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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시장이 달라졌을까?

 한 오 년 전쯤만 해도 주식투자는 40대 이상의 아저씨들 중에서도 거의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사무직 종사자들이나 하던 것이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여자들이나 젊은 친구들 중에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을 저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주식투자를 하는 대다수가 차트를 보며 단타를 노리기에,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을 필요가 있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또, 자산증식의 필요성을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40대 이상의 가장인 아저씨들이라는 점도 이유였을 것입니다.

 

 이랬던 시장참가자들의 부류가 다양해졌다고 느껴진 첫 번째 순간은 2018년쯤 불었던 비트코인 투기 광풍이었습니다. 당시는 그동안 주식을 하던 40대 이상의 사무직 아저씨들 보다 젊은 친구들이나, 40대 이상의 연령층 중 에서도 생산직이나 현장직같은,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지 않는 직군의 사람들이 오히려 더 비트코인 광풍에 휩싸였던 기억이 납니다. 오히려 그 동안 주식을 하던, 그러니까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는 아저씨들은 '저거 순 거품이야!'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또 한 번의 순간은 코로나 창궐로 주식시장이 급락한 후 매우 짧은 기간에 반등했던 2020년이었습니다. 이때는 남녀노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주린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고, 미국에서도 이때쯤부터 '밈주식' 열풍이 시작된 기억이 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기저에는 스마트폰의 성능 향상과 대중화, 그리고 SNS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2010년대 초중반에도 스마트폰은 있었지만, 당시에는 주식투자를 스마트폰으로 하기에는 불편함이 많았고, 지금처럼 SNS의 영향이 크지도 않았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은 먼 과거부터 있어왔지만, 스마트폰이라는 시간과 공간에 제약이 없는 수단이 주어졌고, SNS라는 잘 사는 것 같아 보이는 남들의 일상이 이런 현상에 불을 붙이고 부채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현상은 주식이나 비트코인뿐만 아니라 최근에 있었던 '실리콘밸리 은행'의 뱅크런 사태에서도 보입니다. 과거 같았으면 예금을 찾기 위해 은행 앞에 장사진을 쳤을 사람들이 돈을 서둘러 찾기위해 비행기 안에서도 스마트폰을 두들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이런 현상은 제가 관찰하고 있는 지난 25년간의 주가와 장단기금리의 추이에서도 보입니다.

 

(미국 주식시장 지수와 장단기 금리 추이)

 

(국내 주식시장 지수와 장단기 금리 추이)

 

 장단기금리 역전현상, 그러니까 위의 그림들에서 붉은 선의 단기금리가 푸른 선의 장기금리 보다 높아지는 현상은 역사적으로 주식시장의 폭락을 맞히는 신묘한 지표로 알려져 왔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주식시장의 폭락은 장단기금리 역전현상이 최소한 몇 달 정도 관찰된 후 1~2년 정도가 지나서야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주가가 먼저 폭락하고 장단기금리가 역전되는 것이 보입니다.

 

 금리가 형성되는 채권시장은 돈을 꿔줄 때 받는 이자가 정해지는 시장이므로 실제로 돈이 도는 실물경제의 영향도 받지만, 거시경제나 환율, 주가 등을 연구하는 기관이나 전문투자자들의 영역입니다. 따라서, 과거에는 이런 사람들이 움직이는 스마트 머니들이 주가폭락을 좀 이르게 예견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보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오늘날에는 이런 방식이 잘 작동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시장예측은 결국 대중들의 심리를 예측하는 것인데, 그 대중들이 자신들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먼저 움직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주식시장이 과거와는 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스마트 개미들이 대거 시장에 진입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가졌다고 과연 사람들이 스마트해졌을까요?

 

 생각해 보면 주식시장이 고점이었던 1~2년 전의 상황은 책에서만 보던, 아이를 업은 엄마나 중이 목탁을 두들기며 객장에 나타나는 상황이었습니다. 다만 그 엄마나 중이 실제로 객장에 나온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두들기고 있던 것뿐이었습니다.

 

 HTS나 MTS를 쓰지 않아 증권사에 전화를 걸어 주식을 사고파는 저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증권사 객장을 찾아갈 일이 생깁니다. 요즘 증권사 객장에는 사람이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보통 나와 직원들을 제외하면 한두 명 정도가 보이는데, 대개 그 사람들은 나이가 지긋한, 부유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사는 곳에는 증권사 지점이 없어서 가장 가까운 강릉 시내의 객장을 찾는데, 이런 현상은 이곳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비슷하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1~2년 전쯤 객장을 찾았던 어느 날은 그날따라 유독 객장에 손님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제 기억에는 'LG에너지솔루션'의 공모주 청약기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와 함께 온 어느 젊은 아빠가 무슨 일 때문인지 여직원에게 한참 동안 고함을 쳤던 일과 의사소통이 불편할 정도로 연로한 할아버지가 제 옆에서 당시 증권방송에서 떠드는 종목을 사고 있길래, '저 할아버지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날 저는 제 눈앞에서 시장의 고점을 말해주는 광경을 보고 있었던 셈입니다.

 

 또, 최근에는 아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의 사위가 테슬라 주식에 손을 댔다가 말아먹고 돈을 빌리러 당신의 집에 찾아왔었다며, 주식으로 먹고사는 우리 집을 걱정스러운 눈 빛으로 바라본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스마트폰을 가졌다고 사람들이 똑똑해진 것은 아니라는 증거는 최근의 SG발 주가폭락으로 나타난 시세조작 사건에서도 보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넓고, 사기꾼도 많습니다. 주가가 폭등할 종목을 알고 있다면 뭐 하러 나에게 알려 주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주식시장에 참여하면서 생긴 변화는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아져서 그 정보를 바탕으로 치밀한 분석과 진중한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사람들의 반응속도가 빨라진 것뿐입니다.

 

 빠르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판에 많이 뛰어들었다는 말은 앞으로 장이 아래위로 크게 출렁거리는 일이 이전보다 자주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말이 됩니다. 진중한 투자자라면 여기서 이전보다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23년 4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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