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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지켜볼 주식 - Analog Devices, Inc. (Nasdaq: ADI) (4)

 유망해 보이는 산업이나 업종의 종목을 분석하다가도 앞으로 등장할 경쟁자들이나 그 회사가 팔고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대체할 수 있는 신기술이나 대체재의 등장에 생각이 미치면, 분석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나갈 것 같은 종목들 중에서도 그런 위험에서 까지 안전해 보이는 종목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 내가 처음에 그 종목이 유망해 보였던 이유, 그러니까 먼 미래까지 이어질 그 트렌드에서 수혜를 입을 다른 숨겨진 업종은 뭐가 있을지를 생각해 보는데, 반도체 업종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식입니다.

 

 컴퓨터 게임 업종은 누가 봐도 유망한 업종으로 보일 것 입니다. 나라가 잘 살수록 그 나라 사람들에게는 여가시간이 많아지므로, 그 여가시간을 즐길 오락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요즘 스마트폰이 없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는 점만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애들이 그 스마트폰으로 뭘 하겠습니까? 게임산업은 몇몇 나라를 제외하면 국경의 장벽도 없어서, 줄어드는 국내인구 같은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스마트 기기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스마트 고글의 본격적인 확산에도 게임은 결정정인 역할을 하는 컨텐츠들 중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게임산업은 확실히 미래가 찬란해 보이는 산업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게임을 만드는 회사들 중 어떤 회사가 5년이나 10년쯤 후에도 여전히 유망할지를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게임은 개발자 몇 명과 컴퓨터만 있으면 만들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주요 개발자 몇 명이서 '대박 날 것 같은 아이디어가 있으니, 회사만 배불릴 일 하지 말고 우리가 직접 해보자!' 하면, 새로운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단한 그래픽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이 필요할 것 같지만 그런 건 외주를 줘도 되고, 앞으로는 인공지능에 맡겨도 될 것 같습니다. 아니, 게임을 만드는 일 자체를 앞으로는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다면 인공지능에 맞기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시간을 게임에 쓸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그러면 이런 흐름에서 수혜를 입게 될 다른 업종은 뭐가 있을까요? 스마트 고글을 만드는 '메타'나 '아마존'? 아니면, '애플'이나 '삼성'? 문제는 과거 전자산업의 역사를 보면, 이런 새로운 기기가 등장할 때마다 업계의 판도와 생태계가 바뀌어 왔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업체나 예상치 못했던 업체가 이런 경향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더 큰 문제는 기존의 1등 업체는 2~3등으로 밀려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게임산업이 발전하는걸 그냥 손가락만 빨며 지켜봐야 할까요? 반도체가 있었습니다. 스마트 고글이건 인공지능이나 양자컴퓨터 할애비라도 반도체는 들어갈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반도체의 역사도 앞에서 말한 전자기기 산업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인텔이나 삼성전자의 상황과 부상하는 중국 메모리 업체들을 보면, 제가 여기서 반도체 업계의 역사를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하지만, 이런 격변의 전자산업에서 거의 유일하게 무풍지대인 업종이 있으니, 바로 아날로그 반도체 업종입니다. 유명한 아날로그 반도체 제조사들 중에는 업력이 수십 년에서 백 년 가까이 된 회사들이 즐비하고, 망해서 없어진 회사는 찾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날로그 반도체는 자연계의 신호, 그러니까 빛이나 소리, 압력, 파동 등을 디지털계의 신호, 그러니까 '0'과 '1'로 변환해 주거나, 그 반대의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전기로 작동하는 모든 장치나 기기는 아날로그 반도체가 여러 개 필요합니다. 모든 기기나 장치를 사람이 사용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전기 자체가 자연계의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아날로그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가 망하지 않는 첫 번째 비결은 설계의 복잡성, 그러니까 메모리나 프로세서 같은 디지털 반도체처럼 설계를 자동화하고 검증하기가 쉽지 않아서, 많은 부분을 수십 년간 축적된 지식과 노하우에 의존해야 하는 데 있습니다. 설계를 자동화하고 검증하는 게 쉽다면, 앞에서 말한 게임개발과 같이 대박 날 것 같은 아이디어 하나로 개발자 몇 명이 모여서 생태계를 뒤흔들 반도체를 만드는 게 가능해집니다. 실제로 스마트폰 생태계를 주도하고 있는 '퀄컴'이나 'ARM'같은 회사들이 그랬습니다.

 

 또 다른 비결은 제품 하나의 주기가 5년에서 10년, 심지어 20년을 넘는 경우도 많다는 점입니다. 사업을 해 봤거나, '재고 때문에 망한다'는 말의 뜻을 알고 있다면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가령, 5~10년쯤 전에 스마트폰에 들어가던 AP가 지금도 팔립니까?

 

 '망하지 않을 회사면서, 만드는 제품이 전동칫솔부터 인공위성까지, 전기로 작동하는 모든 것에 들어간다..' 아날로그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인 이 종목을 분석해 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다음은 이 회사의 지난 15년간 실적과 이익률의 추이입니다.

 

G/M: 매출총이익률 / O/M: 영업이익률

 

 등락은 있지만 실적이 장기간 우상향 추세라는 점과 이익률은 비교적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2024년에는 꽤 큰 폭으로 영업이익이 줄었는데, 그 정도라면 필경 주가는 반토막이 났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종목과 같은 경기변동주에 투자하려면 그 정도의 일시적인 주가하락은 감수해야 합니다.

 

 저는 업황의 악화에 따른 일시적인 주가의 급락보다 장기적인 부진에서 그 회사의 취약한 부분을 잘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2012~2015년의 꽤 길었던 실적부진을 파혜쳐 보고 싶습니다. 먼저, 반도체 산업은 업황의 등락이 반복되는 경기순환 업종이기에 당시 반도체 경기가 어땠나를 알고 싶습니다. 아래의 그래프를 어렵지 않게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푸른 선으로 표시된 반도체 시장의 성장률을 보면 2012~2015년의 성장률이 저조했다는데서 당시의 이 회사 실적부진의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또, 그래프에서 고점에서 고점까지 이어지는 주기가 과거에는 5~6년 정도에서 2010년 이후에는 3~4년 정도로 짧아진 것도 볼 수 있는데, 과거에는 PC나 가전제품 위주에서 스마트폰이나 스마트 워치/링 등으로 응용처가 넓어진 게 그 이유입니다. 이는 주가가 고점을 회복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이므로, 저 같은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희소식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본 이익률 그래프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2012~2015년에도 매출총이익률은 유지되고 있었던 반면, 유독 영업이익률만 하락했던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매출총이익은 매출액에서 원가를 빼서 구하고, 영업이익은 거기서 일상적인 영업을 하는데 필요한 다른 비용들을 빼서 구합니다. 이 회사의 경우는 매출총이익에서 연구개발비와 판매비, 관리비, 기타 비용들을 빼서 영업이익을 구하는데, 당시의 영업비용들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매출이 줄고 있었음에도 연구개발비를 오히려 늘린 것이 당시 영업이익률 악화의 주요한 이유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2014~2015년에는 연구개발비와 판관비를 제외한 영업비용도 크게 늘었음도 볼 수 있습니다. 연구개발비의 증가는 크게 걱정이 되지 않으므로, 2014년과 2015년에 '기타 비용'이 증가한 이유를 알기 위해 당시의 손익계산서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형광펜으로 표시한 '무형자산 상각비(Amortization of intangibles)'와 '기타 영업비용(Other operating expense)'이 급증한 게 이유였습니다. 2015년의 '기타 영업비용'이 급증한 이유는 이 회사가 큰 공장을 가지고 있는 아일랜드의 노동자 연금법이 바뀌면서 발생한 일회성의 비용이었습니다.

 

 무형자산은 말 그대로 그 회사가 가진 모든 자산 중 눈에 보이지 않아서 금액을 평가하기 힘든 자산을 적어 넣는 회계상의 금액인데, 매년 일정액을 장부상에서 지워 없애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무형자산 상각비'라고 합니다. '어쨌든 무형자산도 그 회사가 가진 자산인데, 그걸 왜 지워 없애야 하나?'라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그 무형자산이 실제로 유용한 자산이라면 그걸 이용해서 벌어서 남기는 이익이 상각하는 금액보다 더 많이 쌓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형자산 상각비가 당시 급증했던 이유는 다른 아날로그 반도체 회사를 인수하면서 그 회사의 무형자산까지 떠안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연구개발비와 마찬가지로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데 쓴 돈도 투자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신과 다른 강점이 있는 회사를 인수한다면, 자신이 그 분야에 매진하는 것보다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7년과 2021년의 영업이익률 하락도 같은 업종의 다른 강점을 가진 회사를 인수하면서 생긴 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회사의 안정성과 성장성에 더 큰 확신이 생깁니다.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아래 초록선과 같이 ROE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작년에는 5% 가까이로 떨어진 걸 볼 수 있습니다.

 

ROE: 순자산이익률 / BPS: 주당순자산 / FCS: 주당자유현금흐름

 

 그런데, 앞에서 본 다른 이익률들은 약간의 등락이 있긴 했지만 장기적인 추이는 분명히 꽤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ROE, 그러니까 순자산이익률은 순이익을 순자산(자본)으로 나누어 구하므로 순이익률의 추이를 보는 게 더 명확할 것이나, 이 경우는 위의 오른쪽 푸른 선을 보면 감이 잡힙니다. 순이익이 줄어서가 아닌, 순자산이 급증해서 ROE를 떨어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2017년과 2021년의 대규모 인수가 있었던 해는 푸른 선이 급등한 것을 볼 수 있고, 그 해에는 ROE도 푹 꺼져있습니다.

 

 부채비율이 낮게 유지되는데서 무리한 빚을 지고 인수를 하지는 않는다는 것과 인수 이후 주당자유현금흐름이 급증한 데서 외형만 키우는 식이 아닌, 성공적인 인수를 해 왔다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ROE가 언제쯤 예전의 높은 수준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스럽습니다. 순자산이 엄청나게 증가했으니, 순이익이 웬만큼 증가해서는 몇 년 안에 두 자릿수의 ROE를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여서입니다. 이것도 파헤쳐 봐야겠습니다.

 

 아래의 재무상태표를 보면, 전체자산 중 영업권(Goodwill)과 무형자산(Intangible assets)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두 항목 모두 대규모 인수를 몇 번 하면서 급증한 항목들인데,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무형자산은 매년 조금씩 지워 없애게 돼있기에, 문제는 영업권입니다. 영업권은 다른 회사를 인수할 때 든 돈 중에서 인수한 회사 장부상의 금액을 초과하는 금액을 적어 넣는 항목으로, 무형자산과는 달리 매년 지워 없애지는 않습니다. 영업권을 줄이려면 '손상차손을 인식', 그러니까 그 인수한 사업으로 벌 수 있는 돈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보고 영업권의 금액을 낮춰야 하는데, 이 회사의 경우 지난 10년 이상 영업권의 숫자를 크게 줄이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무형자산은 매년 상각하고 순이익도 커져서, 장기적으로는 ROE도 증가하게 될 것이나, 엄청난 금액의 영업권을 생각하면 15% 이상의 ROE를 회복하는 데는 적어도 5년 이상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이 종목의 주가는 분명히 고평가 상태로 보입니다. 2009년 이후 주가가 이렇다 할 조정을 받지 않은 것이 그 이유로 보입니다.

 

 

2025년 2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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