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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10년을 보유할 주식 - KCI (코스닥: 036670) (4)

 이 회사의 사업보고서를 읽다 보면, 시장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지만 세계 수위권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양극성 계면활성제와 폴리머만 강조해 놓은 탓에 이 회사가 '시장규모가 작은, 좁은 물에서 노는 회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런데, 이 회사 홈페이지의 제품소개를 대충 훑어보다 보면, 이 회사는 계면활성제나 폴리머를 만드는 회사라기보다는 퍼스널케어, 그러니까 화장품이나 바디로션, 샴푸 등을 만들 때 필요한 원료를 만드는 정밀화학 회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KCI의 퍼스널케어 제품군

 

 퍼스널케어의 원료시장은 2021년 기준 116억 달러 정도의 규모가 꽤 큰 시장입니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수요처가 되는  퍼스널케어 시장이 2021년 기준 5천억 달러가 넘는 큰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들은 대부분 퍼스널케어 제품을 만들 때 필요한 원료로 사용되므로, 이 회사 이익의 안정성이나 사업의 성장성은 당연히 전방시장인 퍼스널케어 산업의 그것들에 수렴하게 됩니다.

 

 퍼스널케어 산업이 안정적인 가장 큰 이유는 화장품이나 샴푸는 거의 매일 바르거나 써서 없어지므로 끊임없이 다시 사야한다는 점입니다. 또, 외모나 위생관리라는 것이 도시화나 일하는 여성의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생각하면 이 산업은 성장성도 갖춘 업종입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매일 밭에 나가면서 화장을 하지는 않을 것이나,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여성이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산업화에 따른 도시화와 소득의 증가, 그리고 일하는 여성의 증가는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과 인도, 동남아에서 가장 활발히 진행 중인 현상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 산업의 안정성과 성장성이 뛰어나더라도 이 회사가 안정성과 성장성을 가지지 못했다면 그 산업의 파이는 경쟁자들이 나누어 먹게되므로, 이 회사가 이익의 안정성과 사업의 성장성을 가진 회사인지 분석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선 이 회사는 매출액의 대부분을 로레알이나 P&G, 유니레버, 니베아, 존슨앤존슨, 시세이도 같은 글로벌 퍼스널케어 기업들에게 수출을 통해서 벌어들이고 있으니, 이익의 안정성은 매우 우수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로레알'같은 회사가 품질이 별로인 원료를 쓰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사업의 성장성은 이 시장 자체가 성장하고 있다는 점과 제품군의 확장이 쉬운 정밀화학의 특성을 생각하면 쉽게 수긍할 수 있습니다. 철강을 만들던 회사가 컨택트렌즈의 소재를 개발하기는 힘들겠지만, 정밀화학을 하는 회사가 그 기술력만 있다면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실제로 이 회사는 최근 컨택트렌즈를 만드는 소재를 개발하여 팔고 있습니다.

 

 제가 얘기한 내용들이 사실일지, 혼자만의 희망회로를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검증해 보기 위해서 숫자들을 좀 들여다봐야 할 것 같습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못한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아래는 지난 15년간 이 회사 실적과 이익률의 추이입니다.

 

G/M: 매출총이익률 // O/M: 영업이익률

 

 끊임없이 우상향 중인 매출액의 추이에 안심은 되지만, 오른쪽 이익률의 그래프는 '작년에는 좋았으니 됐지 뭐..' 하고 넘겨 버리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2017년과 2021년 같이 이익률이 이듬해 바로 반등했던 경우라면 일회성 요인의 영향이었을 테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2010~2014년의 5년이나 형편없었던 이익률은 그냥 넘겨버리기에는 너무 긴 기간입니다. 만일 최근 산업의 환경이 좋아져서 이익률이 좋았지만 다시 그때의 환경으로 돌아간다면 지지부진한 실적에 주가도 화답할 것이고, 5년이나 주가의 침체를 버틸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매출총이익은 매출액에서 원가를 빼서 구하므로, 매출총이익률이 낮아졌다는 말은 경쟁이 치열해져서 판매가를 내렸거나 원재료비가 오른 등의 외부적인 이유에 기인합니다. 한편, 영업이익은 매출총이익에서 판매비와 관리비 등을 빼서 구하므로, 영업이익률이 매출총이익률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면 주로 내부적인 요인의 영향이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이 종목과 같이 두 이익률의 전체적인 방향이 비슷했다는 말은 매출 총 이익률, 그러니까, 외부적인 요인에 당시 이익률 부진의 이유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 회사의 원가와 판가에 영향을 미칠 외부적인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요?

 

 우선, 정밀화학 회사이니 유가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또, 화장품이나 샴푸 등의 원료를 만드니, 요즘 무독성이라고 많이들 쓰는 코코넛오일 가격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참, 매출의 거의 대부분을 수출로 벌고 있으니 환율도 살펴봐야 합니다. 아직까지는 '경쟁이 치열해졌는데 가격을 낮춰 파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는 가정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의심은 많지만 낙관론자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한 세 가지 요소들 중 이 회사 매출총이익률과 가장 뚜렷한 상관성을 가지는 요소는 환율이었습니다. 2008~2009년의 이례적으로 높았던 이익률도 아래의 환율차트를 보면 설명이 됩니다.

 

 

 원재료비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회사가 대량의 원재료를 가공해서 싸게 파는 구조의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알겠는데, 이익률이 환율에 따라 요동치는 것도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닙니다. 이익을 환율에 기대야 한다면 제품에 차별성이 없어서 낮은 마진을 감수하고 싼 가격을 무기로 장사를 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역시 이 회사는 남들보다 싸게 팔면서 이익률의 개선을 환율에 기대야 하는 회사일까요?

 

 그런데, 다시 이익률 그래프로 돌아가서 두 이익률의 추이를 자세히 보면 2014년 이후로는 두 이익률의 격차가 상당히 좁혀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느리지만 천천히 두 이익률이 상승추세에 있는 것도 볼 수 있는데, 특히 영업이익률이 그렇습니다. 또, 2018년쯤부터는 매출총이익률의 추이와 환율의 상관성도 떨어져 보입니다.

 

 그러면, 2014년 이후 영업이익률이 왜 상승추세에 있는지도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업보고서에 나오는 영업이익 계산에 반영된 항목들의 추이를 아래와 같이 그려봤습니다.

 

 

 급여와 판매비는 비용의 합계와 비슷하게 증가하는 추이임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더 많은 제품을 만들어 팔려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또, 판매비가 2021~2022년에 급증한 것도 세계적인 물류대란이 있었음과 수출과 관련된 비용이 이 회사 판매비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습니다.

 

 한편, 매출의 증가와 함께 영업비용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개발비와 상각비, 관리비는 2014년 경부터 2020년까지 하락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노란선의 관리비에는 세금과 공과, 소모품비, 보험료만 합해서 계산했는데, 2013년 대비 2014년의 하락은 주로 '세금과 공과' 비용의 감소 때문이었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찾을 수 없었지만, 아마도 관리비에 반영하던 세금과 공과의 일부 금액을 2014년부터 원가에 반영했을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그렇다면, 2014년 이후의 영업이익률 상승은 주로 연구개발비와 상각비의 감소에서 비롯됐다는 말이 됩니다.

 

 개발비와 상각비는 왜, 줄었을까요?

 

 회사의 연혁을 살펴보면 쉽게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은 이 회사 연혁 중 2014년 이후의 개발비와 상각비 감소에 영향을 미쳤을 만한 내용을 추린 것들입니다.

 

 - 2008년, 대죽공장 준공

 - 2009년, 폴리그리세린 박막설비 준공

 - 2010년, 폴리그리세린/에스테르/아민 반응설비 도입, 생체적합성물질(MPC) 제조설비 도입

 - 2011년, 공장/설비 증설 - 50억 신규투자

 - 2014년, 3급지방아민 상용화기술 장영실상 수상, BTAC - 세계일류상품 선정

 - 2020년, 가산동 연구/업무시설 확충 (97억)

 - 2021년, 세계 두 번째 저자극성 유화형 점증제 개발

 

 종합하면, 2014년 이전까지 설비투자를 많이 했고, 따라서 연구개발비도 급증했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2014년 이후부터 이 회사는 연구개발을 소홀히 했던 것일까요?

 

 사업보고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래의 연구개발 실적을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2014년에 장영실상을 받았던 '3급지방아민 상용화기술'이 제일 아래에 있는 것으로 봐서 나머지 기술들은 그 이후에 개발된 것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바이오나 생체친화, MPC, 식물성원료, PQ-51, 고가화장품 원료 등과 같은 비싸게 팔릴 것 같은 단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렇습니다. 2014년 이전까지 이 회사가 했던 투자와 연구개발은 주로 현재 팔고 있는 제품들의 원재료나 기반기술이 될 기술들에 대한 투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응용기술이나 응용제품의 개발은 원천기술만 가지고 있다면 그렇게 어렵지 않기에, 이 회사는 이후 연구개발비를 더 많이 쓰지 않고도 더 많은 제품들을 개발해서 팔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수학을 잘하려면 기초가 탄탄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런 생각이 저 혼자만의 망상이 아님은 아래에 보이는 순자산이익률과 자유현금흐름의 추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ROE: 순자산이익률 / BPS: 주당순자산 / FCS: 주당자유현금흐름

 

2023년 3월에, 동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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