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면서 가장 가기 싫은 곳은 어디일까요? 교도소? 군대? 치과? 교도소는 법을 잘 지키며 산다면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만한 일이나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산다면 영화 속에나 나올법한 일입니다. 군대는 대한민국 국적의 사지가 멀쩡한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곳이지만, 그 복무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번만 갔다 오면 전쟁이라도 나지 않는 한 다시 들어갈 일은 없습니다.
반면, 치과는 아무리 평소에 양치질을 열심히해도 치과를 가는 빈도를 줄여주는 정도이지, 살면서 여러 번 가게 됩니다. 그것도 모자라, 그 끔찍한 일을 치르고도 꽤 큰돈까지 주며 나옵니다.
죽을만큼 가기 싫은 곳이지만 누구나 일생에 최소한 몇 번은 가야만 하고, 갈 때마다 큰돈을 써야만 하는 곳. 뭔가 훌륭한 투자의 대상이 될 것 같습니다.
'바텍'은 우리가 치과에 가면 처음 하게되는 영상진단, 그러니까 '파노라마 사진'이라고 하는 엑스선 촬영이나, 임플란트나 교정을 할 때 필요한 CT 촬영 등에 필요한 장비를 만들어서 돈을 법니다. 이 치과용 영상진단 장비 시장은 세계적으로 많지 않은 수의 회사들이 과점하고 있는데, 이 회사는 디지털 강국 출신답게 디지털이나 3D 영상진단 분야에서 수위권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미 얘기했듯이 치과라는 곳이 가기 싫어도 어쩔수없이 가야만 하는 곳이고, 일단 거기에 발을 들이는 순간 엑스선 사진을 찍으며 모든 고통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이 종목이 가진 이익의 안정성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또, 치주질환 치료나 임플란트 시술 같은 것 들을 많이 하는 연령층이 50대 이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선진국의 인구 고령화와 신흥국의 중산층 증가 같은 초장기적인 거대한 물결에서 수혜를 입게 될, 사업의 성장성도 매우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종목의 매수를 결심하는데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안정성이나 성장성, 주가의 저평가 여부 모두 의심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대체재의 위협' 이었습니다. 이 회사가 '엑스레이'라는 한 가지 기술에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체재'라면 쌀대신 밀이나 보리, 석유대신 가스 같은 것이라고 어렸을때 배웠지만, 오늘날의 산업에서는 대체기술, 그러니까 신기술의 등장이 더 큰 파괴력을 가집니다. 치아를 투시해서 볼 수 있는 기술이 엑스선 밖에 없을까요? '테라헤르츠파'라는 신기술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방사선 노출의 위험이 없는 테라헤르츠파를 이용한 장비가 치과에 보급되기 시작한다면, 장비 가격이 2~3배 이상 비싸지 않은 이상 매우 빠르게 엑스선 장비를 대체할것 같습니다. 치과 엑스선 장비를 통한 방사선 피폭량이 극미량이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은 '방사능'이나 '피폭'같은 단어 자체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신기술의 부상에 대해 애기할때 제가 자주 하는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일론과 같이 소비재에 쓰이는 신기술은 경제성의 획득이 쉬워서 기존의 실크 같은 천연섬유를 빠르게 대체한 반면, 엔지니어링 플라스틱과 같은 산업재에 쓰이는 신기술은 철강과 같은 기존산업이 가진 인프라와 그 지식을 버려야 한다는 등의 문제로 경제성의 획득이 쉽지 않아서 확산이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은 오늘날에도 철강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어떤 공식처럼 산업재는 신기술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고 소비재는 위험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기업이 가진 기술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선, 엑스선이나 여러 각도에서 엑스선 촬영을 하는 CT 같은 영상진단 장비는 치과나 병원에서만 쓰이므로 산업재의 성격을 가집니다. 일반 소비자들이 그런 투시장비를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또, 엑스선이나 테라헤르츠파, 적외선이나 자외선 등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파장의 영역들입니다. 따라서, 지난 수백 년 동안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전혀 새로운 파장이 발견되고, 그걸 이용한 영상진단 장비가 나올 것까지 걱정이 되지는 않으므로, 역시 앞으로 수십 년 이상 이 회사에 위협이 될 신기술은 테라헤르츠파 정도 외에는 생각하기가 힘듭니다.
테라헤르츠파에 대해 알아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적외선과 밀리미터파(고주파)의 중간영역에 해당하는 파장으로, 전파와 광파 사이에 해당해 독특한 분광특성을 가짐
- 수분을 통과하지 못해 대기중 존재하는 수분에 흡수, 쉽게 검출되지 않아 오랫동안 미개척의 주파수 영역이었음
- 발생출력이나 영상획득 속도, 극저온 요구, 고가의 주변장치 등 기술적 한계가 존재하였으나,
- 2007년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에서 고온 초전도결정을 성장시키는 방법으로 배터리로 작동하는 소형 방출기를 개발, 연구에 돌파구를 마련
- 인체에 해가 없고, 엑스선 보다 투과성 높아 '꿈의 전자파'로 불리며, 성분분석도 가능
- 수분에 흡수되는 특성으로 인해 피부조직에 2mm 정도 이상 침투는 불가능 -> 특정 경계면에서 반사한 영상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의료분야 활용을 연구 중
- 의료계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고가의 기술로 모험하기보다 검증된 현재의 저비용 기술을 발전시키는 게 유리 -> 높은 가격으로 시장형성은 아직까지 미진
- 치아는 수분이 없는 조직으로 충치에 의한 내부공동이나 에나멜층의 손상 등 진단에 활용도 높을것으로 기대
아래는 충치가 생긴 치아를 엑스선과 테라헤르츠파로 찍은 영상을 비교한 것 입니다.
이 비교사진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이 종목의 분석을 접고, 관심에서 지워 버리려고 했습니다. 조만간 치과 분야에서는 테라헤르츠파를 이용한 장비들이 엑스선을 밀어낼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직까지는 그런 장비를 치과에서 볼 수 없고, 만든다고 하더라도 굉장히 비쌀 테니, 그런 장비가 치과에 보급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때 주식을 팔면 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때쯤이면 주가는 이미 반토막이 난 이후 일 것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을 하다 보니 우리가 치과에서 찍는 사진은 위의 연구실에서 찍은 사진과는 다른 모습이라는 기억이 났습니다. 우리가 치과에 가서 찍는 사진은 대개 다음과 같은 모습입니다.
잇몸 깊숙이 박혀있는 치아뿌리까지 봐야 하고, 임플란트나 교정을 위해서는 턱뼈까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수분이 가득한 피부조직을 투과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극복되지 않는다면, 사실상 치과에서 엑스선을 밀어내기는 힘들다는 말입니다. 이론상 테라헤르츠파는 출력을 아무리 높여도 수분을 수 밀리미터 이상 투과하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니 새로운 세상이 열린 기분입니다.
'주식을 살 때 이런 것까지 생각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만약 이런 것들도 생각하지 않고 주식을 샀다면 저는 지금쯤 택배일 같은 것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지에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은 떨쳐낸 듯하니, 숫자를 통해 이 종목의 안정성과 성장성을 검증해 봐야겠습니다. 아래는 지난 15년간 실적과 이익률의 추이입니다.
2011년의 영업이익이 푹 꺼져있는 것은 당시 엑스선 감지센서를 만들던 부서가 '레이언스'라는 이름으로 분사해 나가면서 생긴 왜곡이므로 무시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볼 때, 매출액과 매출총이익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반해, 영업이익률은 2015년 이후 2020년까지, 무려 5년이나 하락한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사업보고서에 나오는 '비용의 성격별 분류'를 보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이유는 아래의 숫자를 보며 설명하는 편이 좋을듯합니다.
우선, 매출총이익률은 약간의 등락은 있으나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업이익률은 레이언스 분할의 영향이 있었던 2011년과 코로나 팬데믹 영향이 있었던 2020년을 제외하면, 2009~2013년에는 6~10% 사이에서 움직이던 것이 2014~2019년에는 15~18% 사이, 2021~2023년에는 16~20%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높아지는 매출총이익률에 맞춰 영업이익률도 시차는 있지만 계단식으로 높아지고 있는것처럼 보입니다. 또, 2015년 이후 영업이익률이 정체된 것 처럼 보였던 이유도 2014~2015년의 영업이익률이 급격히 높아진데 따른 착시였을 뿐입니다.
한편, 아래에 초록선으로 보이는 순자산이익률의 추이를 보면 2017년과 2020년에는 영업이익률에 비해 순자산이익률이 과도하게 변동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순자산이익률은 순이익을 순자산으로 나누어 구하는데, 순이익은 매출액에서 원가와 판매비, 관리비 같은 일상적인 영업활동에 들어가는 비용들을 빼서 구하는 영업이익과는 달리 일회성의 비용이나 이익이 개입됩니다. 2017년 역시 아래와 같이 588억이나 되는 '중단영업이익'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엄청난 액수의 중단영업이익이 발생한 이유는 종속회사였던 '레이언스'의 지분 일부를 지주회사인 '바텍이우홀딩스'에 팔면서 종속기업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종속회사'는 같은 회사로 보고, 매출과 비용 등을 모두 합쳐 연결된 하나의 재무제표를 만드는데, 이를 '연결재무제표'라고 합니다. 반면, '관계회사'는 단순한 투자로 보고 관계회사의 순이익 중에서 지분율에 해당하는 금액만큼만 순이익에 반영합니다. 2017년에는 '레이언스'의 주인이 이 회사에서 '바텍이우홀딩스'로 바뀌었으므로, 이 회사 입장에서는 중단한 사업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즉, '레이언스'를 넘기며 받은 돈을 적어 넣은 항목이라는 말입니다.
2020년의 마이너스 ROE에도 '레이언스'는 또 등장합니다. 그 해 순이익이 적자가 난 비결은 아래와 같이 '기타 손실'이 646억이나 발생했기 때문이었는데, 그중 429억이 '관계기업 투자주식 손상차손', 그러니까 이 회사가 가진 레이언스 지분가치를 재평가해서 429억이나 장부에서 지워 없앴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429억은 실제로 이 회사가 쓴 돈도 아니었고, 팬데믹 이후 레이언스는 이 전보다 많은 돈을 벌고 있음을 생각하면, 2017년과 마찬가지로 2020년의 ROE도 왜곡된 수치로 보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 주식의 내재가치를 계산할 때 성장률로 사용하는 평균 ROE에서 두 해의 수치는 제외했습니다.
2024년 6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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