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 영업사원이 극한직업이라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리베이트, 금품이나 향응제공 까지는 그러려니 하겠는데, 병원이나 의사의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뉴스나 글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언뜻 생각하면 약의 효능이나 성분을 설명해야 하므로, 임상시험 결과나 논문 등을 의사나 약사와 논의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많이 한 친구들이나 택할 법한 고상해 보이는 직업이 왜 이 지경이 된 것일까요?
'회사의 꽃은 영업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영업환경이 이렇게 썩어있다면 그 뿌리는 이미 썩어 문드러져있을 것 이기에, 제약업종에 투자하기 전에 제약영업이 이렇게 까지 극한직업이 된 이유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의 약값은 특허가 만료된 전문의약품(의사가 처방하는 약)의 경우 모두 건강보험 당국에서 정하는, 자유시장경제와는 멀어 보이는 제도 아래에서 정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의약산업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문제이므로, 시장에만 맡겨서 나타날 수 있는 독과점이나 다국적 거대 제약사들에 국가의 근간인 국민들의 생명을 맡겨야 하는 위험을 방지하고자 함입니다. 어린 시절 사회시간에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 세 가지는 영토와 주권, 국민이다'라고 배운 것이 기억날 것입니다.
그리고, 복제약의 약값이 오리지널약 대비 20~30% 수준에서 형성되어있는 대부분의 선진국들과는 달리 건강보험 당국에서는 매우 후한 수준으로 복제약가를 책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했던 이유는 그간 신약의 개발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국내 제약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로 인해 국내 제약사들은 많은 투자가 필요한 신약의 개발이나 해외 진출은 뒤로하고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복제약 위주로 내수시장에만 안주하게 되었습니다. 또, 오리지널약 1종에 대해 50종의 복제약들이 경쟁하는 과다경쟁의 시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매우 후한 복제약값 덕분입니다.
복제약들은 그 효능에서 차이가 없습니다. 또, 가격을 당국에서 정하므로 가격경쟁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전문의약품은 의사가 처방하므로 대중들에게 광고를 하는 것도 의미 없는 일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제약사는 어떻게 해야 자기 약을 더 많이 팔 수 있을까요?
유일한 수단은 그 약을 처방하는 의사나 병원에 영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사나 병원은 동일한 성분의 약을 많이 다루어 봤을 것이므로, 효능이나 성분, 임상결과나 논문을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영업을 해야 할까요? 이익의 일부를 의사나 병원에 떼어 주는 매우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국에서도 이런 폐단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매년 리베이트 규제와 처벌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또, 건강보험의 재정문제로 복제약값도 한 해가 멀다 하고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니, 애초에 약값을 일일이 당국이 정하는 제도 자체가 얼마나 갈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당국이 우산을 치워버린다면 국내 전통 제약업에는 큰 변화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가 제가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 순간입니다. 대개의 제도나 관습 같은 것들은 긴 시차를 두고 선진국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독특한 문화라고 하는 '꽌시'가 10~20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에도 만연했던 부정청탁일 뿐임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제가 만약 덴마크나 스웨덴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걸 참조할만한 나라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건강보험 제도가 미국을 따라갈 것 같지는 않으므로, 유럽의 약가정책을 보겠습니다.
표에 있는 정책들을 일일이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우리처럼 모든 약가를 정부가 노골적으로 정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우리도 당국이 자율경쟁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최소한 지금처럼 후한 복제약값을 일일이 지정해주는 제도는 사라지리라는 것을 쉽게 예견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은 당국이 보기에 국내 제약산업도 어느정도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판단되는 때가 될 것입니다.
이쯤이면 '이놈은 왜 전망이 밝은 바이오의약 분야를 놔두고, 정책의 보호가 없으면 무너질 것 같은 전통 제약업에서 주식을 찾으려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글쎄, 제가 보기에도 바이오 업종의 미래가 전통 제약업보다는 밝아 보이기는 하는데, 그 산업의 전망과 개별 주식의 성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바이오산업과 같이 모든 사람들이 찬란하게 생각하는 업종의 주식은 대개 고평가 되어 있고, 미래의 경쟁도 치열해집니다. 반면, 전통 제약업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전망이 밝지 않다고 생각하는 산업에서는 저평가된 주식을 찾기가 쉽고, 미래의 경쟁은 오히려 완화되기가 쉽습니다.
그렇지만, 당국의 정책이 바뀌어도 큰 타격을 입지 않고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을 골라야 합니다. 당국의 정책이 유럽 국가들과 비슷한 방향으로 바뀌면 어떤 제약사들이 살아남게 될까요?
1) 우선, 신약이나 개량신약을 개발할 역량을 갖춘 회사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2) 또, 퍼스트제네릭, 그러니까, 오리지널약의 특허가 만료되자마자 처음으로 그 복제약을 출시하여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회사가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마케팅 역량이 뛰어난 회사여야 할 것입니다.
3) 당국의 정책과는 무관한 일반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의 매출 비중이 큰 회사도 좋은 선택입니다.
4) 원료의약품을 직접 만드는 회사도 유망한데, 복제약의 가격경쟁에서 유리해지기 때문입니다.
'동국제약'은 이 중 3) 번과 4) 번에 해당됩니다. 이 회사는 마데카솔, 인사돌, 훼라민큐, 판시딜, 센시아, 치센 등 우리에게 그 질환용 약의 대명사처럼 각인된 일반의약품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 국내 최초로 출시해서 시장을 장악했으니 마케팅 역량도 탁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센텔리안 24'는 국내 더마 화장품(의약품 성분의 화장품) 시장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브랜드입니다.
한편, 원료의약품을 중국에서 사 와서 복제약을 만드는 대부분의 국내 제약사들과는 달리 이 회사는 거의 모든 원료의약품을 직접 만들기에, 아래와 같이 높은 이익률을 장기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만성질환의 증가나 웰빙 트렌드 같은 것들은 반짝하다가 사라질 일시적인 유행이 아닙니다. 전통 제약업종을 언제 바뀔지 모를 정부 정책에 기대 성장해온 산업이라고 거르기에는 그 수요의 안정성이나 성장성이 너무나도 아깝습니다. 그 안에 숨어있을지 모를 진주 같은 종목을 찾아야 하는데, 이 종목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2022년 7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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