품, 중간재에 대한 지식과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는데, 바로 이점이 느리지만 꾸준한 성장과 높은 이익률을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이는 대부분의 국내 정밀화학 업체들이 당장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해외 기술을 도입하지만, 시행착오의 과정이 없기에 지식과 노하우는 쌓지 못하여 시장의 수요가 다른 중간재로 옮겨졌을 때 도태되거나, 또다시 낮은 이익률에 만족하며 해외 기술에 의존해온 점과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2003년에 이 회사의 직원들이 우리사주를 퇴직하기 전에도 자유롭게 팔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에 대한 당시 회장의 답변을 아래에 실었습니다. 우리 같은 개인투자자들도 뭔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글입니다.
2021년 12월에, 동해에서..
'투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구가 되지 않는 법 (9) | 2022.01.01 |
---|---|
가치투자의 기본개념 (2) | 2021.12.28 |
10년을 보유할 종목 (5) | 2021.12.16 |
장기투자를 해야하는 이유 (3) | 2021.12.10 |
"하루만 참았어도 대박 터졌는데.." 고통받는 개미들 (0) | 2021.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