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투자

10년을 보유할 주식 - Texas Instruments Incorporated (Nasdaq: TXN) (4)

 꾸준히 이익을 안정적으로 벌어들이는 회사는 급변하는 산업환경에서 탁월한 실력과 노력을 통해 지속적으로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기보다는 그 회사가 속해있는 산업 자체가 안정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회사의 이익이 안정적인 이유도 이 회사가 아날로그 반도체라는 안정적인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 산업이 안정적인 이유는 그 기술의 특성에서 비롯됩니다.

 

 프로세서나 메모리같은 디지털 반도체는 스위치가 떨어져 있으면 0, 붙어있으면 1이라는 이진법의 세상에서 돌아갑니다. 따라서, 스위치의 역할을 하는 트랜지스터가 많을수록 더 효율적인 연산이 가능하므로, 회로를 가늘게 만들어서 같은 면적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배치할수록 더 효율적인 논리소자가 됩니다. 또, 이런 논리회로를 설계할 때는 논리식이나 진리표가 사용되므로 설계를 자동화할 수 있고, 그 설계의 검증도 쉽습니다.

 

 설계의 검증이 쉽다는 말은 설계와 제조공정을 분리할 수 있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결함이 발견됐을때 그것이 설계상의 결함인지 제조공정의 그것인지가 명확하다면, 설계만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여러 회사로부터 설계를 받아 제조만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선택이 됩니다. 팹리스와 파운드리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산업 전체적으로는 효율적으로 보이는 업종의 분리가 개별기업들 에게는 큰 변화의 여지를 줍니다. 천문학적인 금액의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제조공정을 가질 자본적인 여유가 없는 벤처기업들도 기존의 설계방식과는 다른 창의적인 발상만 있다면 이 산업에서 존재감을 넓힐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지금 반도체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는 '퀄컴'이나 'ARM'같은 회사들은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서 시작한 벤처기업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진입장벽이 낮다는 말은 지금은 높은 점유율로 수위권의 위치를 점령하고 있는 회사들에게는 미래의 큰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 일본 회사들이 독점하던 메모리 업계를 삼성전자가 평정한 일이나, CPU 업종을 장악하던 인텔이 AMD에게 역전당한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첨단기술 업종에서는 혁신적인 신규진입자의 점유율 확장이나 기존 과점업자의 몰락이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변화가 빠르지 않은 분야와 같이 1위를 하던 회사가 1위 자리를 내어주고 2위로 수십 년 이상 사업을 계속하는 식이 아니라, 1위를 하던 회사가 급격히 점유율이 축소되어 수년 후에는 파산해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말입니다. 한때 AMD나 하이닉스, 마이크론도 파산할 뻔했던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세상에서 발생하는 빛이나 파동을 전기적 신호로 바꾸어 주거나 그 반대의 역할을 하는 아날로그 반도체는 회로의 소재가 가지는 특성을 이용해서 연속적인 신호인 파동의 크기와 모양, 주파수 등을 조작하는 회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회로의 설계에 설계자의 의도가 많이 반영되기에 설계를 자동화하기 어렵고, 검증도 쉽지 않습니다. 즉, 아날로그 반도체에서는 설계와 제조공정의 분리가 어렵다는 말인데, 이것이 수위권의 아날로그 반도체 회사들이 자체 제조공정을 가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또, 아날로그 반도체 업종에서는 어떤 회사가 더 큰 어디에 인수되었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파산했다거나 사업을 접는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안정성은 앞에서 얘기한 기술의 특성에 기인합니다. 또, 전동칫솔에서 자율주행시스템까지, 전기로 작동하는 모든 것들이 수요처가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업종은 성장성도 겸비한 업종이라는 말이 됩니다.

 

 아날로그 반도체 1위 회사인 이 회사 실적과 이익률의 추이에서도 이 안정성과 성장성이 읽힐 것 같습니다.

 

G/M: 매출총이익률 // O/M: 영업이익률

 

 긴 호흡에서 실적과 이익률이 우상향 하고는 있지만, 앞에서 침이 튀도록 설명한 안정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마치 2014년 이전에는 경기변동주, 이후에는 성장주의 실적추이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여러 번 제 글들을 통해서 종목을 분석할 때 과거 실적이나 이익률의 추이를 보는 이유는 그 종목이 우호적인 산업환경에서만 좋은 실적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따라서 최근의 호실적은 그냥 업황이 좋아서가 아닌지를 분별해 내기 위함이라고 얘기해 왔습니다. 이 종목의 경우는 아래에 있는 부문별 실적과 이익률의 추이를 보면, 그런 종목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왼쪽: 부문별 매출 / 오른쪽: 부문별 영업이익률

 

 회색으로 표시한 '내장 프로세서' 부문은 CPU나 GPU 같은 프로세서가 아니라, 아날로그 반도체가 보내주는 신호를 제어하는 마이크로 컨트롤러 같은 것 들을 만드는 부문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사업영역인 아날로그 반도체, 즉, 검은색과 회색으로 표시된 영역들만의 추이를 보면, 큰 부침 없이 꾸준히 실적이 증가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붉은색으로 표시한 무선부문의 등락이 2014년 이전에 보였던 실적등락의 주 요인이었다는 것 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이 회사 무선사업부가 하던 일은 핸드폰에 들어가는 AP(Application Processor)나 Baseband Processor 같은 디지털 반도체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2006년까지 핸드폰 AP 시장 1위였던 이 회사는 2007년 경에 퀄컴에게 1위 자리를 뺏긴 후에도 '브로드컴'이나 '미디아텍'같은 신규진입자들에게 계속 점유율을 빼앗기다가 2013년에는 결국 무선부문을 접기로 합니다.

 

 앞에서 얘기한 디지털반도체 업종의 위험성을 역설적이게도 아날로그 반도체를 하는 이 회사가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당시 이 회사가 무선사업에만 집중하고 있었다면 이 회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테니, 디지털 반도체 업종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이런 좋은 예를 알기는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한편, 구조조정을 완료한 2014년 이후 이 회사의 이익률은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에 있는데, 영업이익률은 '제조업체가 이래도 되나?' 싶은, 무려 50%에 육박하는 수치입니다. 저는 이것이 아날로그 반도체로의 선택과 집중이라는 이 회사 전략의 성공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아날로그 반도체에 집중함으로써 그 분야의 고객과 제품군을 점점 더 확대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판매수량과 점유율이 증가하니 원가는 점점 더 낮아질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CPU나 메모리 같은 디지털 반도체 업종에서는 점유율을 유지하거나 늘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천문학적인 금액의 첨단공정 투자가 필요함을 생각할 때, 아날로그 회로는 그 특성상 미세한 선폭이 필요하지 않아서, 그렇게까지 천문학적인 액수의 투자가 필요하지 않은 점도 이 회사 이익률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비결입니다. 

 

TXN의 영업활동 현금흐름과 유형자산 투자액

 

 이런 특성, 그러니까, 디지털 반도체 회사들처럼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계속하지 않고도 이익률을 높일 수 있음은 아래의 재무지표들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ROE: 순자산이익률 / BPS: 주당순자산 / FCS: 주당자유현금흐름

 

 이 종목이 매우 높은 순자산이익률을 보여주는 이유는 순이익이 늘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오른쪽 그래프 푸른 선으로 보이듯이 지속적으로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통해 순자산이 늘어나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순자산이익률은 순이익을 순자산으로 나누어 구하므로, 분자인 순이익이 늘어나도 커지지만, 분모인 순자산이 줄어도 커지게 됩니다.

 

 주당순자산이 2018년에는 상당히 줄어든 것을 볼 수 있는데, 전년도의 두 배 규모로 확대한 자사주 매입 덕분이었습니다. 이후, 2019년과 2020년에는 다시 이전과 비슷한 규모로 자사주 매입을 줄였지만, 일단 태워 없앤 자사주는 그만큼 순자산을 줄이게 됩니다. 2021년 한 해 자사주 매입을 줄이자 폭증한 순자산을 보면, 이 종목은 마치 돈 벌어 주는 기계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3년 4월에, 동해에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