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트럼프의 말 한마디에 주가가 폭락했다가 다음날 폭등하고 하는 게 재미있어서, 아침에 틀어만 놓고 잘 보지 않던 증권방송을 즐겁고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시장을 즐길 수 있는 비결은 다른 종목들은 모두 빠지는데 제가 가진 종목들이라고 오르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제 비결은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장기적으로는 결국 성공할 것 같아 보이지 않고, 제가 고른 종목들은 모두 몇 달이나 몇 년 후가 아닌, 10년쯤 후의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른 종목들이어서 그렇습니다. 5년이나 10년쯤 시간이 흐른 후에 지금을 되돌아보면 요즘 벌어지는 일들은 지나간 한때의 소동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제목에 있는 이 종목 역시 장기적인 안정성과 성장성을 갖춘 종목이라고 생각되므로, 지금부터는 그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우선, 이 회사가 만드는 장비들은 주로 반도체 후공정이나 LED 패키징, OLED, 스마트폰 같은 다양한 전자기기의 표면실장에 쓰이므로 수요처와 고객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이 회사가 벌어 남기는 이익의 안정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어느 한 업종의 특정 공정에서만 쓰이는 장비만 만드는 회사라면, 그 장비가 당장은 아무리 많이 팔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공정이 다른 소재나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미래가 안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 회사가 전자산업에 쓰이는 다양한 장비들을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그중 최근에 매출비중이 높은 것들은 반도체 후공정에서 쓰이는 '언더필 디스펜서'와 '다이본더', '솔더 리플로우'같은 장비들입니다.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동그란 거울처럼 생긴 웨이퍼에 전공정에서 회로를 새겨 넣고 나면 웨이퍼 한 장에는 수십에서 수백 개의 칩이 만들어지는데, 후공정은 그 칩들을 하나씩 떼어내서 작은 인쇄회로기판(PCB)에 붙이고 검은색 몰딩을 입혀주는 공정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칩을 보호할 목적도 있지만, 반도체의 회로나 접점은 미세한데 반해, 그걸 붙일 메인보드 PCB는 그에 비하면 선폭이나 접점이 거대해서 바로 웨이퍼에서 떼어낸 칩을 붙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위에 보이는 후공정을 마친 패키지 상태의 칩 단면도에서 웨이퍼에서 떼어낸 칩(Die)과 기판 PCB 사이를 초록색으로 보이는 에폭시와 같은 물질로 채워주는 장비가 '언더필 디스펜서'이고, Die 아래에 보이는 동그란 접점을 기판 PCB에 붙이는 역할을 '다이본더'가 합니다. '솔더 리플로우'는 패키지 된 칩의 접점인 'Solder Ball'을 메인보드에 붙일 때 쓰는 장비입니다.
이런 장비들은 당연히 반도체의 수요가 많아지거나 후공정의 수요가 많아질수록 더 많이 팔리게 됩니다. 그 말은 이 종목이 매력적인 성장성도 가진 종목이라는 말이 되는데, 이유는 앞으로 반도체 수요도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것이고, 요즘 반도체 회사들이 전공정 미세화의 한계로 돈이 많이 드는 전공정 대신 후공정에서 여러 칩을 하나의 패키지로 만드는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3개의 칩을 하나로 패키징 한다고 하나의 칩만 들어있는 패키지보다 눈에 띄게 커지는 것은 아니고, HBM도 결국 DRAM을 여러 개 쌓아 하나로 패키징한 첨단 패키지의 일종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 종목은 매우 탁월한 안정성과 성장성을 갖춘 것으로 생각되지만, 회사가 보여준 실적이라는 숫자들을 통해 이를 점검해 봐야 합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물건을 만들고 전망도 밝아 보이지만, 그게 팔리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래는 지난 15년간 이 회사가 보여준 실적과 이익률의 추이입니다.
2013년경부터 2016년까지 실적이 지지부진했음과 작년과 재작년에 매출액의 추이에 비해 이익률이 너무 많이 떨어진 게 눈에 띕니다. 이럴 경우 어느 쪽을 먼저 알아보고 싶은지요? 아마 십중팔구는 당장 급해 보이는 최근 부진의 원인을 먼저 알고 싶겠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제가 꽤 길었던 과거 부진의 이유를 먼저 알고 싶은 이유는 '원래는 별 볼일 없던 회사가 때를 잘 만나서 2017~2022년에는 호실적을 보여줬지만, 이후 그 때가 끝나서 원래의 별 볼일 없던 수준으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싶어서입니다.
당시 실적이 부진했던 원인을 찾기 위해 위의 왼편 그래프를 자세히 보면, 푸른 선의 매출과 붉은 선의 영업이익이 당시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업황이나 경쟁 같은 외부적 요인이 원인이었을 확률이 높으므로, 먼저 당시 업황이 어땠는지를 알아봐야겠습니다. 다행히 인터넷에서 아래와 같은 그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초록색 막대로 표시된 전 세계 반도체 투자액의 추이가 이 회사 매출액의 추이와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약간의 시차가 있는 것은 반도체 회사들의 투자액 중에는 전공정에 대한 투자가 압도적으로 많고, 후공정의 투자는 후행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또, 반도체 투자액의 추이는 푸른 선의 반도체 시장 성장률과 일치한다는 점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시장이 안 좋았으니 어쩔 수 없었네' 하고 넘겨 버리면 안 됩니다. '반도체 산업은 성장산업인데, 당시에는 왜 반도체 경기가 그렇게 오랫동안 안 좋았을까?' 하는 의문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게 종목분석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0년대 라면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던 시기이므로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을 것 같은데, 정작 실제로는 별 볼일 없었다면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이번 주기도 소문만 무성하고 별 볼일 없는 주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이 종목을 포함한 대부분의 반도체 업종 종목들 역시 별 볼일 없어질 것입니다.
앞에서 본 그림은 금액을 기준으로 한 그래프이므로, 수량은 어땠을지가 궁금해집니다.
노란선으로 표시된 반도체 출하량은 등락은 있지만 당시에도 장기추세선을 따라 우상향 중이었던데 반해, 푸른선의 금액은 2012년부터 2016년 경까지 장기추세선의 아래에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수량은 늘었는데 금액은 줄었다는 말은 판가가 꽤 많이 떨어졌다는 말인데, 판가는 왜 떨어졌을까요?
아래에 있는 기기별 반도체 시장 비율을 보면, 컴퓨터는 큰 변화가 없었고 출하량도 2016년까지 줄고 있었던 반면 통신은 1% 가까이 하락했으니, 판가의 하락은 주로 스마트폰에서 일어났다는 말이 됩니다.
아래에 있는 연도별 스마트폰 출하량을 보면, 2016년 까지는 분명히 증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반도체 판가하락의 범인은 스마트폰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3~2016년 경 스마트폰에 쓰이는 반도체 가격이 떨어진 이유는 보급형 스마트폰의 등장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저는 당시 애플이나 삼성의 출하량이 크게 증가하지 못했던 반면 중국회사들의 출하량이 크게 증가한 게 주요한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대만 '미디어텍'이라는 저가경쟁자의 등장이 주요인이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미디어텍의 모바일 시장 점유율은 2012년 9%에서 2017년 26%로 빠르게 성장했고, 최근에는 출하량으로는 '퀄컴'도 따라잡았습니다.
'미디어텍'이라는 이름이 국내 주식쟁이들에게는 생소할지 모르겠지만, 미디어텍은 세계 5위권의 팹리스 업체로, 과거에는 주로 저사양의 스마트폰 AP를 만들었으나 최근 고사양 AP를 공급해 중국 스마트폰의 고사양화를 이끈 막후의 실력자 같은 회사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번 인공지능 주기에서도 미디어텍 같은 저가경쟁자가 출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실제로 AI 가속기 시장에서는 그런 조짐이 보입니다. 한세대쯤 전의 기술로 보급형 가속기를 만들어 팔 수 있다면 굳이 신규장비를 사지 않아도 쓰고 있던 장비로 인공지능 칩을 찍어낼 수 있을 테니, 실제 AI 반도체 투자액은 요즘 언론에서 떠드는 액수에 비하면 초라해질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번 반도체 주기가 별 볼일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반도체의 수요가 과거 PC나 스마트폰 위주에서 인공지능 외에도 사물인터넷이나 차량의 전장화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살펴본 반도체 시장이 부진했던 시기 이후 업황이 좋아진 배경에도 스마트폰의 고사양화 외에도 이런 거대한 흐름의 영향이 있었습니다. 울트라북이나 무선 이어폰, 로봇 청소기 같은 새로운 기기들은 끊임없이 나올 것이고, 자동차 안에 들어가는 반도체도 점점 더 많아질 것입니다. 스마트폰의 고사양화도 미디어텍의 고사양 AP가 큰 역할을 하긴 했지만, 중국인들도 잘 살게 되면서 눈높이가 높아져 고사양 스마트폰을 찾았다는 말이니, 앞으로 과거와 같은 장기간의 저성장기는 다시 오기 힘들 것 같습니다.
자, 그러면 어려운 문제는 풀어낸 것 같으니, 이쯤에서 최근 이 회사 이익률이 급락한 이유를 알아볼 차례입니다. 앞에서 본 반도체 시장성장률 그래프에서는 최근 추이는 보이지 않으므로, 최근 2~3년의 추이를 찾아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굳이 이런 걸 찾아보지 않아도 작년과 재작년에는 뉴스에서 감산이다 뭐다 떠들어 댔으니,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반도체 업황이 좋지 않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이 회사 매출하락폭은 크지 않았고, 심지어 작년에는 반등했으니 이 회사가 하는 사업의 안정성에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반면에 이익률은 매출액이 반등한 작년에도 더 떨어졌으니, 뭔가 내부적인데 원인이 있을 듯합니다.
이 문제는 다행히 사업보고서 '이사의 경영진단'에서 종속회사 '피엠티'의 적자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래와 같이 계산해 본 연결기준과 별도기준 영업이익률을 비교해 보면 이 말이 '이사의 변명'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 연결기준 영업이익률: 2023년 11.2% / 2024년 7.9%
. 별도기준 영업이익률: 2023년 20% / 2024년 16.7%
아래는 '스톡워치'에서 찾아본 최근 10년간의 '피엠티' 실적인데, 한마디로 제가 종목을 고르는 기준에서는 불합격인 종목입니다.
'피엠티'는 미국 'FormFactor', 일본 'MJC'와 함께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삼성전자에 DRAM용 프로브카드를 공급하는 회사입니다. 프로브카드란 전공정에서 회로가 새겨진 웨이퍼를 후공정으로 넘기기 전에 웨이퍼 한 장에 있는 수십에서 수백개의 칩을 한번에 테스트할때 필요한 장치로, 테스트 프로그램을 돌리는 기능적인 역할은 '테스터'가 하고 프로브카드는 그 신호를 칩의 접점에 1:1로 전달해 주는 역할만 합니다. 따라서, 프로브카드에는 웨이퍼 한장에 있는 접점의 수만큼 많은 핀(프로브)이 달려 있는데,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반도체 회로선폭과 접점의 미세화로 그 접점을 접촉할 이 프로브카드의 핀도 미세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반도체 공정과 비슷한 MEMS 공정으로 이 핀을 만들고 있습니다.
국내 경쟁사들이 하는 2D MEMS는 일단 MEMS 공정으로 프로브 핀을 만든 후 카드에 조립하는 방식인데 반해, 피엠티가 하는 3D MEMS는 적층방식으로 카드 위에 바로 핀을 생성하는 방식이므로 핀 수가 많을수록 가격경쟁력이 높아집니다. 따라서, 접점과 핀 수가 적은 NAND 물량은 대부분 국내 경쟁사들이 가져가고, 피엠티는 핀 수가 많은 DRAM 물량을 받아야 하는데, 그 마저도 몇 년 전의 품질문제 이후 물량이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언제까지고 외국업체들에게만 DRAM 물량을 몰아줄 것 같지는 않고, 최근에는 이 회사도 2D MEMS 프로브카드를 개발했다고 하니 NAND 물량도 늘어날 것 같습니다. 또, 언젠가는 국내 메모리 제조사들에게 큰 위협이 될 중국 'XMIC'도 고객으로 확보한 듯 하니, 피엠티를 연결실적에 편입한 게 탐탁지 않기는 하지만 절망적이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이 회사의 이익률은 앞으로도 피엠티의 연결 영향으로 아래위로 요동치게 될 것 같은데, 그게 오히려 잦은 매수와 매도의 기회를 만들어 줄 것 같습니다.
2025년 4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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