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보유할 주식 - 한솔케미칼 (코스피: 014680)
제가 종목을 고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들 중 하나는 '다양한 고객들에게 다양한 제품을 팔고 있느냐?'입니다.특정한 한두 고객에게서, 혹은 한두 가지 제품에서 매출의 대부분이 발생하고 있다면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그 종목을 분석하는데, 결국 제 '픽'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특정한 한두 고객에 의지하고 있다면 그 기업은 조선시대 왕의 후궁들처럼 왕의 간택과 총애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간택과 총애를 받아서 잘 나가더라도, 언제 새로운 공급자가 간택되어 총애를 받을지 알 수 없습니다. 왕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또, 혁명이나 반정으로 왕이 바뀌기라도 하면 그 전의 후궁들은 궐에서 쫒겨나듯이, 아무리 고객사가 지금은 잘 나가고 있더라도 언제 게임체인저 같은 경쟁자가 등장할지, 혹은 대체재가 등장해 그 고객사의 제품이 더 이상 팔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대체재의 위협은 한두 가지 제품에 의존하고 있는 기업의 경우에도 그 종목을 고를 때 가장 큰 리스크 요인이 됩니다. 만약, 그 기업이 가진 노하우나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기술이나 소재로 만든 더 싸거나 성능이 좋은 대체재가 등장한다면, 그 기업에게는 몰락의 길 밖에 보이지 않을것 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면에서 이 종목 '한솔케미칼'은 큰 걱정이 없습니다. 이 회사는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에 쓰이는 정밀화학 소재인 전자재료 외에도 섬유나 제지, 환경 산업과 같은 다양한 수요처에 다양한 소재를 팔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자재료의 매출비중이 70% 정도로 크긴 하지만 특정한 고객이나 제품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제품과 고객에게서 매출이 발생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성장성도 갖춘 종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자산업은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크게 성장할 산업 중 하나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이 안정성과 성장성을 실적이라는 숫자들을 통해 검증해 봐야겠습니다. 아래는 지난 15년간 실적과 이익률의 추이입니다.
장기간 우상향하고 있는 매출과 영업이익의 추이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눈을 오른쪽으로 돌려 이익률의 추이를 보면, 원래는 낮았던 이익률이 2015년 쯤 부터 높아지다가 최근 몇 년은 다시 떨어지고 있는 게 눈에 띕니다.
아래의 매년 3월말 주가가 제가 추정하는 가치 대비 몇 배인지를 나타낸 배수를 보면, 마치 시장에서는 이 종목의 이익률은 2015년 이전의 낮았던 수준으로 돌아가리라는데 베팅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만약 시장의 베팅이 틀렸고 작년과 재작년의 낮아진 이익률은 전자산업의 일시적인 업황악화에 따른 등락이었다면, 지금의 낮은 주가는 절호의 매수기회가 될 것 입니다.
확신을 얻기 위해 먼저 왜 2014년 이후 2021년 경까지 이익률이 높아졌는지를 알아봐야겠습니다.아래는 사업보고서의 '비용의 성격별 분류'에 나오는 항목들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그린 추이입니다.
검은선의 '재고/원재료' 비중이 장기간 하락한게 결정적인 이유로 보입니다. 최근 몇 년간 오르긴 했는데, 최근의 인플레이션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는 수준은 아닙니다. 장기적으로 비중이 커지고 있는 항목은 붉은 선의 '급여'와 회색선의 '기타' 정도인데, 이 마저도 이익률이 오르면서, 그러니까 매출액 대비 전체 비용의 비율이 낮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커진 정도로 보입니다.
어느 증권사 리포트에서 이 회사 이익률은 천연가스 가격에 연동되는 구조라는 말을 봤는데, 천연가스에서 추출하는 에틸렌은 거의 모든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가 되므로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참고로, 에틸렌은 석유에서도 추출할 수 있는데, 이 때는 나프타를 먼저 추출한 후 거기서 에틸렌을 얻습니다. 아래와 같이 '한국은행 경제통계 시스템'에서 천연가스 가격의 추이를 찾아봤습니다.
실제로 천연가스 가격의 추이와 이 회사 이익률 사이에는 역의 상관관계가 보입니다. 그런데, 이는 방향성의 상관관계만 설명하지, 이익률이 왜 장기간 올랐고 원재료 비중은 왜 장기간 떨어지는 추세인지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원재료 가격이 장기적인 이익률 상승의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기존의 제품을 더 많이 팔았거나 더 비싼 제품을 출시해서 많이 팔았을 것입니다. 당시의 회사연혁을 읽어 보면 전자재료에 대한 투자와 성과가 많이 보입니다. 사업보고서에서 보이는 '용도별 매출비율'을 그려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문제의 2014년 이후 '전자소재'의 비율은 급증하는데 비해 '제지/환경/목재'의 비율은 줄어든 게 근본적인 원인이었습니다. 갈색의 '정밀화학'은 주로 과산화수소인데, 전자재료급의 고순도 과산화수소는 '삼영순화'에, 저순도는 '한솔제지'에 많이 팔고 있고, 두 회사 모두 관계회사여서 두 회사에서 거둔 매출은 공개되므로, 아래와 같이 두 회사에서 얻은 매출의 추이를 그려 볼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고부가 제품인 전자소재의 매출비중이 커진 게 이익률이 높아진 이유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문제는 전자소재의 비중이 커진 작년과 재작년의 매출과 이익률 하락인데, 답은 이미 앞에서 본 그래프들 안에 있습니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산업이 성장산업이면서도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주기가 있는 산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작년과 재작년에 소폭 하락한 매출은 크게 걱정되지 않습니다. 재작년쯤 나온 삼성전자의 감산 뉴스는 근 10년 내 처음 들어본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매출하락에 비해 과도하게 떨어진 이익률입니다.
최근 2~3년간 급락한 이익률의 이유를 찾기 위해 다시 앞에서 본 각 비용항목들의 매출비중 추이로 돌아가 보면, 뚜렷하게 어느 항목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아 보입니다. 따라서, 아래와 같이 각 항목들이 몇 Basis Point(BP) 씩 변했는지를 계산해 봤습니다. 100BP, 즉 1% 포인트 이상 증가한 항목들은 형광펜으로 표시했습니다.
2022년의 원재료비 비중 급등은 앞에서 본 천연가스 가격의 추이를 다시 보면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이듬해에는 천연가스 가격이 하락하긴 했지만 여전히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인데 반해, 이 회사 원재료비 비중은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라는 데서 이 회사가 파는 전자재료가 고부가의 제품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천연가스 가격에 큰 변동이 없었던 작년에 원재료비 비중이 3% 포인트 가까이 높아진 점은 의문스럽습니다.
답은 '재고자산의 변동'과 '원재료의 매입'이 합쳐진 '재고/원재료'를 아래와 같이 둘로 갈라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재고자산의 변동'은 '기말 재고자산'에서 '기초 재고자산'을 빼서 구하는데, 플러스면 기 중에 생산한 제품보다 판매한 제품이 더 많아서 '재고자산의 변동' 만큼을 매출원가로 인식했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마이너스면 기 중에 생산한 제품보다 적게 팔려서, 그만큼을 매출원가에서 제외했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작년에 재고를 많이 판 게 '재고/원재료'비의 비중을 높였다는 말입니다.
2023년의 '급여' 비중 상승은 이듬해 더 큰 폭이 하락한 것으로 미루어 일회성의 요인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상각비'와 '기타'는 이듬해 줄긴 했으나, 그 줄어든 폭이 미미합니다. 2023년과 2024년의 '상각비'와 '기타'의 변동을 합해보면 327BP로 '재고/원재료'의 131BP 보다 훨씬 큽니다.
이 회사와 같은 화학업종의 기업이 상각비와 기타 비용이 크게 늘었다면, 설비투자를 많이 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상각비는 주로 설비투자에 쓴 돈을 매년 조금씩 지워 없애는 항목이고, 기타 비용이 상각비와 함께 늘었다면 새로 산 설비를 설치하는데 쓴 돈이나, 그 새로 설치한 설비들이 안정적으로 돌아갈 때까지 시행착오에 쓴 비용일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연혁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이 작년과 재작년에 투자를 많이 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2023년, 2차전지소재 복합동 준공, 박막소재 DPT-45 공장 준공, 테이팩스 2차전지테이프 신공장 준공, 바이오공정용 화학제품 '바이옥스' 인수
. 2024년, 박막소재 DIP 공장 준공
지금까지 얘기한 모든 것들을 종합해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회사는 기존의 제지나 목재, 환경 같은, 수요는 안정적이지만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수요처 위주에서 전자산업이라는, 경기변동의 영향은 크지만 성장성 또한 큰 산업 위주로 주요 수요처가 바뀌었습니다. 최근 2~3년간의 이익률 급락은 주요 수요처, 특히 반도체 경기의 악화에 투자를 많이 한 점이 더해진 결과로 보입니다. 이렇게 볼 때, 최근의 이익률 하락을 걱정해서 큰 폭으로 떨어진 지금 수준의 주가는 절호의 매수기회를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래의 다른 재무지표들도 좋아 보이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오른편 붉은 선의 '주당자유현금흐름'이 보이지 않는 해가 많은 것은 로그축에 그린 그래프여서 음수는 표시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수치는 아래와 같습니다.
2025년 5월에, 동해에서..