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런',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은행으로 달려가서 자신이 맡긴 예금을 돌려달라고 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은행은 평소에는 돈다발이 쌓여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예금자들이 한꺼번에 내 예금을 돌려달라고 하면 그만큼의 액수에는 택도 없는 돈다발만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대출해 준 돈을 모두 회수할 수 있다면 모든 예금을 충분히 돌려줄 수 있겠지만, 대출해 주는 기간은 계약으로 묶여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언뜻 은행은 예금이라는 빌린 돈을 더 높은 이자에 빌려주는, 돈 놓고 돈 먹기를 하는 안정적인 사업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뱅크런은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가늠하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은행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정부의 구제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구제에는 어떤 일관된 규칙이 없습니다. '대마불사', 그러니까 규모가 크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클 테니 정부가 구제해 줄 것 같지만 2008년에 파산했던 '리먼 브라더스'는 당시 미국 2위의 투자은행이었음을 상기하기 바랍니다. 또, 정부가 정한 가이드라인을 잘 지키던 은행이라도 그 은행이 가진 모든 자산의 위험성을 세세히 파악하기는 힘들고, 무조건 구제대상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번에 파산한 'SVB'를 예로 들면, 예금에서 대출을 제외한 금액 중 상당한 금액을 미국국채라는 안전자산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 파산의 원인이었습니다. 미국국채라는 세계 최고의 안전자산 때문에 은행이 파산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이유는 미국 연준이 최근 일 년 동안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의 가격은 떨어지기 때문에 최근에 'SVB'가 팔았던 미국국채에서 손실을 보았고, 이 전체자산에 비하면 미미했던 손실 때문에 먼저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일부 예금자들이 '혹시 모르니 내 예금을 찾아두는 것이 낫겠다'라고 생각해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며 뱅크런이 발생한 것입니다.
금리가 고작 몇 퍼센트 오르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이번 SVB 사태가 잘 설명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이 사태는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에서 비롯된 뱅크런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실 2008~2009년의 '리먼 브라더스' 파산에서 비롯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제가 주식시장에 입문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당시 아침마다 경제신문을 읽고 있던 저에게 그 사건은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고, 2009년 3월쯤에는 지금 주식을 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주가가 크게 반등하는 것을 보고 저는 주식시장에 뛰어들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됩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월요일 주식시장 개장에 맞춰 '여러분의 예금은 정부가 보장할 테니 안심하시라'는 성명을 발효한 것을 보면, '과연 미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뱅크런은 사람들의 심리를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는 가늠하기가 힘듭니다. 사람들의 심리는 예측불가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은 불안하신지요?
주식시장이라는 욕조에 온몸을 푹 담그고 있는, 그러니까, 자산의 거의 전부를 투자에 할당하고 있음에도 저는 재미있습니다. 만약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이 펼쳐져서 주식시장이 반토막 난다면 평소에 가지고 싶었던 주식을 살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 항상 내일이라도 시장이 반토막 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안전자산을 일정한 비율만큼 항상 보유하고 있으니, 그 주식을 살 돈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2023년 3월에, 동해에서..
※ 2023년 4월 27일에,
지난달 중순에 이 글을 쓴 후, 국내 개미들이 급락한 미국 은행주를 사들이고 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 미국정부가 개입해 뱅크런이 다른 은행들로 퍼지는 것을 막아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면, 급락한 주가는 일생일대의 기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오늘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美 정부 퍼스트리퍼블릭 사태 개입하지 않을 것 | 한국경제 (hankyung.com)
'실리콘밸리은행'의 뱅크런이 발생하기 전 이 주식은 120달러 이상에 거래되다가 제가 글을 썼던 시점에선 34달러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으니, 뱅크런 우려가 해소되고 이전 수준으로 주가가 회복된다면 4배 가까운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본 후 오늘 주가를 확인해 보니 5.69달러.. 그야말로 바닥인 줄 알았는데, 지하 5층까지 내려간 격입니다.
본문에서 얘기한 정부의 은행구제에는 어떤 일관성 같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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