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늙어서인지 새벽 4~5시쯤에는 항상 잠을 한 번씩 깨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증권방송을 틀어놓고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눈을 감고 듣고 있다 보면 다시 잠이 들곤 합니다.
제가 새벽에 잠이 깰 때마다 증권방송을 듣는 이유는 거기서 정보를 얻기위해서 라거나 미국시장이 궁금해서, 혹은 주식투자에 열정이 넘쳐서가 아닙니다. 그냥 그걸 듣고 있다 보면 잠이 다시 오기 때문이어서 입니다. 다른 TV 프로그램을 틀어본 적도 꽤 많은데, 잠이 오기는 커녕 집중해서 보게됩니다. 심지어 동물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도 새벽에 보면 재미있어 집중하게 됩니다. 제가 새벽에 반드시 증권방송을 틀어 놓아야 잠이 다시 오는 이유는 아마도 어느 TV 토크쇼에서 본 서장훈이 'TV로 남들 농구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잠이 잘 온다'라고 말한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어김없이 잠이 깼는데, 오늘은 유럽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있는 날이어서 다시 잠을 자지 않고 경기가 시작할 때까지 잠깐 증권 방송을 보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축구를 어지간히도 좋아하는 모양이군'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월드컵과 유럽 챔피언스리그 외에는 거의 축구를 보지 않습니다. 심지어 손흥민이 나오는 경기도 잘 보지 않는데, 월드컵과 챔피언스리그를 챙겨보는 이유는 세계적인 구단과 선수들이 나오는 것 외에도 토너먼트 방식이 주는 몰입감과 압박감을 즐기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경기를 기다리는 10~20분간 본 증권 방송에서 나이가 50~60은 되어 보이는 전문가라는 사람이 떠든 내용 중 기억에 남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요즘같이 시장의 변동성이 클 때는 Buy and Hold, 그러니까 장기투자는 답이 아니다.
- 이럴 때는 현금비중을 높여야 한다.
- 현금비중 안에서 단기매매를 해야 한다.
- 자신은 그 단기매매를 통해 매일 5% 정도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매일 5%의 수익이라면, 일주일이면 대략 27.6%(1.05^5일=1.2763)이고, 한 달이면 165%(1.276^4주=2.651), 그리고 1년이면 원금을 119,936배(2.65^12달=119,936)로 불릴 수있는 엄청난 수익률입니다. 그러니까, 원금 1억을 투자해 주식시장이 열리는 날마다 5%씩 불릴수 있다면 1년 후에는 10조에 가까운 엄청난 자산이 된다는 말입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엑셀이나 윈도 공학용 계산기로 이 복리수익의 계산을 직접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나이가 50~60은 되어 보이는 이 전문가라는 사람은 그 나이에 1억 원의 돈이 없어서 자신의 비기를 방송에서 팔고 있는 것일까요? 1억까지 돈이 없더라도 1천만 원 만 투자해도 매일 5%씩 불려서 1년 후면 1조가 넘을 텐데 말입니다.
사기입니다. 사실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던 작아지던 기업을 믿고 주식을 보유하는 것이 장기투자인데, 변동성이 커졌다고 장기투자를 버리라는 그 전문가라는 사람은 진정한 장기투자는 생각해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그 사람이 언급한 장기투자는 투기적인 매매를 목적으로 몇 달이나 길어야 1~2년 정도 보유하는 것을 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이까지 그렇게 오래 주식을 했음에도 단기매매라는 투기만 일삼다가 돈을 벌지 못했기에, 주린이들이 혹할만한 그럴듯한 이야기를 팔아 생활하는 방송 전문가=사기꾼이 되었을 뿐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피식 웃다가 다시 잠이 들었을 얘기였겠지만, 축구경기를 기다리느라 깨어있었던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요즘 주식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서였는지 '현금비중 내의 단기매매'라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습니다.
사실, 현금비중 내의 단기투기는 저도 여러 번 생각해본 주제였습니다. 최근의 상황에서는 '유가는 당분간 오를 것이 확실해 보이니 원유선물 ETF 같은 것을 현금 대신 보유해 보면 어떨까?'같은 식입니다. 제가 현금대신 보유하고 있는 미국국채의 가격이 최소한 앞으로 1~2년 정도는 신통치 않을 것이 확실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분간은 미국국채보다는 원유선물이 확실히 낳은 대안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원유나 구리, 금 같은 상품 가격의 방향을 맞히는 일은 주가의 방향을 맞히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상품의 가격은 오로지 수요와 공급, 그리고 사람들의 심리에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주가도 단기적으로는 마찬가지이나, 장기적으로는 결국 그 기업이 버는 이익에 주가는 수렴하게 되어 있습니다.
뉴스나 신문기사를 보면 금리는 당분간 오를 것이 확실해 보이니 내가 가진 미국국채의 가격은 떨어질 것이 확실하고, 또, 최소한 당분간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것도 확실해 보이니 원유선물의 가격은 오를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 내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 부근에서 철수하고 있다던가, 이란 핵협상이 타결되어 이란산 원유의 수출길이 열렸다는 뉴스가 나오면 어떻게 될까요?
또 한 가지 문제는 이런 상품 가격의 향방은 긴 호흡에서 주가와 궤를 같이 한다는 점입니다. 아래에 보이는 원유와 구리, 금의 25년간 가격을 코스피 지수와 비교한 차트를 보면, 이런 상품들의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믿는다면 주가의 상승 역시 믿지 못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반면, 주가가 하락할 때 상품 가격은 훨씬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주식시장이 지지부진할 것으로 생각해서 주식을 팔고 상품을 사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라는 말입니다.
일정한 비중의 현금을 주식투자 포트폴리오에 포함시키는 이유는 큰 하락장이 도래해 자신이 고른 좋은 종목들의 주가도 아무 이유 없이 폭락했을 때, 그 현금으로 주식을 더 사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현금으로 주식시장이 답답하다고 주가보다 훨씬 큰 변동성을 보여주는 자산을 사다가는 시장에 오래 머무르기가 힘들 것입니다.
2022년 2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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