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종목은 제가 2020년에 다섯 배에 가까운 시세차익을 얻고 매도했던 즐거운 추억이 있는 종목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종목을 분석할 때는 항상 견지하려고 노력하는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가 아닌 온화한 눈빛이 되는데, 그게 꼭 과거의 즐거운 추억 때문만은 아닙니다.
온화한 눈빛이 돼버리는 또다른 이유로는, 우선, 이 회사는 순환기나 소화기 같은 만성질환용 약의 매출비중이 높아서 국내 인구의 고령화라는 거대하고 장기적인 흐름에 부합하고, 경쟁이 치열한 복제약을 파는 대부분의 국내 중소제약사들과는 달리 개량신약을 많이 파는 덕분에 20%에 육박하는, 국내 제약사들 중 수위권의 영업이익률을 보여주는 종목이라서 그렇습니다. 또, 새로운 개량신약을 지속적으로 출시할 수 있는 배경에 인체에 약물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회사가 가진 기술들이 있으니, 이 높은 이익률을 미래에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종목의 매도를 결심한 이유는 제 분석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함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에 보이는 이 회사 실적과 이익률의 추이를 보면, 등락이 있기는 하지만 실적과 영업이익률은 장기간 우상향하고 있는걸 볼 수 있습니다. 2012~2013년의 영업이익 급락은 정부의 '일괄 약가인하' 조치의 영향인데, 당시 13,000여 개의 건강보험 대상 의약품 중 6,500여 종의 약가를 평균 21%나 강제로 인하한 결과입니다. 정부의 이 약가인하 압박은 현재도 진행 중인 일인데, 그 배경에 건강보험 공단의 재정적자 문제가 있어서입니다. 그리고, 복제약 중심의 장사를 하는 국내 전통제약사들의 주가가 저평가받는 기저에도 이 문제가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회사 영업이익률이 장기간 오를수 있었던 데는 꾸준히 개량신약을 개발해서 출시했기 때문이었음을 이 종목에 대한 제 예전 글들에서 여러 번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아래에 보이는 초록선의 추이를 보면, 높아지고 있는 영업이익률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급등했던 2022~2023년을 제외하면, 최근 5년 이상 ROE는 낮아지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ROE, 그러니까 순자산이익률은 순이익을 순자산으로 나누어 구합니다. 순이익은 매출에서 원가와 판관비를 뺀 영업이익에서 다시 세금과 기타비용 등을 빼면 구해지므로, 이 경우와 같이 영업이익률이나 순자산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면 순이익을 구할 때 영업이익에서 빼는 비용들 중 뭔가가 순이익을 떨어 트리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손익계산서를 보니 과연 아래와 같이 '기타 비용'이 급증한 게 작년의 ROE가 급락한 이유였습니다.
'기타비용'이 도대체 뭔가 싶어서 재무제표의 주석을 찾아보니, 아래와 같았습니다.
241억이라는 거액의 '소송충당부채전입액'을 볼 수 있는데, 예전에 썼던 글에서 말한 적이 있는 건보공단과의 소송 배상금입니다. 하지만, 이는 일회성의 비용이므로 ROE가 최근 5년 이상 하락추세인 것에 대한 설명은 될 수 없습니다. 대신, 제 눈을 사로잡은 항목은 '기부금'이었습니다. 매년 꽤 큰 금액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확인이 필요한 사안이므로, 연도별 순이익과 기부금의 추이, 그리고 기부금을 순이익으로 나눈 비율의 추이를 그려보니 아래와 같았습니다.
기부금의 금액 자체도 꾸준히 늘고있고, 작년에 19.4%까지 급등한 '기부금/순익' 비율은 2017~2023년에도 12~14% 정도의 적지 않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푸른 선의 '재단 지분율'은 기부금의 용처로 의심되는 '유나이티드문화재단'이 보유한 이 회사 지분율을 추적한 추이인데, 문화재단의 이사장이 이 회사 대표와 동일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특수관계자 간 거래내역'을 보면 작년과 재작년 기부금의 거의 대부분이 문화재단에 '기타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는 정황이 보입니다.
실제로 '유나이티드문화재단'의 2024년 결산보고서를 보면, 정확히 같은 금액이 등장하고 이 회사 외의 기부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재단 결산보고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2024년>
. 사업수익 68억 > 기부금 55억 + 기타사업 18억 > 기타 사업은 투자자산 수익, 외환차익 등
. 사업비용 23억 > 실제 수혜자에게 지출(주로 음악회/음악레슨 등)은 2억 7천 > 나머지는 인력비용/여비,교통비/기타 로 용처가 불분명해 보임
. 고유목적사업전입액 30억
* 고유목적사업전입액은 5년간 비용으로 인정, 즉 5년간 세금 면제
<2023년>
. 사업수익 71억 > 기부금 56억 + 기타사업 15억
. 사업비용 18억
. 고유목적사업전입액 9억
앞의 그래프에서 문화재단이 가진 이 회사 지분율을 살펴본 이유는 '혹시 회사가 떼어준 돈으로 지분율을 높이고 있지 않을까?'여서였는데, 2015년 한 해를 제외하면 문화재단은 이 회사 주식을 산 적이 없고, 지분율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은 주로 주식을 회사와 대표에게서 기증받아서였습니다.
그렇다면, 문화재단은 기타 사업비용이나 고유목적사업전입액으로 뭘 하는 것일까요? '유나이티드문화재단'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역삼동과 서초동에 빌딩이 있고, 경기도 광주에는 1만 5천 평의 대지에 3채의 으리으리한 건물들이 보입니다. 재단이 회사에 주는 미미한 금액의 임대료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일부는 회사의 소유인 것으로 생각되지만, 훨씬 큰 금액의 임대수익이나 대관료 같은 것들을 보면, 대부분의 건물들은 문화재단의 소유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의심은 모두 정황상의 증거들에 기반한 것일 뿐이고, 문화재단의 결산보고서 모두를 들여다보지도 못했습니다. '유나이티드문화재단'은 지정기부단체로 인가도 받았으므로 이 회사가 문화재단에 매년 상당액의 기부금을 주는 게 불법은 아니고, 실제로 문화재단은 음악이나 미술, 종교에 성실한 공헌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 것 한 가지는 '왜, 이런 기부를 회사돈으로 하나?'입니다. 돈도 많으신 양반이 자기 돈으로 이런 기부를 했다면, 저는 아무런 의문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재단이사장과 회사대표가 다른 사람이었다고 해도 비슷한 규모의 기부를 매년 하고 있을까?'입니다.
워런 버핏이 얘기했듯이, 저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 사업에는 투자하지 않습니다.
제 글을 꾸준히 읽고 계신 분들 중에는 '비슷해 보이는 '프로텍'의 사례에서는 '엘파텍'의 정황을 미리 알고도 주식을 팔아버리지 않았는데, 이 종목은 왜 팔지?' 하실 분들도 꽤 있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차이는 프로텍의 경우 '엘파텍'이 이익을 빼돌려 한 일은 프로텍의 주식을 사서 모은 일이었던데 반해, 문화재단은 그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주식을 사는 목적도 역시 시세차익이라는 이득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종목의 이익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이유도 주가는 언젠가는 그 늘어난 이익에 맞춰 오를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엘파텍'이 '프로텍'의 이익 일부로 주식을 사 모은 행위는 '프로텍'의 이익을 조금씩 갉아먹긴 했지만, 주가라는 측면에서는 그 주식을 계속 사므로, 내게 그렇게 큰 피해를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종목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2020년에 제가 이 종목에서 얻었던 큰 수익은 이 종목이 '코로나 치료제'라는 테마에 얽히면서 얻었던 운이 좀 따랐던 절반의 성공, 그러니까 피셔의 주식은 아니었지만 그레이엄의 가격에 샀던 결과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종목이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들 에게서 소외받고 있는 이유도 아마 지금까지 제가 얘기한 의심을 그들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 종목의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개미들이 좋아하는 어떤 테마에 다시 얽혀야 하는데, 저는 그런 막연한 기대만으로 투자를 결정하지 않고, 그런게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음은 제가 2년 11개월 동안 이 종목을 보유해 얻은 성과입니다.
. 최초 매수시점/단가: 2022년 7월 / 22,754원
. 최종 매도시점/단가: 2025년 6월 / 20,733원
. 보유기간: 2.92년
. 보유기간 중의 주가 상승률: -8.88%
. 연복리수익률: -3.14%
2025년 6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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