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구로부터 문자를 한통 받았는데, 자기 마누라가 에코프로 주식을 꽤 많이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궁금해서 몇 주나 가지고 있는지 물었더니, 경제권을 마누라가 가지고 있는 친구는 자세히는 모르는지 '겁나게 많다'라고만 하며, '주식배당을 받은 것도 10주 정도 된다'라고만 했습니다.
'에코프로'가 요즘 시장의 화두인 것은 저도 알고 있었으므로, 10주의 주식배당이면 몇 주 정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인지 궁금해서 알아보니, 올해 초에 에코프로는 1주당 0.03주의 주식배당을 했고, 그렇게 역 추정해 보면 적어도 333주 였습니다. 주식배당을 받았다면 늦어도 작년 12월쯤에는 주식을 샀을 것이니, 어제 시가와 작년 12월 종가를 비교해 보면 적어도 4억 원의 시세차익이 발생합니다.
솔직히 부러웠습니다. 그때문인지 어제 하루종일 아랫배가 좀 아프더군요. 누구는 일 년에 기껏해야 30%가 조금 넘는 수익을 얻으며 거의 매일 열심히 종목분석을 하고 있는데, 증권사 직원의 추천종목을 큰 고민 없이 사는 그 친구 마누라는 몇 달 만에 10배가 넘는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저라면 그 주식이 10배까지 오르도록 가지고 있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애초에 그 주식을 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제 투자관과는 거리가 먼 종목이기 때문입니다.
에코프로 주가가 최근 몇달간 거침없이 오르고 있는 이유는 이 주식이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공매도를 친 기관투자자들이 개미들의 투기적인 매수에 굴복했기 때문입니다. 공매도는 어느 주식의 주가가 곧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될 때, 그 주식을 남에게서 빌려서 판 후 주가가 실제로 떨어졌을 때 되사서 갚는, 하방투기의 한 방법입니다. 가령, 오늘 100만 원인 주식을 빌려 팔았는데, 세 달 후 그 주식이 반토막인 50만 원으로 떨어졌을 때 되사서 갚고, 그동안 주식을 빌린 이자로 2만 원을 줬다면 수익률은 무려 +2,400%가 됩니다.
반대로 주가가 오르면 큰 손해를 보게됩니다. 만약 오늘 100만 원인 주식을 빌려서 팔았는데, 세 달 후 두 배인 200만 원으로 올라서 더 이상 손실을 감당할 수 없다고 보고 되갚는다면, 이자비용을 투자원금으로 생각했을 때 수익률은 -5,100%가 됩니다. 자신이 예상했던 기간 안에 주가가 떨어지지 않고 계속 오르면 이자비용은 둘째치고 천문학적인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심리적 압박이 작용해, 더 큰 손실을 피하기 위해 그 주식을 오른 가격에도 되사서 갚는데, 이때 자신의 매수주문으로 호가는 더 오르게 됩니다. 여러 기관들이 동시에 이렇게 한다면 주가는 에코프로의 경우와 같이 폭등하게 됩니다.
미국시장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사태를 보고 재작년 미국시장의 밈주식 열풍이 떠올랐을 것 입니다. 공매도 세력들이 개미들의 매수에 굴복해 주가가 한동안 폭등했던 것이 판박이처럼 닮아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종목들의 말로가 결국 상승분 대부분을 반납하는 폭락이었다는 사실도 기억날 것입니다.
저 역시 어느 종목의 주가가 그 종목의 내재가치를 뛰어넘어 계속 상승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조만간 폭락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시장에서 개인의 공매도는 사실상 막혀있다고 하니, '코스닥 인버스 ETF라도 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코스닥 시장에서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금 대략 20%, 다른 2차 전지 테마주들 까지 합치면 30%에 육박하니 말입니다. 실제로 최근 이런 생각으로 인버스 ETF를 사는 개미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30%에 해당하는 2차 전지 테마주들의 주가가 반토막으로 폭락한다고 가정해도 코스닥 지수에 미치는 영향은 15% 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 이 투기광풍이 다른 테마주에 옮겨 붙어서 실제로 2차전지 테마주들의 주가가 폭락하더라도 지수는 떨어지지 않거나 오를 수도 있습니다.
공매도는 아무리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주가가 언제 떨어지기 시작할지를 맞춰야 하고, 천문학적인 손실을 볼 수도 있다는 엄청난 심리적 압박도 견뎌야 하는 위험이 큰 투기일 뿐입니다. 그런데, 공매도 세력들이 굴복했던 테마주들 역시 매우 낙관적인 예측으로 전망한 10년이나 20년 후의 실적을 끌어와도 설명이 안 되는 주가이니, 투기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로 둘 다 블러핑, 그러니까 뻥카입니다.
지금 벌어지는 이 상황이 마치 큰 판돈이 걸린 포커판에서 모두 죽고 둘만 남았는데, 알고 보니 둘 다 뻥카를 치고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이 판에 소소한 두 자릿수 수익률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기면 대박, 지면 모든 것을 잃는, 인생을 건 한판처럼 보입니다.
저는 도박에는 자신이 없으니, 뒤로 물러나서 팔짱을 끼고 재미있게 관전이나 하렵니다.
2023년 7월에, 동해에서..
※ 후기
기관투자자들은 에코프로를 공매도하고 있으므로, 증권사 직원의 추천으로 그 주식을 산 제 친구 마누라가 아직도 에코프로를 보유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마누라가 아는 선배에게 맞긴 5천만 원 중 일부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그간 두 배 정도로 맞긴 돈을 불렸기에 계속 믿고 맡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 마누라와 그 선배와의 신뢰에 의한 관계이기에 더 이상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주식배당을 10주나 받았다면 최소한 맞긴 5천만 원 중 3천만 원 정도는 에코프로를 샀다는 얘기인데.. 에코프로가 10배 오를 때까지 고작 2배 라니요?
제가 부러워할 만한 투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 2023년 8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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