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말쯤 올림픽이 한창일 때 날씨는 무덥고 해서 거의 매일 하는 주식분석을 멈추고 한 주 정도 휴가를 가졌더니 휴가기간 중에 급락장이 발생했습니다. 제가 휴가를 가졌다고 해서 세상과는 단절된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돌아와서야 급락장이 발생한 걸 알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 정도 뉴스는 인터넷을 켜기만 해도 눈에 띄고, 제가 항상 잠결에 틀어 놓는 증권방송이 아니더라도 하루 낙폭으로 그 정도면 공중파 뉴스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기 때문입니다.
하루 동안의 낙폭으로는 역대급과 비슷한 수준의 급락장이 생긴 원인을 두고 말들이 많지만, 저는 '엔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 쪽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빚내서 주식하는거 아니라고 했는데, 누가 간도 크게 일본이나 한국시장이 하루 만에 10% 가까이 빠질 만큼 많은 돈을 빌렸을까?' 싶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동안 기준금리가 거의 0%였던 일본에서는 매우 싼 이자에 돈을 빌릴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1~2%의 이자로 돈을 빌려서 3~4% 정도 이자를 주는 미국 국채 같은 안전자산을 산다고 가정하면, 연 2% 정도의 수익이 발생합니다. 몇 달 안에 수십 퍼센트 이상의 차익을 원하는 투기꾼들 눈에는 연 2%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안전자산을 사는, 일종의 무위험 차익거래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위험이 없다면 돈을 더 많이 빌려서 미국 국채 같은 것을 살수록 유리하다는 말입니다. 1천억을 빌렸다면 20억 정도의 수익이 생기는데, 거기에 들어간 자기 돈은 이자나 수수료 정도이므로, 실제 수익률은 수백 퍼센트를 넘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같은 개미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숫자들입니다. 수천억에서 수조 원 이상을 일본에서 빌릴 수 있는 글로벌 금융사들에게 해당하는 얘긴데, 대담하게도 이들은 미국국채 같은 안전자산에만 투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주식 같은 위험자산에도 투기를 합니다. 전체 투자금액 중 작은 비중만 투자하고, 선물이나 옵션 같은 것으로 손실을 방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무위험 차익거래 처럼 보이는 이런 거래에는 몇 가지 가정이 필요합니다. 일본에서 돈을 빌리는 이자는 계속 낮게 유지되는 반면, 미국 국채의 금리는 계속 높게 유지된다는 등의 가정 말입니다. 아직 까지는 일본 금리에 큰 변동은 없었으므로, 이런 투기자금의 큰 비중을 차지할 안전자산 투자에는 큰 위험은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극히 일부분이었을 주식시장에 역대급 규모의 급락이 나타난 것이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빚으로 주식을 살 때, 대부분의 글로벌 금융사들은 선물이나 옵션 같은 것으로 주가가 어느 정도 떨어져도 손실이 나지 않도록 설계를 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주가지수를 10% 떨어트리기 위해 꼭 시장의 총액에 해당하는 주식을 10% 낮은 가격으로 팔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누군가 앞으로 일본 금리는 오르고 미국 금리는 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면, 우선 위험자산인 주식부터 정리해야 합니다. 주가는 항상 현재가 아닌 가까운 미래를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가 전체 시장의 0.1%에도 미치지 못하는 주식을 팔기 시작해도 비슷한 전략을 취하고 있는 다른 이들도 매도에 동참하기 시작하면서 시장의 변동성은 커지게 됩니다. 상황이 이 쯤되면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천문학적인 규모가 돼버린 알고리즘 매매도 동참하게 됩니다. 알고리즘 매매는 시장 변동성이 어느 정도 이상 커지면 대개 기계적으로 매도하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또, 거기에 주가차트나 테마를 보며 투기를 하던 단타꾼들도 동참하게 됩니다. 자신이 가정한 손절의 신호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은 잠재된 시한폭탄의 뇌관처럼 보입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며칠 전에 있었던 주가급락은 전체 엔 캐리 자금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일본이나 미국의 금리 향방에 따라 더 큰 규모의 엔캐리 자금 청산이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제가 일본 엔화를 매수하리라고 결심했던 동기는 이런 시장예측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 시장예측에 따라 투자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제 생각이 틀릴 수 도 있고, 시장에는 어떤 일도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본 엔화를 산 배경은 아래에 보이는 지난 18년 정도의 환율 추이를 보며 설명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우선 검은선의 일본 엔과 푸른 선의 미국 달러 환율의 차이가 역대급으로 크게 벌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앞으로 벌어질 두 환율의 추이는 다음의 세 가지 경우 중 하나에 해당될 것입니다.
1. 달러 환율은 떨어지고, 엔 환율은 올라서 중간쯤에서 두 환율이 만나는 경우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경우인데, 이 경우 달러 보다 엔을 가지고 있을 때 수익률이 높을 것입니다.
2. 두 환율이 지금 정도 수준에서 횡보할 경우
1~2년 정도면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횡보를 멈추고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일 것입니다. 1번과 같이 움직일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 설사 장기간 횡보하더라도 손해는 없습니다.
3. 달러 환율은 치솟고, 엔 환율은 급락하는 경우
최악의 가정으로, 이 경우는 손실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의 달러 환율과 낮은 수준의 엔 환율을 생각할 때, 이 가능성은 커 보이지가 않습니다. 달러 환율이 지금 수준 이상으로 치솟은 경우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2009년 같은 경우인데, 이럴 때는 엔 캐리 트레이드의 대규모 청산이 발생하면서 엔화 환율 역시 치솟게 됩니다. 엔 캐리 드레이드라는 말이 엔화를 빌려서 달러로 환전한 후 엔화 대출이자 보다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가령 달러표시 채권이나 주식 등을 사는 것이므로, 이런 거래를 청산하려면 달러표시 채권이나 주식을 팔아서 빌린 엔화를 갚기 위해 엔화를 사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요가 몰리면 가격은 오르는 것은 통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경우 역시 최소한 손해를 보지는 않습니다.
유일한 걱정은 일본에 대규모 지진 같은 것이 발생해서 일본 경제가 무너지지 않을까였는데, 고베 대지진이나 동일본 대지진 같은 사례를 알아보니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환율이 올랐습니다. 복구를 위해 해외에 있는 일본의 외화자금이 본국으로 환류되면 엔화를 매수해야 한다는 가정 때문이었습니다.
안전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던 미국국채 ETF의 절반 정도를 팔아서 일본 엔화를 샀습니다. 미국국채 전부를 팔아서 엔화를 사지 않은 이유는 시장에는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고, 그럴 경우 궁극적으로 믿을 수 있는 안전자산은 역시 미국 달러나 국채 정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24년 8월에, 동해에서..
'투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켜볼 주식 - 미원상사 (코스피: 002840) (4) (11) | 2024.09.02 |
---|---|
지켜볼 주식 - 미원에스씨 (코스피: 268280) (3) (2) | 2024.08.26 |
매수[買受] - 해성디에스 (코스피: 195870) (7) | 2024.08.13 |
매수[買受] - 프로텍 (코스닥: 053610) (4) | 2024.07.23 |
지켜볼 주식 - 한솔케미칼 (코스피: 014680) (4) (0) | 2024.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