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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10년을 보유할 주식 - 해성디에스 (코스피: 195870)

 웨이퍼에서 떼어낸 회로가 새겨진 반도체 칩을 작은 기판에 올리고 검은색 몰딩을 씌우는 공정을 반도체 후공정 혹은 패키징 공정이라고 합니다. 이 회사는 이때 쓰이는 기판을 만들어 돈을 버는데, 이 반도체 기판들 중 지네 다리들처럼 생긴 금속 다리를 여러 개 가진 기판을 '리드프레임'이라고 하고, 아래쪽에 동글동글한 '솔더볼'을 여러 개 가진 기판을 '기판 PCB'라고 합니다. 이 들 중 이 회사는 전체 매출의 70% 정도를 리드프레임에서, 나머지를 기판 PCB에서 벌고 있습니다.

 

 '리드프레임이라면 옛날 반도체에서나 보이던 물건인데, 이 놈은 노광이나 식각같은 핵심공정이나 후공정이라도 HBM과 연관 있는 잘 나가는 종목들은 놔두고, 왜, 반도체 소부장 종목을 찾아도 하필 이런 한물간 업종에서 찾을까?' 하는 분들이 꽤 많을 것 같습니다.

 

 사실 5년쯤 전만해도 반도체 후공정은 제 관심업종이 아니었습니다. '웨이퍼 레벨 패키지(Wafer Level Package)', 그러니까 별도의 후공정을 거치지 않고 웨이퍼 상태의 칩에서 패키징을 마무리하는 기술의 등장으로 조만간 사라질 사양산업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제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는 아래의 그림을 보면서였습니다.

 

 

 맨 위의 붉은색 영역이 제가 말한 웨이퍼 레벨 패키지인데, 향후 추이는 이 붉은 영역도 늘어나지만, 기판과 후공정이 필요한 다른 색의 영역들도 커지고 있어서였습니다. 왜 그럴지를 생각해 보다가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웨이퍼 레벨 패키지는 전공정에서 후공정의 기판 역할을 대신할 별도의 층을 만들어 주므로, 상대적으로 싼 후공정 대신 전공정의 기술들이 사용되므로 돈이 훨씬 많이 듭니다. 그럼에도 웨이퍼 레벨 패키지를 만드는 이유는 스마트폰이나 무선이어폰과 같이 기기의 크기가 작아서 반도체를 마더보드에 붙일 공간이 부족해서 인데, 이를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왜 기판이 필요한 다른 패키지들의 수요가 증가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됩니다.

 

 그러니까, TV나 PC, 냉장고, 자동차, 서버등의 기기를 무선이어폰처럼 작게 만들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TV는 화면이 커야 하고, 컴퓨터 키보드 자판이 손가락보다 작으면 불편합니다. 또, 자동차는 사람이 타야 하므로 사람보다 작게 만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반도체를 조립할 공간이 넘치는 기기에 웨이퍼 레벨 패키지와 같이 작지만 만드는 값이 비싼 패키지를 사용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돈낭비가 될 것입니다.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반도체 기판의 수요는 여전히 늘어날 것입니다. 인공지능 서버에 들어가는 칩셋이나 전력/통신용 반도체는 여전히 기판을 써서 패키징하고 있고, 로봇 청소기와 같은 새로운 기기들도 끊임없이 나올 것 이기에 그렇습니다.

 

 제가 반도체 소부장 업종 중에서 당장 잘 나가고 있는 종목과는 거리를 두는 이유는 그런 종목들은 대개 주가가 고평가 되어있고, 조만간 경쟁자들이 몰려들거나 대체재가 등장해서 이익률이 급전직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때그때 가장 잘 나가는 업종이나 종목을 사서 성공할 수 있는 게 주식시장이라면, 왜 이렇게 주식투자에서 돈을 잃고 시장을 떠나는 사람이 많을지를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한편, 이 회사가 많은 돈을 벌고 있는 리드프레임 시장의 글로벌 점유율을 살펴보면, 일본 '미쯔이'가 9%로 1위이고 이 회사는 8%로 2위, 대만의 'CWTC'가 7%로 3위이고 4위의 일본 '신코'는 6%로, 이들 4개 회사를 '빅 4'라고 하는데, 4개사의 점유율을 합쳐도 30% 정도로, '빅4'라고 하기에는 좀 민망한 점유율입니다. 최상위 4개사의 점유율이 30% 정도밖에 안 된다는 말은 리드프레임을 만드는 회사가 꽤 많다는 말이므로, 진입장벽이 낮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진입장벽이 낮다면 가격경쟁으로 순위가 결정될 텐데, 최상위 4사 중 전통적으로 가격경쟁보다 품질로 승부하는 일본회사들이 2개나 보인다는 점에서 여전히 품질 경쟁력이 중요한 업종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이 회사는 특히 차량용 반도체에서 꾸준히 점유율을 높여왔는데, 차량용 반도체는 가정에서 쓰이는 전자기기와는 달리 진동이 많고 온도가 높은 환경을 견뎌야 하므로 높은 신뢰성이 요구됩니다. 그 말인즉슨, 이 회사 역시 가격경쟁보다 품질에 강점이 있다는 말이므로 안심이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논리가 그럴듯하더라도 실적이라는 숫자를 통해 이를 확인해 봐야 합니다. '과거의 실적은 이미 지나간 숫자들일뿐인데, 궁금한 미래의 주가에 대한 답을 거기서 얻을 수 있냐?'라고 묻는다면, 지금까지 그 기업이 어떻게 살아남았고 경쟁해 왔는지도 모르면서 미래의 주가에 베팅하려는 것은 도박에 가까운 짓이라는 말로 답을 대신하고 싶습니다. 

 

 아래는 이 회사 실적과 이익률의 추이입니다. 제가 보고 싶어 하는 15년간의 추이가 전부 보이지는 않는 이유는 이 회사가 2014년에 '삼성테크윈'에서 독립해 차려진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G/M: 매출총이익률 / O/M: 영업이익률

 

 2018~2019년에 매출이 줄지 않았는데도 이익률이 하락했던 점과 최근 2년간 매출 하락에 비해 영업이익의 하락폭이 과도한 게 아닌가 싶은 점이 의문스럽습니다. 2018~2019년 이후 이례적으로 좋았던 외부환경의 영향으로 좋은 실적을 보여주다가, 그때가 끝나서 원래의 한자릿수 영업이익률로 돌아가고 있을지도 모르므로 파헤쳐 봐야겠습니다.

 

 아래와 같이 사업보고서 중 '비용의 성격별 분류'에 나오는 각 항목들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의 추이를 그려봤습니다.

 

 

 '제품/재공품의 변동'과 '원부재료/저장품의 사용'의 합계인 붉은 선의 '원재료/재고'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마침 2018~2019년에는 증가한 게 보이므로 원재료비가 유력한 용의자처럼 보입니다. 사업보고서를 뒤적여 '주요 원재료'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리나 금, 은과 같이 상품시장에서 거래되는 금속들의 비중이 크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아래는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서 찾은 구리와 금 값의 추이입니다.

 

 

 이 추이를 이 회사 이익률 추이와 비교해 보면 뭔가 연관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회사는 금속시세를 판매가에 연동한다고 하니, 사실 금속시세가 이익률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하는데, 푸른 선의 구리 시세 추이를 이익률이나 '원재료/재고' 비용의 추이와 비교해 보면 2~3 분기의 시차를 두고 영향을 주고 있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래깅효과'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회사 역시 원재료를 그때그때 사지는 않고 일 년에 몇 번 정도 대량으로 살 텐데, 판가는 금속시세가 오르는 동안은 올라가서 과거에 싸게 샀던 원재료를 쓰게 되고, 반대로 금속시세가 내리는 동안은 과거에 비싸게 샀던 원재료를 쓰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영향이 이익률에는 크게 작용하는 것 같은데, 앞에서 봤던 '원재료/재고' 비용에는 크게 작용하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당연히 '원재료/재고'에 더 크게 작용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앞에서 봤던 각 비용항목들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추이를 그린 그래프로 다시 돌아가 보면, '원재료/재고'의 비중이 크긴 하지만, 다른 항목들도 감안하지 않으면 정확한 이익률 변동의 이유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선들이 너무 많이 얽혀있어서 좀 어지럽습니다.

 

 아래와 같이 전년 대비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몇 BP(Basis Point) 변했는지를 계산해 봤습니다. 100BP는 1%의 변동에 해당됩니다.

 

 

 이 편이 훨씬 더 잘 보이는 것 같습니다. 노랗게 표시한 100BP 이상 늘어난 그 해 항목을 보면 범인들이 뚜렷이 보입니다. 2018~2019년에는 원재료비 외에도 상각비라는 공범이 있었고, 2023~2024년에는 언뜻 원재료비가 주모자 같아 보이지만, 실은 주모자는 따로 있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2023~2024년에는 매출액 자체가 하락했으니, 각 비용들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긴 했을 것이라는 점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앞에서 본 구리시세의 추이를 얼핏 비교해 보면 2023~2024년에는 구리시세가 오르고 있었으니, 래깅효과로 인해 원재료비는 매출하락을 감안하더라도 2023년처럼 급등하지는 않았어야 할 것 같지만, 2022년에는 수요폭증으로 재고를 많이 쌓아 놓았다는 점과 사실 2023년 한 해만 보면 구리가격은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또, 팔라듐 시세가 급락한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계속 하락하던 급여의 증가는 기판 PCB를 하던 '해성테크놀로지'의 합병과 필리핀 생산법인의 인수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나머지 다른 비용들의 증가는 모두 증설투자와 관련이 있어 보이니, 진범은 '상각비'였습니다.

 

 상각비라고 하면 주로 시설투자에 쓴 돈을 매년 조금씩 지워나가는 회계상의 비용인데, 다시 앞에서 본 각 비용들의 매출비중 그래프로 돌아가 보면, 노란선의 상각비 비중은 장기간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상각비가 계속 늘어나서 이익률을 떨어트릴 것 같지만 원재료비를 제외한 거의 모든 비용들이 줄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투자를 통해 다른 비용들을 줄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쯤에서 분석을 마쳐도 될 것 같지만, 또 하나의 의문이 있습니다. 바로, 아래 오른쪽 붉은 선으로 보이는 '주당자유현금흐름'이 만족스럽지 않아 보여서입니다. '모든 자산의 가치는 미래의 현금흐름을 현재 가치로 할인한 값과 같다'는 말을 들어봤다면 제 의문에 공감할 것입니다.

 

ROE: 자본이익률 / BPS: 주당자본 / FCS: 주당자유현금흐름

 

 로그축으로 그린 그래프여서 마이너스인 해는 표시가 되지 않았으므로, 보이지 않는 해가 많습니다. 실제 수치는 어땠을지를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작년에 자유현금흐름이 나빠진 것은 이 회사가 지금 3,800억 원 규모의 대규모 증설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8~2019년에도 상각비로 이익률을 떨어트리더니, 또다시 증설이라?' 이 회사는 벌어서 남기는 돈 거의 전부를 다시 투자해야만 높은 이익률을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닐까요?

 

 제가 ROE를 중요시하는 이유는 ROE에는 이런 의문에 대한 답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ROE, 그러니까 자본이익률은 순이익을 자본으로 나누어서 구하는데, 순이익은 설비투자비인 감가상각비를 제하고 얻어지는 값입니다. 한해의 상각비가 그해 실제로 쓴 투자비와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상각비는 그 투자비를 여러 해에 걸쳐 조금씩 인식한다는 말이므로, 장기간으로 시계열을 넓혀보면 상각비는 결국 실제 투자비와 일치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분모인 자본은 설비투자를 늘리면 증가하게 되므로, 설비투자를 늘릴수록 ROE는 낮아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이 종목의 5년 평균 ROE는 20% 가까이, 10년 평균은 16% 가까이 나옵니다. 한두해 정도라면 몰라도 이렇게 장기간 높은 ROE를 보여주는 종목이 매우 드물다는 데에는 다들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매년 3월말 주가와 내가 추정하는 가치 대비 주가의 배수

 

2025년 4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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