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매도하는 많은 종목들의 보유기간이 5년을 넘지 않는 것을 두고 '10년은커녕 5년도 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장기투자를 운운해?'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글 들에서 일관적으로 강조하는 장기투자는 보유기간이 아니라 그 주식을 살 때의 마음가짐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주식을 샀는데 주가가 계속 떨어져서 2~3년쯤 후에는 반토막이 나더라도 계속 보유하거나 더 사서 모으겠다는 마음가짐 말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그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실 저는 특정기업의 성장이 20~30년 이상 이어질 것으로 보고 그 주식을 매우 오래 보유하려는 마음으로 사는, 진정한 의미의 장기투자자는 아닙니다. 제가 하는 투자는 나름대로 추정하는 주식의 내재가치와 비교해서 주가가 싸다고 생각하면 사고 비싸졌다고 생각하면 파는, 가치투자입니다. 다만, 그 주기가 경기순환주들의 경우 짧으면 3~4년에서 길어야 5~6년인 경우가 많고, 경기순환주는 업황에 따라 저평가나 고평가 되는 일이 흔하게 발생해서 매수와 매도의 기회가 빈번하게 주어지기에 제가 매도하는 종목들의 보유기간이 짧은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면, '경기방어주야 그렇다 치고, 어차피 5~6년 안에는 팔게 될 경기순환주들 까지 세상의 모든 고민을 짊어진 것처럼 10~20년 후까지 고민해 가면서 사야 하나? 그냥 업황이 나쁠 때 사서 좋을 때 팔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잘 되던지요?
아래의 대표적인 국내 경기순환주인 '삼성전자' 주가추이를 보며 설명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반도체 업황에 따라 몇 년마다 주가의 출렁임은 있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지난 20년 넘게 주가가 올라왔으니, 붉은 박스로 표시한 2022년 9월쯤은 전고점과 비교하면 주기의 저점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주가가 더 빠질지 어떨지를 확신하지 못했겠지만 주가가 반등하는 것을 1년 가까이 목격한 2023년 8월쯤에는 '아, 그때가 저점이었구나! 반등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지금쯤 사면 2012년이나 2017년처럼 두 배는 먹겠는걸..' 하는 생각으로 이 주식을 샀다면 십중팔구는 작년에 주식을 던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제가 10년에서 20년 후까지 고민해 가며 주식을 고르는 이유는 돈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러니까 저점 부근에서 주식을 내 던지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다음의 제 실패사례가 좋은 예가 될 듯합니다.
'하이록코리아'는 조선이나 석유/화학 플랜트에서 많이 사용하는 계측이나 제어 목적의 파이프 이음새와 밸브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제가 이 주식을 처음 사서 모두 팔아버린 기간은 아래의 붉은 박스로 표시했는데, 실제로는 24천 원쯤에 사서 11천 원쯤에 팔았으니, 반토막 넘는 손실을 경험한 종목입니다.
이 주식을 처음 샀던 2016년 5월쯤만 해도 이 종목은 지난 십 년 이상 두 자릿수의 이익률을 보여주고 있었던데 반해, 주가는 그에 비하면 싸게 보였던, 그야말로 가치투자의 숨겨진 보물처럼 보였던 종목이었습니다. 이후 실적이 나빠지고 이익률 역시 그에 맞춰 떨어졌지만, 제가 주가가 반토막 넘게 떨어진 2020년 4월에야 매도하게 된 이유는 주가가 많이 떨어져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큰 손실을 무릅쓰고 이 종목을 정리했던 이유는 이 종목은 필연적으로 석유나 천연가스의 미래와 그 성장의 궤를 함께 하게 될 것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음새나 밸브나 모두 파이프에 달리게 되는 것들인데, 그 파이프안에 뭐가 흘러다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전동화의 시대, 그러니까 내연기관이 모터나 배터리로 대체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거대한 흐름이 트럼프 같은 인물로 인해 몇 년간은 지체될수 있겠지만, 10년이나 20년 후에 지금 보다 많은 석유와 천연가스를 태워서 동력을 얻거나 발전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거대한 배나 비행기에서는 그 역할을 수소가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는 하지만, 수소에서도 이 회사가 석유나 천연가스만큼 강력한 경쟁력을 가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주가가 4년이나 떨어지고 있었는데도 제가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이 주식을 팔지않고 보유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국제해사기구의 황산화물 배출 규제로 한국 조선업 부흥의 시기가 올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었습니다. 주가차트를 다시 보면, 제가 주식을 팔고 나서 이 전망은 현실화된 것 같습니다. 또, 당장 몇년간 다시 오르고 있는 주가를 보면 매도 당시의 제 생각이 틀린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다시 2020년 4월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될 것 같습니다.
업황이 좋고 주가가 잘 나갈 때는 10~20년 후의 미래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하지만, 주가가 반토막 가까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면 10~20년 후의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삼성전자'의 예를 들자면, 'HBM에서는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범용메모리에서는 드디어 중국의 저가 경쟁자까지 등장했다'와 같은 최근의 소식들 말입니다.
주식을 사기 전에 이런 고민을 미리 해본다면 최소한 이런 걱정으로 손해를 보고 주식을 내던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2025년 1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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