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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매도[賣渡] - 유니셈 (코스닥: 036200)

 이 회사는 반도체나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공장의 보조설비인 스크러버와 칠러를 만들어 돈을 법니다. 스크러버는 공정용 장비에서 발생하는 폐 유해가스를 정화하는 장비로, 통상 증착이나 식각, 세정 같은 공정장비 1대당 스크러버 1~2대가 연결돼 설치됩니다. 칠러는 공정장비에 있는 챔버 내부의 열을 식혀주는 장치로, 챔버의 개수에 비례해 필요합니다. 챔버는 겨울철 편의점에서 보이는 호빵 찜통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호빵대신 웨이퍼가 안에 있습니다.

 

 제가 이 종목을 골랐던 이유는 등락은 있지만 장기간 높은 ROE를 보여주는 종목이라는 점 외에도 이 종목은 반도체 공정 미세화의 수혜주가 될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러니까, 반도체 회로가 갈수록 미세해지면서 기존에는 화학용액을 이용해서 하던 식각이나 세정 같은 공정들에 가스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고, 그 폐가스를 정화하려면 이 회사가 만드는 스크러버가 더 많이 필요할 것이니 말입니다. 또, 가스를 이용해서 식각을 하려면 챔버 내부의 가스를 플라스마로 바꿔 줘야 하는데, 플라스마는 기체를 초고온으로 가열할 때 생성됩니다. 즉, 뜨거워진 챔버를 식혀줄 칠러도 더 많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이런 보조설비 시장은 아래의 그림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2017년 경 부터 급성장했는데, 노광공정에서 EUV 도입에 따른 미세화의 진전으로 다른 공정들에서 플라스마 진공챔버를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였습니다. 최근에 반도체 팹의 전력 사용량이 이슈로 대두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챔버 안에 플라스마를 만들기 위해서 고주파 전력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나노미터 선폭의 노광공정을 언제까지고 EUV로 하지는 않겠지만, EUV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첨단기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회사가 거기서 수혜를 입는 기간은 최소한 10년 이상은 될 것 같고, 또, EUV를 대체할 신기술이 등장하더라도 다른 공정들에서 스크러바와 칠러를 점점 더 많이 사용하는 추세는 크게 바뀔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제가 이 종목을 골랐던 또 다른 이유들 중 하나는 대부분의 국내 반도체 장비 제조사들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또는 그중 한 곳에서만 의미 있는 매출이 발생하는데 비해, 이 회사는 그 두 곳 외에도 미국 마이크론과 일본 키옥시아, 중국의 CSOT와 Tianma 등의 꽤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있고, 고객의 수는 앞으로도 점점 더 늘어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최근 3년간 반도체 경기 악화의 영향으로 이익률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반도체 업종은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주기성을 띄는 업종입니다.

 

G/M: 매출총이익률 / O/M: 영업이익률

 

 오히려 인공지능이나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주행차 등에 쓰일 반도체를 생각하면, 제가 생각하는 내재가치의 하단에도 못 미치는 지금 수준의 주가라면 이 종목은 오히려 더 사서 모아야 합니다.

 

매년 3월말의 주가와 내가 추정하는 내재가치 대비 주가의 배수

 

 아래에 보이는 다른 재무지표들도 좋아 보입니다. 제가 주가와 가장 상관관계가 크다고 생각하는 ROE가 최근 2~3년간 10% 아래로 떨어지기는 했는데, 반도체 경기가 좋아져 이익률이 오르면 ROE 역시 오를 것입니다. ROE, 그러니까 '자본이익률'은 순이익을 자본으로 나누어 구하고, 순이익은 영업이익에서 세금과 기타 비용을 빼서 구하므로, 영업이익이 증가하면 순이익 역시 증가할 것 이기에 그렇습니다.

 

ROE: 자본이익률 / BPS: 주당자본 / FCS: 주당자유현금흐름

 

 '자유현금흐름'이 보이지 않는 해가 많은 것은 로그축에 그린 그래프여서 음수는 표시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구체적인 수치는 아래와 같습니다.

 

 

 이쯤이면 이 글 제목에 왜 '매도'가 들어가는지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이 일의 발단은 이 회사 경쟁사들의 영업이익 하락폭은 어느 정도였는지를 조사해 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매도를 결심한 이유는 가령 경쟁사인 'GST' 보다 최근 2~3년간 이 회사 이익률이 나쁘다거나 하는 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은 주요 고객사의 물량배분, 그러니까 반도체의 성능이나 수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설비가 아니기에 여러 공급사를 두고 '이번 라인에는 여기, 다음 라인에는 저기' 하는 식으로 발주 물량을 배분하는데, 하필 경쟁사에게 많은 물량을 발주하는 와중에 반도체 경기악화로 교체수요도 줄어든 영향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매도를 결심한 이유는 경쟁사들의 동태를 알아보다가 '틈새시장 치고는 경쟁사들이 너무 많은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으면서 시작됐습니다.

 

 이전부터 알고 있던 'GST', 'CSK', '지앤비에스'와 '영진아이엔티' 외에도 검색창에 '반도체 스크러버'라고만 쳐도 첫 줄에만 '에프테크', 'STC', 'EMIT' 등의 이름이 검색되고, 심지어 '원익그룹'이 이 분야에 진출한다는 기사도 나옵니다. '틈새시장인데 왜 이렇게 경쟁자들이 많을까?'를 생각해 보다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우선, 틈새시장이라고 보기에는 시장의 규모가 꽤 큽니다. 증착이나 식각, 세정과 같은 공정용 장비를 만드는 회사들에게는 그 공정만이 시장이 되겠지만, 이 업종에서는 그 모든 공정들이 시장이고, 그 공정용 장비를 만드는 회사들도 잠재고객입니다. 그러니까, 경쟁자들이 몰려들 만큼 파이는 꽤 크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는, 이 분야의 진입장벽이 낮아 보인다는 점입니다. 생각해 보면 폐가스 정화장치나 냉각장치는 꼭 반도체 분야가 아니더라도 여러 산업에서 이전부터 쓰고 있던 설비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증착이나 식각장비처럼 기술적인 진입장벽은 높지 않은 와중에 잠재적인 경쟁자들은 득시글거리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거기에, 대규모의 설비투자가 필요하지 않은 장비제조업종의 특성상 자본적인 진입장벽도 거의 없습니다. 

 

 한마디로 이 업종은 생각보다 꽤 큰 시장에 낮은 진입장벽을 가진, 경쟁자들이 꼬이기 딱 좋은 업종이었던 셈입니다.

 

 이제 반도체 경기의 불황도 끝난 것 같고, 다시 호황이 오면 이 종목의 주가는 틀림없이 오를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이 종목을 손해를 보고 파는 게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만, 반도체 경기의 회복이 생각보다 늦어질 수도 있고, 만약 그렇게 되면 저는 이 종목을 들고 그때 팔지 못했음을 후회하다가 더 큰 손실을 보고 매도할지도 모릅니다. 손실을 떠나서 확신이 없는 종목을 계속 들고 있기보다는, 그 돈을 확신하고 있는 다른 종목들에게 배분해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지난 1년 10개월간 이 종목을 보유해서 얻은 성과입니다.

 

 - 최초 매수시점/단가: 2023년 8월 / 주당 8,894원

 - 최종 매도시점/단가: 2025년 5월 / 주당 5,791원

 - 보유기간의 주가 등락률: -34.89%

 - 보유기간의 연 복리수익률: -20.9%

 

2025년 5월에, 동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